설교26-5 창22 가이드
- SJ Kim

- 2025년 12월 24일
- 7분 분량
최종 수정일: 2025년 12월 25일
창 22:1-19, 핵심 구절 창22:8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참 예배자를 찾으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의 예배를 통해 올려 드리는 모든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기쁘게 받으실 줄 믿습니다.
오늘 2025년 마지막 주일을 맞아, 여러분 모두에게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이루신 모든 은택들을 우리에게 적용하시는 성령님의 은혜와 또 그의 권능으로 말미암아 복음의 기쁜 소식을 온 세상에 전하는 영광과 은혜와 축복이 가득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우리는 지난 4주 동안 대강절을 맞아 메시아께서 오셔서 세우신 하나님의 나라는 사랑과 의와 평화와 기쁨의 나라인 것을 살펴 본 후, 지난 목요일 성탄절을 맞아 주님의 초림을 기리고 또 다시 오실 그날을 앙망하며 보냈는데, 이번 주에는 2025년 마지막 주를 맞아, 하나님 아버지께서 올 한해 우리를 돌보시고 인도하신 은혜를 돌아보며 하나님께 감사하는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1) 오늘의 본문인 창 22장 1-19절까지의 말씀을 요약해 보면, 오늘의 이야기는 여러분들도 잘 알고 계시는 이야기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75세 때에 갈대아 우르에서 불러내 이스라엘 땅에 정착하게 하신 후 25년이 지나 마침내 100세 때에 경수가 이미 끊어진 90세의 사라를 통해 이삭을 주셨는데, 그가 장성하자,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모리아 땅으로 가서 하나님께서 일러 주실 한 산에서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고 요구하셨습니다.
이에 아브라함은 다음날 아침 일찍 나귀에 번제에 쓸 나무를 싣고 이삭을 데리고 집을 떠나 삼일 만에 모리아 산에 도착해, 아들에게 번제 나무를 지우고 산에 올라 아들을 결박하여 제단 위에 올려 놓고는 칼을 잡고 그의 아들을 잡아 번제로 드리려 하였습니다.
이 때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로 부터 그를 불러 세워 “이삭에게 손을 대지 말라”고 하면서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아노라”고 하였고, 이에,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 본 즉, 숫양 한 마리가 수풀에 걸려 있음을 발견하고 그 양을 가져다 번제로 드린 후 그 땅 이름을 여호와 이레라고 하였는데, 그 뜻은 “여호와께서 준비하시리라”는 뜻이었습니다.
그러자 여호와의 사자가 두번째로 하늘에서 부터 아브라함을 불러 이르시되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도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고 하시며 하나님의 언약을 재확인해 주셨습니다.
2) 오늘 본문을 통해, 몇가지 주요한 포인트를 함께 묵상해 보면서 은혜 나누기를 원하는데, 먼저, 아브라함의 두 부르심에 대해서 생각해 보기를 원합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아브라함 이야기는 잘 구성된 하나의 거대한 문학 단위로 아브라함 이야기의 시작과 마지막은 매우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먼저 도입부에서는 사라의 불임을 소개하는 데라의 족보로 시작했고, 오늘 본문 20절 이하에서는 리브가의 출생을 알리는 나홀의 족보로 마치는데, 창 25:21 에서는 리브가도 임신하지 못하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두번째로 도입부에서 아브라함을 불러 가나안 땅으로 보내신 하나님은 믿음의 절정에 있던 그를 다시 부르셔서 순종을 요구하시는데, 첫 부르심이 약속과 사명과 미래에 대한 소망을 주신 것이었다면, 마지막 부르심은 오히려 그 약속의 소망인 이삭을 바치라고 하셨는데, 첫 부르심이 ‘과거를 끊어 버리고 하나님을 신뢰하며 미래를 향해 걸으라’는 의미였다면, 마지막 부르심은 이제 아브라함에게 그의 마지막 미래의 소망이 끊어지는 순간에도 너는 여전히 하나님을 신뢰하라는 도전이었던 것입니다.
3) 그런데, 이 모리아 산에서의 사건은 누구를 관점으로 하는가에 따라 다른 면이 있는데. 무슨 말인가 하면, 아브라함의 관점에서 보면, 이 사건은 분명 위대한 결단이자 순종 이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그의 노년에 그것도 태가 닫혀 있던 사라를 통해 주신 그의 적자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는 하나님의 이해할 수 없는 명령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은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나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모리아 땅으로 떠났고, 모리아 산에 올라서도 그의 아들을 잡아 번제로 바치려 함으로써 그의 믿음을 인정 받고 하나님의 시험을 통과하여 마침내 복과 자손의 번성 그리고 세상 모든 민족이 그로 말미암아 복을 받을 것이라는 약속의 말씀을 다시 받아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편 사라의 입장에서 이 사건을 다시 한번 살펴 보면,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명령을 받은 그 다음 날 아침 일찍 모리아 땅으로 길을 떠난 것으로 보아 사라에게 이 사건을 알리지 않았는데, 이는 만약 아브라함이 사라에게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이삭을 번제로 바치려 한다는 것을 알려 주었다면 아마도 사라가 이를 허락하지는 않을 줄 알았기 때문이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어쨋든 아브라함이 이 일 후 다시 브엘세바로 돌아왔는데, 그런데 그 다음 장인 23장에서 사라가 백이십칠 세에 죽었다고 기록하면서 브엘세바에서 죽지 않고 헤브론에서 죽었다고 말하고 있는 점을 미루어 짐작해 보건데, 아마 이 시간으로 말미암아 아브라함과 사라가 별거를 한 것이 아닌가 추정됩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이삭의 입장에서 이 사건을 다시 한번 더 생각해 보면, 아버지를 따라 나선 나이가 15세에서 많게는 37세가 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청장년의 이삭이 115세에서 많게는 137세가 된 아버지에게 묶여 번제 나무 위에 올려졌다고 되어 있는데, 이는 아버지에 대한 이삭의 순종이었을 뿐 만 아니라 하나님께 대한 순종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의 이러한 놀라운 순종과는 별개로 그는 이 사건을 견디기가 쉽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24:62 에 보면, 어머니 사라가 죽은 후 브엘라 헤로이에서 와서 네게브 지역에 거주하였다고 하며, 또 24:67절에서는 이삭이 리브가를 인도하여 그의 어머니 사라의 장막으로 들였다고 말하고 있는 점을 미루어 보아, 모리아 산 사건이후, 이삭은 아버지가 칼로 내려치려 한 것 때문에 트라우마에 시달렸고, 사라는 그런 이삭을 데리고 헤브론으로 가서, 거기서 함께 살았고, 그 이후 사라가 죽자 이삭은 아버지가 있는 브엘세바로 가지 않고 결국 어머니 사라의 텐트를 가지고 브엘라 헤로이로 갔는데, 이러한 행적을 보건데, 아버지가 칼을 뽑아 그를 내리치려 한 것이 그에게 있어서 깊은 트라우마로 남았던 것 같습니다.
4) 어쨌든 이러한 부분에 대해서 성경은 침묵하고 있기에, 하나님 외에는 아무도 진실을 알 수 없지만, 아브라함의 믿음이 참으로 놀라운 것은 분명한 사실인 것 같습니다. 첫째, 그는 창 21:12 에서 사라가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 쫓으라고 했을 때, 이스마엘은 분명 그의 아들이었고 이삭이 태어 나기 전에는 한 때 그를 통해 하나님의 언약을 이루어 주시기를 요청하기도 했기에 매우 근심을 하였는데, 그 때 하나님께서 근심하지 말라고 하시며 여종의 아들도 네 씨니 그로 한 민족을 이루게 하실 것이니 그를 내 보내라는 말씀을 듣고 그 즉시 순종하여 다음날 그를 떠나 보냈고, 거기다, 이제 그가 100세 때 얻은 적자 이삭마저 번제로 바치라고 했을 때, 그는 하나님의 언약을 계승할 아들 마저 서슴치 않고 그 다음 날 일찍 일어나 그를 번제로 바치기 위해 하나님께서 명령하시는 곳으로 떠나 갔습니다.
그러나, 보통 사람인 제 생각에는, 그는 그 첫날 밤을 아마도 한 숨도 자지 못한 채, 뜬 눈으로 지새며 고민 하였지 않았을까 그리고 모리아 산으로 가는 삼일 길 내내 얼마나 많은 갈등을 하였을까 추측해 봅니다. 물론 레 20:2-5 처럼, 이스라엘 자손이나 이스라엘에 거류하는 거류민이든지 자기의 자식을 몰렉신에게 바치면, 돌로 쳐 죽이고 그를 그의 백성 중에서 끊어시겠다고 말씀 하셨듯, 그는 하나님께서는 자식을 우상에게 바치는 것을 가장 싫어 하시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이 명령이 하나님으로 부터 오지 않았다며 애써 무시할 수도 있었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명령을 받은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따져 묻지도, 이러려고 아들을 주신 것인지, 주실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내놓으라 하시는지 원망하지도 않았으며, 또한 신학적으로 하나님께서는 인신제사를 원하는 분인지, 성경에서 분명 인신제사를 원하지 않는다 말씀하시고는 이런 모순적인 요구를 하시는지 변론도 하지 않은 채 놀랍게도 그는 3절 말씀처럼, 모든 질문과 고민들 그리고 근심, 두려움, 좌절, 슬픔 등 복잡한 감정들을 혼자 짊어진 채, 단순하지만 적극적으로 순종 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3일 길의 순종후에도, 여전히 이해하지도 또 이유를 알지도 못한 채,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니 순종하였는데,
그런데, 이렇게 아브라함이 순종할 수 있었던 믿음의 본질을 5절 말씀, “이에 아브라함이 종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예배하고 우리가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라고 한 말씀에서 힌트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즉 그는 아들을 번제로 드려야 함을 알고 있었지만, 또한, 그는 이삭과 함께 다시 돌아올 것을 믿었는데, 히 11:17-19말씀처럼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는데, 이는 그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하였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이삭을 번제로 드린다는 것은 분명 죽음을 전제로 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 돌아오리라는 말은 비록 이삭을 번제로 드릴지라도 하나님께서는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다시 살려 주실 수 있는 분이시고 또한 살려 주실 것을 믿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와 같이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는 하나님의 말씀과 이삭을 통해 많은 후사와 열방이 복을 얻게 되리라는 약속의 말씀이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을지 온전히 깨닫지는 못했지만, 그러나 그는 하나님을 믿고 순종했는데, 이것이 오늘 본문에 나타난 아브라함의 믿음의 본질인 것입니다.
5) 우리는 오늘 본문을 통해 한가지 사실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들에게 그분 만을 가장 사랑하도록 요구하신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꿈과 소망, 그리고 자기가 추구해 온 모든 가치를 포기하면서까지 주님을 신뢰할 수 있는지, 그리고 우리 앞에 일어날 좋은 일과 나쁜 일, 그리고 위험과 기회, 그 모든 상황 가운데서도 하나님만을 가장 사랑할 수 있는지 그리고 심지어 약속이 무너지는 것 같은 그 순간에도 하나님을 계속해서 신뢰할 수 있는지 물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분명 건강도, 가정도 또 학업도, 취업도 그리고 사업의 번창과 재물 또한 하나님의 은혜이지만 그러나 우선순위를 망각한 채 우리 시선이 거기에 고정되어 마음이 흐트러진다면, 그것들은 하나님 앞에서 오히려 우상이 되어 우리의 발목을 잡는다는 것을 기억하고 하나님보다 앞에 둔 우상이 있는지 있다면 그 어떤 것이라도 날마다 그것을 제거하는 그런 삶을 살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6) 그리고 한가지 더 묵상해기를 원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본문 1절, 7절, 11절에 나오는 ‘내가 여기 있나이다’라는 단어입니다. 한글 성경에는 “내가 여기 있나이다”며 3구절로 번역되어 있지만 히브리어로는 실은 “히네니”라는 한 단어로 되어 있는데, 그 뜻은 “기꺼이 자신의 몸을 바칠 준비가 되어 있음”을 의미합니다.
이와 같이 성경의 모든 믿음의 선구자들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히네니!”라고 대답했는데, 불타는 떨기나무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실 때도 모세는 “히네니!”라고 대답했고, 하나님께서 어린 사무엘을 세번 부르셨을 때에도, 사무엘은 “히네니! 제가 듣겠습니다!"라고 반응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아브라함은 75세에 첫 부르심을 받고 약 50여 년간 믿음의 여정에서 훈련 받은 후에는,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 이제 언제나 “히네니!” 즉 “주님 말씀에 순종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라고 대답했던 것입니다
우리도 아브라함처럼 믿음의 여정을 걸어갈 때에, 하나님의 부르심에 언제나 “히네니”하며 “내가 여기있나이다. 명령하십시오”라고 대답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7) 그리고 이렇게 이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모리아 산에 올라 이삭을 결박하여 번제단 위에 올려 놓은 후 아브라함이 주저하지 않고 칼을 빼들어 이삭을 내리치려 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를 다급히 부르시며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물론 이 말씀은 지적으로 몰랐던 것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는 뜻이 아니라, 본문의 히브리어 ‘야다 (ידע)”가 경험하여 아는 것을 의미하듯,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믿음을 이제 직접 경험하여 알게 되었다는 표현인데,
그런데, 여러분! 하나님만 알게 되신 것이 아닙니다. 본문에 보면 아브라함 역시 하나님을 알게 되었는데, 그가 주위를 살펴보니, 숫양 한 마리가 수풀에 걸려 있는 것을 보게 되었고, 이 숫양이 하나님께서 예비해 두신 것이었음을 알게 되었고, 그래서 그곳 이름을 ‘여호와 이레’라고 지었는데, 이 “여호와 이레”라는 단어는 ‘하나님께서 준비하신다’라고 많이 알고 있지만, 히브리어 본문을 직역하면 ‘하나님께서 보신다’라는 뜻입니다. 즉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해 그 자리까지 섰지만, 실은 하나님께서 먼저 보고 계셨고 그를 위해 예비해 두셨음을 알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단어인 것입니다.
8) 여러분!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여 그를 쫓을 때 마음 속으로 고민과 걱정, 두려움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과연 나를 보고 계시는지, 내 아픔을 알고 계시는지 의심과 불안에 휩싸일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보고 계신다는 사실을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그리고 우리의 사명에 혼자 던져진 게 아닙니다. 그리고 혼자 어려움을 겪는 것도 또 세상의 짐을 혼자 짊어진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보고 계시고 돌보시며 우리의 필요를 준비하시고 공급하시고 계십니다. 다만, 우리가 나를 보시고 돌보시며, 준비 하시는 하나님을 보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가 모리아 산 정상에 까지 오르려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이 모리아 산에 올라 칼을 뽑아 들고 내려치려 했을 때 에야 비로소 여호와의 음성을 들었음을 기억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그러므로 기도 하옵기는 어떤 상황에서도 쉽게 포기하거나 두려워하지 말고 우리를 보시고 지키시는 하나님을 믿음의 눈을 열어 볼 수 있기를 그리고 올 한 해도 그 자리에서 우리를 지켜 보시고 돌보시고 또 준비하셨던 하나님께 감사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소그룹 모임 가이드 및 예제 질문
Q1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은 아브라함이 50여 년간 믿음의 여정을 보낸 후에는 놀라운 믿음과 순종의 소유자가 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잠시 우리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서, 과연 우리도 주님 부르심을 쫓아 길을 떠난 후 우리의 믿음은 어디까지 왔는지 한번 돌아 보고, 각자의 생각과 경험과 은혜를 팀원들과 나누면서 은혜 나눌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Q2 그리고, 이러한 믿음의 여정에서 하나님께서는 늘 살펴 보시고, 돌보시며, 모든 것을 준비하여 주심을 알 수 있습니다. 잠시 올 한해 각자의 삶을 돌아 보면서, 과연 하나님께서 어떤 여호와이레로 우리를 인도하셨는지 돌아 보고, 각자의 생각과 경험을 팀원들과 나누면서 은혜 나눌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축복합니다.
기도 노트
( 오늘 말씀중 깨달아진 하나님의 성품 ) 하나님 아버지!
( 지난 한주간 혹은 오늘 하루 동안 감사한 일들 ) 해 주심에
찬송과 감사와 영광을 주님께 올려 드립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 깨닫게 해주신 죄 )를 깨닫게 해주셨음에 감사하며,
회개할 때에 용서해 주옵시고 이제 ( 새 삶 )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 주옵소서
특별히 오늘 말씀을 통하여 ( 새롭게 배운 점 ) 을 가르쳐 주심에 감사하며
( 삶의 도전 ) 살 수 있도록 은혜를 더하여 주옵소서
( 주님의 성품 ) 우리 주님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