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26-18 눅19 가이드
- 3월 27일
- 6분 분량
눅19:28-40, 핵심 구절 눅19:38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참 예배자를 찾으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의 예배를 통해 올려 드리는 모든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기쁘게 받으실 줄 믿습니다.
오늘 2026년 열 세번째 주일을 맞아, 여러분 모두에게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이루신 모든 은택들을 우리에게 적용하시는 성령님의 은혜와 또 그의 권능으로 말미암아 복음의 기쁜 소식을 온 세상에 전하는 영광과 은혜와 축복이 가득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우리는 지난 주에 마태 복음 10장 말씀을 통해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명을 쫓아가는 길에는 고난과 핍박도 있지만, 그러나 우리가 또한 주님의 은혜로 그 고난을 이기는 가운데 주의 고난에 참여하는 특권을 누리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이번 주에는 오늘 특별히 호산나 주일을 맞아, 누가 복음 19장 말씀을 통해서, 주님께서는 마지막 고난을 앞 두시고 예루살렘에 나귀를 타고 입성하신 이유에 대해서 함께 살펴 보면서 은혜 나눌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1) 우리 주님은 신이자 이스라엘의 왕이자 대선지자요 또한 대제사장이셨지만 그러나 또한 인간이자 섬기는 종으로 몸소 율법을 완성하셔야 했고 또한 어린 양이 되셔야 했는데 이 신비스런 이야기의 터닝 포인트가 바로 가이샤라 빌립보였습니다.
먼저 누가는 9:18-27 에서 그의 공생애가 무르익고 마침내 가르치신 것을 엄숙하게 평가 하시듯 예수님께서는 그의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고 물으셨고 이에 제자들이 “어떤 이들은 세례 요한이라 하고 더러는 엘리야라, 더러는 옛 선지자중의 한 사람이 살아났다 하나이라”라고 대답하자 다시 제자들에게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고 물으셨는데 이에 베드로가 “하나님의 그리스도시니이다”라고 대답하자, 주님께서는 그들이 메시아가 오셔서 성취하실 일이 지닌 의미를 완전히 이해할 때 까지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명령하신 후에 세번에 걸쳐 그가 고난을 받고 죽으신 후 제 삼일 만에 부활하실 것에 대해 알려 주시고 핵심 제자들에게는 변화산에서 그가 모세와 엘리야와 함께 자신이 “떠나는 것”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것을 보여 주셨습니다.
이와 같이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시작된 그의 여정은 다시 갈릴리 바닷가로 돌아오신 후, 변화산을 거쳐 사마리아로 가셨지만, 사마리아 인들이 예수의 일행이 사마리아를 통과하는 것을 거부하자 길을 돌려 요단강 서안을 거쳐 내려 오시다가 요단 저편을 거쳐 여리고를 지나 베다니와 벳바게를 거쳐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셨는데요.
2) 이렇게 누가복음에 나타난 예수님의 여행 내러티브에 나타난 네 개의 주요 지명, 즉
9:51절 “예수께서 승천하실 기약이 차가매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시고”라는 구절과 13:22절 “예수께서 각 성 각 마을로 다니사 가르치시며 예루살렘으로 여행하시더니”라는 말씀과17:11절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에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가시다가”라는 구절과18:31절 “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데리시고 이르시되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 선지자들을 통하여 기록된 모든 것이 인자에게 응하리라”는 구절을 중심으로 4단계의 이야기들로 구성하여 요약해 보면
베드로의 고백후 예루살렘으로 출발한 1단계에서는 주님은 자신이 비록 메시아이자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나님과 동등한 권세를 가지신 분이지만 유대인들이 고대하던 정치적 의미의 메시아 관을 배격하시고 고통 당하는 인자로 자신을 드러내시며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여행 중에는 머리 둘 곳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 사역으로 말미암아 사탄이 하늘로부터 추락하는 것을 보았다고 하시며 유대 지도자들에게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통하여 “너희도 이와 같이 행하라”고 도전하시면서 그의 제자들에게 외식을 주의하고 무엇을 말할지 목숨을 위해 무엇을 먹고 마실지 걱정하지 말라고 하시며 불을 받아 사명을 감당하라는 교훈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13:22 – 17:10 까지의 두번째 단계에서 주님께서는 예루살렘에 가야 할 필요성을 반복하시며 그곳에서 있을 고난들과 또 그 고난에도 불구하고 분명히 드러낼 하나님 나라에 대해 많은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17:11-18:30 절까지의 세번째 단계에서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가르침을 주셨는데, 하나님 나라의 정의와 통치, 하나님 나라는 어린아이들의 것이며 또한 그는 많은 고난을 통해 영광에 이를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4단계는 18:31-19:44에 나오는 예루살렘 입성에 대한 이야기로 이 단계에서는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극적으로 다가가시는 것에 대한 기대감 (19:11, 41; 참조. 37절)과 성스러운 도시를 향하여 올라가시는 것에 대한 긴장감(18:31, 19:28), 그리고 더 나아가서, 누가는 이 장면들에 대한 독자의 세심한 주의를 요구하면서 점차 선명함과 세밀한 묘사를 통해서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렇게 누가는 예루살렘을 향한 여정에서 “잃어버린 자”를 회복시키고 모세와 같이 교육하며 설교하시는 예수님의 여정이 하나님의 흩어진 백성들을 돕기 위한 새로운 회복 즉 구원 사명으로 나타난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3) 그 중 오늘의 본문인 19:28-44 까지의 내용은 실은 4단계 이야기중의 일부분으로 이 4단계의 이야기는 실은 히브리어 문학 구조인 교차 대조법을 이루고 있습니다. 즉
첫째 주제인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 예고는 결국 마지막 주제인 예수님의 예루살렘 멸망에 대한 탄식과
그리고 두번째 주제인 예수님께서 맹인의 눈을 뜨게 해 주심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이 이것을 보고 하나님을 찬양한 사건은 다섯번째 주제인 예수님께서 왕으로 예루살렘을 입성하시자 모든 무리들이 큰 목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하기 시작한 것과 짝을 이루고
세번째 주제인 예수님께서 세리 즉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자를 구원하신 사건은 네번째 예수님께서 베푸신 열 므나 비유에서 어떤 귀인이 왕위를 받아가지고 오려고 먼 나라로 갔다가 돌아와 그의 종들이 각각 일한데로 갚아주시고 그를 미워한 원수들은 그 죄대로 갚아주시는 이야기가 서로 대조법을 이루고 있는데,
오늘의 본문은 이 교차 대조법의 마지막 다섯번째와 여섯번째 이야기에 해당 합니다.
4) 오늘 본문에서 몇가지 중요한 포인트들에 대해 묵상해 봄으로 함께 은혜 나누기를 원하는데,
첫번째, 주님께서는 오늘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나귀 새끼를 타시고 입성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는 스 9:9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는 말씀을 성취하시기 위한 것으로 심지어 이 내용은 창 49:11 절에도 예언되어 있는 내용인데,
원래 당시 왕들이 타는 것은 “노새”였지만 그러나 주님은 노새보다 못한 새끼 나귀를 타신 것으로 이는 그가 겸손한 왕 즉 섬기는 왕으로 오셨음을 의미하며 “아직 아무도 타 보지 않은 나귀”라는 말은 망아지가 이전에 사용되어 오염되거나 더렵혀지지 않아 신성한 목적에 부합하고 또 왕에게 적합하기 때문입니다.
5) 그리고 이렇게 새끼 나귀를 타고 겸손의 왕으로 예루살렘에 입성하는 예수님을 주님의 제자들과 군중들은 환호하며 찬양했는데,
제자들은 자기들의 겉옷을 나귀 새끼 위에 걸치고 또 가실 때에 자기들의 겉옷을 길에 폈고
제자의 온 무리들은 자기들이 본 바 모든 능한 일로 인하여 기뻐하며 큰 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하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하늘에는 평화요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이로다”고 환호 하였습니다.
그런데 오늘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 장면에 등장하는 여러 사람들은 다양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18:31-33 에서 제자들에게 세번째 수난예고를 하셨는데, 누가는 34절에서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하나도 깨닫지 못하였다고 말하고 있듯 제자들은 예수님의 사역에 대해 이해하지 못했고 그 후에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자 고향으로 돌아가고 있었던 제자들이 “우리는 이 사람 즉 예수님이 이스라엘을 속량할 자로 바랐노라(24:21)”는 말씀처럼 예수님이 로마 제국으로 부터 자신들을 구해 줄 정치적 영웅으로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제자들의 상태를 누가는 그 다음 사건들을 통하여, 잘 드러내고 있는데요. 즉 눅 18:35-43에는 앞을 보지 못하는 맹인이 사람들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외치며 “주여 보기를 원합니다”고 요청하여 눈을 떠 보게 되었고, 또 이어진 눅 19:1-10의 삭개오의 이야기에서는, 키가 작아 군중들 때문에 예수님을 보지 못하던 삭개오가 돌 무화과 나무에 오르는 열심으로 주님의 시선을 받게 되어, 구원을 받는 이야기를 배치함으로, 누가는 제자들도 주님께서 수난 예고를 해 주셨을 때, 주님께서 영안을 열어 주셔서 깨닫기를 구하였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전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제자들의 환성과 환대를 본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제자들을 책망할 것을 요청하였지만, 그러나 주님께서는 만일 이 사람들이 침묵하며 돌들이 소리지르리라고 하시며 비록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하고 있지 않은 환호일 망정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내려와 행하신 은혜의 구원 사역은 모든 사람들이 환영해야 할 일임을 말씀해 주셨던 것입니다.
6) 그리고 이어진 단락에서는 예수님께서 점점 예루살렘 성으로 가까지 오셔서 예루살렘 성을 보시며 우셨는데, 그 이유는 그들이 평화에 관한 일을 알지 못하고 또 예루살렘 성에 임할 심판 즉 성이 무너져 많은 사람들이 죽게 될 것을 보시면서 그들이 보살핌 받는 날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여기서 평화에 관한 일이란 그들에게 평화를 누릴 수 있도록 필요한 것, 즉 메시아에 대한 참 지식으로 말미암는 구원을 말하고 또 보살핌을 받는 날이란 하나님께서 도움과 축복을 가져 오시기로 정한 때 즉 하나님의 아들이 구원의 메시지를 선포하기 위해 오신 때를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7)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왜 겸손의 왕으로 오셔야 만 했는지에 대해서 다시 한번 더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데요.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우리는 우리가 에덴 동산에서 어떤 죄를 지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외면적으로는 우리 조상 아담과 이브가 하나님께서 따 먹지 말라고 하신 선악과를 따 먹은 것이지만, 그 이면의 마음 깊숙한 곳에서는 실은 하나님의 말씀을 불신한 것과 또한 그 선악과를 따 먹고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고자 하는 교만이 숨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심은 믿음을 우리에게 다시 회복시켜 주시기 위한 것이었고 또한 우리의 교만을 치유하시고 우리에게 겸손한 마음을 회복시키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사단이 그랬던 것처럼 폭력이 아니라 그 스스로는 죄가 없으시지만 오히려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의를 이루시고 또 우리의 죄 값을 대신 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셨는데, 이는 단순한 상징이 아니라 구원의 본질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은 민족적 구원을 기대했지만, 예수님은 죄와 사망이라는 더 근본적인 인간의 문제로부터 구원하셨으며, 하나님의 아들이 겸손하게 죄인의 자리에 오셔서 우리의 구원에 필요한 모든 것을 채워 주셨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기독교의 핵심 진리는 “큰 자는 섬기는 자와 같을지니라”는 말씀처럼 섬김의 원리이며, 죽음을 통한 승리가 기독교의 본질인데 따라서 주님은 스스로를 내어 주시기까지 죽임을 당하심으로 승리하셨고, 이 새로운 질서를 세상에 펼치기 위해 먼저 이 길을 걸으셨던 것이며 그래서 예수님의 겸손함은 약함이 아니라 영원한 구원을 이루는 신적 권능의 표현이라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8) 그래서 우리가 주님을 찬양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로 하여금 죄로 부터 자유하게 하시고 하나님께 다시 이를 수 있는 길을 여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 하옵기는 올 한 해 매사 매순간 믿음으로 주님께 나아와 주님 주신 멍에를 메고 앞서 가신 주님을 붙쫓되, 그런 과정에서 우리의 연약함으로 넘어질 때에 조차 더욱 주님의 겸손과 온유를 배우면서 주님의 은혜를 찬양하며 하나님께 영광 올려 드리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소그룹 모임 가이드 및 예제 질문
Q1 오늘 말씀을 통해,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참 자유를 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또한 부활하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잠시 우리의 삶을 돌아 보고, 과연 우리가 참 자유의 삶을 살고 있는지 생각해 보고 각자의 생각과 경험을 나누면서 은혜 나눌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Q2 그리고, 아직도 옛 습관과 죄의 유혹으로 부터 자유롭지 못한 부분이 우리 안에 있다면 과연 어떻게 하면 우리가 주님을 모시고 승리할 수 있는 지 생각해 보고 각자의 생각과 경험과 은혜를 팀원들과 나누면서 은혜 나눌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축복합니다.
기도 노트
( 오늘 말씀중 깨달아진 하나님의 성품 ) 하나님 아버지!
( 지난 한주간 혹은 오늘 하루 동안 감사한 일들 ) 해 주심에
찬송과 감사와 영광을 주님께 올려 드립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 깨닫게 해주신 죄 )를 깨닫게 해주셨음에 감사하며,
회개할 때에 용서해 주옵시고 이제 ( 새 삶 )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 주옵소서
특별히 오늘 말씀을 통하여 ( 새롭게 배운 점 ) 을 가르쳐 주심에 감사하며
( 삶의 도전 ) 살 수 있도록 은혜를 더하여 주옵소서
( 주님의 성품 ) 우리 주님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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