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25-49 요3 가이드
- SJ Kim

- 10월 30일
- 7분 분량
요 3:1-18, 핵심 구절 요3:5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참 예배자를 찾으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의 예배를 통해 올려 드리는 모든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기쁘게 받으실 줄 믿습니다.
오늘 2025년 마흔 네번째 주일을 맞아, 여러분 모두에게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이루신 모든 은택들을 우리에게 적용하시는 성령님의 은혜와 또 그의 권능으로 말미암아 복음의 기쁜 소식을 온 세상에 전하는 영광과 은혜와 축복이 가득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우리는 지난 주, 도르트 신경의 세번째 교리인 인간의 타락에 대해서 살펴 보았는데, 이번 주에는 도르트 신경의 네번째 교리인 인간의 하나님께로의 회심에 대해서 함께 알아보면 좋겠습니다.
1) 먼저 오늘의 본문인 요한 복음 3장의 내용을 요약해 보면 바리새인이자 유대인의 지도자인 니고데모가 밤에 주님께 찾아와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 부터 오신 선생인 줄을 안다”고 하면서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도 행할 수 없다”고 고백하자 주님께서는 그에게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러자 거듭남의 개념을 이해하지 못한 니고데모가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니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라며 거듭남에 대하여 물었고 주님께서는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시며 사람이 거듭나는 것은 물과 성령으로 말미암는데, 이러한 일들은 육적인 것이 아니라 영적인 것이라고 말씀해 주셨고, 여기서 물과 성령은 내적 은혜에 대한 외적 표징인 물세례와 성령님께서 우리의 영적으로 죽은 마음을 새롭게 일으키시는 사역을 말합니다. 그러자 이번에도 니고데모가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라고 물었고 이제 예수님께서는 “너가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것들을 알지 못하느냐?”고 책망하시며, 이 같은 일들은 하늘의 일들로 모세가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한 후 제삼일에 다시 살아나시는 사역으로 말미암은 것인데, 이러한 모든 것들은 주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2) 이와 같이 영적으로 죽어 있는 우리는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조차 없고, 또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에 관한 복음을 믿을 수도 없는데, 이 중생에 대하여 도르트 신경 넷째 교리 제11조와 12조에서는, “이는 오직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우리의 도움이 없이 행하시는 사역으로, 하나님께서는 택하신 사람들에게 그분의 선하시고 기뻐하시는 일을 시행하시며 그들 안에 참된 회심을 일으키는데, 그 방법은 하나님께서 복음이 그들에게 전파되게 하시며 성령으로 그들의 마음을 강력하게 비추어 주셔서 그들이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바르게 이해하고 분별하도록 하시고 또한 회심케 하시는 동일한 성령의 효력 있는 사역을 통하여 주님께서는 사람의 가장 깊은 곳까지 뚫고 들어가셔서 닫힌 마음을 여시고 굳어진 마음을 부드럽게 하시며, 할례 받지 않은 마음에 할례를 행하시고 그의 의지에 새로운 자질들을 주입하심으로 죽은 의지를 살아나게 하시고 나쁜 의지를 선하게 하시며, 거역하던 의지를 기꺼이 행하려는 의지로, 또 완고하던 의지를 순종하는 의지로 만드시는데 이와 같이 그분께서 우리의 의지를 감동시키시고 강하게 하시기에, 마치 좋은 나무가 그러하듯이 사람의 의지는 선행의 열매를 맺을 수 있게 되는데, 이러한 회심을 성경에서는 중생, 신생, 새로운 창조,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으키신 중생이라고 하며, 이는 강설(講說)이나 도덕적인 권면 만으로 일어나는 것이 결코 아니며, 또한 하나님께서 자기의 맡은 역할을 행하시고 나면 이제 중생이나 회심의 여부가 사람의 권한에 남겨지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라, 이 중생은 초자연적이고 지극히 강력하며, 동시에 지극히 즐겁고 놀랍고 신비하여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역으로, 성경에 의하면, 이 중생은 그 능력의 면에서 창조나 죽은 자들을 부활시키시는 일보다 못한 것이 아닌 바, 따라서 하나님께서 이처럼 놀라운 방식으로 그 마음에 역사하시는 사람들은 모두 분명히, 실패함이 없이, 효력 있게 중생을 하며, 정말로 믿게 되며, 또한 그렇게 새로워진 의지는 하나님에 의하여 활성화하고 작동될 뿐만 아니라, 하나님에 의하여 활성화 되었기에 이제는 그 의지가 직접 행하게 되는데, 그러므로 ‘받은 그 은혜로 말미암아 사람이 스스로 믿고 회개한다’ 하게 되는 것입니다”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3) 이와 같이 타락한 인간 본성이 회복하는 중생과 그 중생이 일어나는 방법에 대하여 도르트 신경 네번째 교리 제7조에서는 하나님께서 그의 비밀스런 뜻을 구약 시대에는 오직 택한 백성에게만 계시하셨지만, 신약 시대에는 많은 사람들에게 계시하셨는데, 그 이유는 어느 한 민족이 다른 민족보다 우월하거나 자연의 빛을 더 잘 사용하기 때문이 아니라 다만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하심과 무조건적인 사랑에 기인하는 바, 과분하게 은혜를 받은 우리는 항상 겸손하고 감사해야 하며, 이 은혜를 받지 못한 사람들에 관하여는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을 의심하여 그를 낮추는 일이 결코 없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어진 제8조에서 10조까지는 하나님의 진지한 복음에로의 부르심에 대해서 설명하면서, 모든 사람을 진지하게 복음으로 부르시기에, 부르심을 받은 사람은 주님께 나와야 하며, 또 이렇게 하나님께 나아와 믿는 모든 사람에게 영혼의 안식과 영원한 생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복음의 부르심에 응답하지 않는 것은 복음에 결함이 있거나 복음이 제시하는 그리스도께 부족함이 있거나, 복음으로써 그들을 부르시고 심지어 그들에게 이런 은혜를 거저 주시는 하나님께 과오가 있기 때문이 아니라, 그 잘못은 모두 생명의 말씀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받아들이지 않은 그들에게 있으며, 그러나 부르심을 받아 회심하였을 때에 조차 그 원인을 사람에게 돌리지 말고 하나님께 돌려야 하는데,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영원 전에 택하셨고, 그들을 효력있게 부르셨고 또 그들에게 믿음과 회개를 주셔서 마침내 그들을 어둠의 나라에서 그분의 사랑하시는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기 때문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11조에서 13조까지는 회심과 중생을 일으키는 방법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데, 하나님께서는 복음의 외적 부르심과 성령님의 조명하심을 통해 우리가 복음을 이해하게 하시되, 닫힌 마음을 여시고 굳은 마음을 부드럽게 하시며 또한 의지를 새롭게 하심으로 죽은 의지를 살리시고 나쁜 의지를 선하게 하시며 거역하던 의지를 기꺼이 행하려는 의지로, 완고하던 의지를 순종하는 의지로 만드심으로 참된 회심을 일으키시는데, 이러한 회심을 성경에서는 중생, 신생, 새로운 창조,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으키심, 다시 살게 하심 등으로 표현하며, 이는 하나님의 초자연적이고 강력하며 지극히 놀랍고 신비한 사역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14조에서는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인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저 믿음을 사람의 자유의지에 제공하신다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실제로 사람에게 부여하시고 그 사람 안에 주입시켜 스며들게 하신다는 점에서 선물이라고 말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믿을 수 있는 능력 만을 주신 후 사람이 자유의지를 사용하여 믿기로 동의하거나 믿음의 행위를 나타내기를 기다리신다는 의미에서 선물이라는 말이 아니고, 하나님 곧 소원을 품게도 하시고 행하게도 하시며 참으로 만물 가운데서 모든 일을 행 하시는 하나님께서 사람 안에서 믿으려는 소원과 믿음의 행위 두 가지를 모두 일으키신다는 의미에서 선물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 후 제15조에서는 하나님의 이 놀라운 은혜에 대한 우리의 합당한 태도는 감사라고 말씀한 후 이어진 제16조에서는 하나님께서 사람의 의지를 회복시키시는 방법에 대해서 설명하기를 이는 나무토막이나 돌들을 대하시는 것처럼 작용하지 않고, 사람의 의지와 그 특성을 제거하거나 힘으로 눌러 강요하는 방법이 아니라, 오히려 사람의 의지를 영적으로 다시 살리고, 치유하고 교정하며, 즐거이 그러나 강력하게 변화 시키시기에, 이제 성령으로 말미암아 신속하고 신실한 순종을 하게 만드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제17조에서는 그 후에도 하나님께서는 사도들과 그 뒤를 이은 교사들을 통해 하나님의 이 은혜에 관하여 사람들에게 신실하게 가르치심으로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시고 또한 모든 교만을 버리게 하시며, 동시에 그들이 계속하여 말씀과 성례와 권징의 시행을 잘 받으면서 살아가도록 복음으로 거룩하게 권면하기를 게을리 하지 않으신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4) 이와 같은 타락한 인간의 본성과 의지의 회복에 대하여 아르미니우스는 반론을 제기하면서, a) 우리를 하나님께로 회심시키는 이 은혜는 다만 선의의 권고나 부드러운 충고에 지나지 않고 하나님의 사역의 능력은 영원한 것을 약속해 주셨다는 데 있으며 b)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의지가 신앙과 회심 쪽으로 향하도록 그를 중생시키실 때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믿음과 회개에 이르게 하시려고 사람의 의지를 강권하여 굴복시키지 않으시는 바 사람은 이 은혜에 저항할 수 있도록 하시기에 인간이 중생되는 것과 안 되는 것은 인간의 의지에 달려 있으며 c) 또 이 은혜는 의지의 작용에 앞서지 않아, 사람의 의지가 스스로 움직여 결정하기 전까지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의지가 회심에 이르도록 효과적으로 돕지 않으신다고 주장 하였습니다.
5) 이러한 아르미니우스의 반론에 대하여 도르트 공의회에서는 a) 하나님께로의 회심의 은혜가 단지 선의의 권고라는 주장은 겔 36:26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란 말씀에 위배되고 b) 하나님께서 사람을 중생시키는 은혜에 사람이 저항할 수 있다는 주장은 엡 1:19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게 된”다는 말씀에 위배되며 c) 사람의 의지가 스스로 움직여 결정하기 전까지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의지가 회심에 이르도록 효과적으로 돕지 않으신다는 주장은 롬 9:16 “그런즉 원하는 자로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는 말씀에 위배됨으로 그의 이러한 주장들을 도르트 신경을 통해 정죄 하였습니다.
6) 그런데 이 도르트 신경 네번째 교리를 “불가항력적 은혜”의 교리라고 하는데, 여기서, 불가항력적 은혜란 성령께서 자기 백성을 믿음으로 인도하시는 데 있어 결코 실패가 없으시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를 다른 말로 하면, 아버지께서 택하시고 그리스도께서 구속하신 사람들을 성령님께서는 반드시 부르시고 거듭나게 하셔서 구원하신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며 이 교리에 대해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제10장 1항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생명에 이르도록 예정하신 모든 사람들을 그의 기쁘신 뜻에 따라 정하신 적당한 때에 효과적으로 부르시는데 (롬 8:30, 11:7; 엡 1:10,11). 이는 그의 말씀과 성령을 통한 것으로서 (살후 2:13; 고후 3:3,6) 그들이 나면서부터 처해 있는 죄와 죽음의 상태에서 건져내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은혜와 구원에 이르게 하는 것으로 (딤후 1:9,10; 롬 8:2; 엡 2:1-5) 그들의 마음을 영적으로 깨우쳐 구원에 관한 하나님의 사역들을 깨닫게 하시고 (고전 2:10,12; 행 26:18; 엡 1:17,18), 돌과 같이 굳은 그들의 마음을 제하시고는 살과 같이 부드러운 마음을 주시며 (겔 36:26). 그리고 그의 전능하신 능력으로 그들의 의지를 새롭게 하셔서 그들로 하여금 선한 것을 추구하게 하시며 (빌 2:13; 신 30:6; 겔 11:19, 36:27), 그들을 효과적으로 이끌어 예수 그리스도께 나아오게 하시되 (요 6:44,45; 엡 1:9)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지극히 자유롭게 자발적으로 그리스도께 나아오게 하십니다(시 110:3; 아 1:4; 요 6:37; 롬 6:16-18) ”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7) 그런데 이렇게 하나님의 은혜가 불가항력적이어야 만 하는 이유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우리가 그만큼 완고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실은 우리는 하나님의 불가항력적 은혜가 아니고는 도저히 깨달을 수도 또 믿을 수도 또 회심할 수도 또하나님께도 다시 돌아올 수도 없는 바,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불가항력적 은혜로 우리를 구원으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또, 두번째로는 그의 구원이 그만큼 확고하다는 것입니다. 온갖 좋은 은사를 받아 거룩했던 아담과 이브가 사탄의 유혹에 넘어갔다면, 하물며 원죄로 말미암아 중생을 한 이후에도 전적부패와 전적무능함이 우리의 육신에 여전히 존재하는데, 그런 우리는 과연 구원에 따르는 참 믿음과 회심과 성화를 스스로는 도저히 이룰 수 없기에, 하나님께서는 확고한 그의 은혜로 우리를 이끄셔서 구원을 완성해 가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하나님의 불가항력적 은혜는 우리의 마음 깊숙한 곳으로 부터 감사와 찬미를 이끌어 내어 마침내 하나님께 찬양과 영광을 돌리게 되며, 또한 믿음의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8) 그래서, 루이 벌코프는 그의 조직신학 책에서 “하나님의 창조의 참된 목적은 그의 영광 즉 그의 고유한 탁월성을 외적으로 나타내시기 위한 것이었는 바, 그의 영광스런 속성들을 그의 전 창조 속에서 드러내시고 또 피조물들의 복지와 완전한 행복을 증진하시고 또 그들을 확고한 구원하심으로 말미암아, 그들의 영혼으로 부터 감사와 사랑과 찬미의 표현을 이끌어 내시고 또한 그들로 하나님을 찬양하게 하신다”고 말했던 것인 바, 그러므로 기도 하옵기는 우리의 구원에 깊이 스며 있는 하나님의 사랑과 불가항력적인 은혜를 깨닫고 감사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영광 올려 드리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소그룹 모임 가이드 및 예제 질문
Q1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구원의 은혜는 불가항력적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잠시 그의 불가항력적 은혜에 대해 묵상 해보고, 각자의 생각과 경험과 은혜를 팀원들과 나누면서 은혜 나눌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Q2 그런데, 이렇게 우리가 하나님의 불가항력적 은혜가 필요한 이유는 우리가 그만큼 완고한 존재이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잠시 각자의 삶을 돌아 보면서, 과연 우리가 하나님의 불가항력적 은혜가 아니면 구원받을 수 없는 그런 존재인지 생각해 보고, 각자의 생각과 경험을 팀원들과 나누면서 은혜 나눌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축복합니다.
기도 노트
( 오늘 말씀중 깨달아진 하나님의 성품 ) 하나님 아버지!
( 지난 한주간 혹은 오늘 하루 동안 감사한 일들 ) 해 주심에
찬송과 감사와 영광을 주님께 올려 드립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 깨닫게 해주신 죄 )를 깨닫게 해주셨음에 감사하며,
회개할 때에 용서해 주옵시고 이제 ( 새 삶 )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 주옵소서
특별히 오늘 말씀을 통하여 ( 새롭게 배운 점 ) 을 가르쳐 주심에 감사하며
( 삶의 도전 ) 살 수 있도록 은혜를 더하여 주옵소서
( 주님의 성품 ) 우리 주님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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