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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25-47 요10 가이드

요한 10:7-18, 핵심 구절 요10:14-15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참 예배자를 찾으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의 예배를 통해 올려 드리는 모든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기쁘게 받으실 줄 믿습니다.

오늘 2025년 마흔 두번째 주일을 맞아, 여러분 모두에게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이루신 모든 은택들을 우리에게 적용하시는 성령님의 은혜와 또 그의 권능으로 말미암아 복음의 기쁜 소식을 온 세상에 전하는 영광과 은혜와 축복이 가득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우리는 지난 주, 도르트 신경의 첫번째 교리인 하나님의 선택과 유기에 대해서 함께 살펴 보았는데, 이번 주에는 도르트 신경의 두번째 교리인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속죄에 대해서 함께 알아보면 좋겠습니다.

1)     먼저 오늘 본문의 내용을 요약해 보면, 오늘의 본문은 9장의 사건 즉 안식일 날 주님께서 길을 가시다가 나면서 맹인된 사람에게 눈을 떠 보게 하는 기적을 베푸셨는데, 그러나 종교 지도자들은 이 기적을 부인하려 하였고, 이에 그 치유를 받았던 맹인이 분명 자기는 맹인으로 있다가 지금 보게 되었다고 하며, 그가 하나님께로 부터 오지 아니하였으면 이런 일을 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하자, 바리새인들이 “네가 우리를 가르치려 하느냐?”고 하며 그를 쫓아 내었고, 이렇게 눈을 고침 받은 사람이 유대인들로 부터 축출을 당하였다는 소식을 들은 주님께서는 그를 만나 “네가 인자를 믿느냐?”고 물으셨고, 그 사람이 “주여 내가 믿나이다”고 하며 주님께 절하였고, 이에 주님께서는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맹인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시면서 이어진 10장에서 주님은 “나는 OO 이다”라고 선포하시는 “I statement” 세가지를 말씀해 주시는데, 그것은 바로 “나는 문이다”, “나는 선한 목자다” 그리고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다”라는 말씀이었습니다. 먼저 10장 1-10절에 나오는 “나는 문이다”라고 선언하신 “문 비유”에서는 “돌로 울타리를 친 양 우리에는 저녁이 되면 여러 양떼들이 문으로 들어가 보호 되다가 아침이 되면 양의 목자들이 와서 자기 양을 부르면 각 양떼들은 주인의 목소리를 듣고 그를 따라 문으로 나가 초장으로 인도함을 받는데, 이와 같이 양들은 문을 통해 들락 날락하며 자유롭고 풍성한 삶을 누리게 되는데, 절도와 강도들은 문을 통하여 양의 우리에 들어가지 않고 도둑질하고 오히려 그들을 멸망시키려 한다고 하시면서, 맹인을 돌보지 아니한 이스라엘의 종교 지도자들을 책망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어진 11-21절에서는 주님은 “나는 선한 목자다”라고 하시며,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은 양들을 위해 목숨을 버리실 (11-13절) 뿐 만 아니라 다시 살아 나실 것이며 (17-21절), 또한 그는 자기 양들을 아시고 (14-15절) 그들을 우리 안으로 인도 하실 것이라고 (16절) 말씀하시면서, 삯꾼은 목자가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 나기에 이리가 양을 물어가고 헤치게 된다고 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돌보지 아니한 종교 지도자들을 책망하셨습니다. 그리고 이틀 뒤 수전절에 성전 안 솔로몬 행각에 있으실 때의 사건이 기록되어 있는데, 여기서 주님께서는 “당신이 그리스도이면 밝히 말씀하소서”라는 유대인의 채근에 주님께서는 “내가 너희에게 이미 말하였지만 너희가 믿지 아니하였다”고 하시면서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하는 일들이 나를 증거하는데도 불구하고 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였도다”고 하시며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고 그들은 나를 따른다”고 말씀해 주셨고, 또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말씀해 주셨지만, 유대인들은 신성 모독이라고 하며 오히려 그를 돌로 치려 하였고, 이에 주님께서는 “만일 내가 내 아버지의 일을 행하지 아니하거든 나를 믿지 말려니와 내가 행하거든 나를 믿지 아니할 지라고 그 일을 믿으라. 그러면 너희가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음을 깨달아 알리라”고 말씀해 주신 후, 그들을 벗어나 요단강 저편 요한이 처음으로 세례를 베풀던 곳으로 가셨습니다.  

2)     그런데, 오늘 본문 11절과 15절에서 주님은 “나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고 분명히 말씀하셨는데, 이러한 그리스도의 죽음과 인간의 속죄에 대하여 도르트 신경 두번째 교리에서는 제1조에서 먼저 하나님은 자비하신 분이시지만 동시에 공의로운 분이시기에 우리 인간이 지은 죄에 대하여 분명히 징벌을 행하시는 분이시라고 말한 후 제2조에서는 우리 인간 스스로는 이러한 하나님의 공의의 요구에 보상을 할 수 없고 또한 하나님의 공의의 진노에서 우리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기에, 하나님께서는 그의 사랑하시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죄 값과 저주를 담당하게 하심으로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보상을 이루셨습니다. 그리고 이어진 제3조에서는 이러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은 가장 완전한 희생으로 온 세상의 죄를 충분히 보상할 수 있는 무한한 가치가 있다고 하면서 제4조에서 그 이유는 그 분은 온전한 거룩함을 가지신 완전한 인간이실 뿐 만 아니라 하나님의 독생자로서 성부와 성령과 동일하신 영원하고 무한한 본질을 지니신 분이기 때문이라고 한 후 제5조에서는 따라서 복음은 이렇게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누구든지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된다고 약속하고 있는 바, 이 복음이 온 세상에 선포되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3)     그리고, 이어진 제6조에서는 그러나 이렇게 복음에로 부름을 받은 많은 사람들이 회개 하지도 않고 또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불신앙 가운데 머무른 바, 그들은 결국 멸망할 수 밖에 없는데, 이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드려진 희생이 모자라거나 부족해서가 아니라 전적으로 믿지 않은 그 사람에게 책임이 있으며 그러나 제7조에서는 그리스도를 믿고 죄와 파멸에서 구원 받은 사람들이 그렇게 믿게 된 것과 또한 구원 받게 된 것은 자기의 공로가 아니라 온전히 하나님의 은혜 때문임을 고백할 수 밖에 없게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어진 제8조에서는 이 그리스도의 죽으심의 효력은 하나님의 가장 은혜로운 뜻과 목적으로 말미암는데, 그 효력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시고, 또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들을 의롭다 하시며 또한 완전한 구원을 이루어 주시기에 충분한 것이라고 하면서 마지막 제9조에서는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의 뜻이 옛날부터 지금까지 계속 이루어져 왔고, 앞으로도 사망의 권세와 훼방에도 불구하고 계속될 것이며, 결국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정하신 성도가 한 곳에 모여 그리스도의 피로 그 기초를 이룬 교회가 성도들로 충만하여,, 그곳에서 변함 없는 사랑의 주님을 구세주로 섬기며 영원히 그의 영광을 찬미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4)     그런데 이와 같은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의 대속과 그 효력에 대하여 아르미니우스는 반론을 제기하면서, a)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 아들을 십자가에 돌아가시도록 내 주신 것은 어떤 특정 사람들을 구원하고자 하는 특별하고 확정적인 작정에서 하신 것이 아니라 b) 그리스도의 죽으심의 목적은 그분의 보혈로 은혜의 새 언약을 확정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은혜 언약이든 행위 언약이든 사람들과 다시 언약 관계에 들어갈 권리를 아버지로 부터 얻기 위함 이었다고 하면서 c)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인하여 얻게 되는 유익을 모든 사람들에게 동등하게 베풀어 주셨지만, 구원을 받고 안 받고는 그들의 자유의지에 달려 있다고 주장하면서 d) 그리스도의 속상은 누군가의 구원 그 자체나, 혹은 이 속상을 자신의 소유로 삼는 방편인 믿음에 실제적인 공효로서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그분은 성부께서 인간을 새롭게 상대하시거나, 혹은 원하시는 새로운 조건을 규정할 수 있는 근거를 얻으셨는데, 그 조건들을 충족시키는 일은 사람의 자유의지에 달려 있다면서 e) 모든 사람은 하나님과의 화목한 상태가 되었고 또 언약의 은혜에 받아 들여졌기에 따라서 모든 사람은 원죄의 죄책에서 해방되었기에, 아무도 원죄 때문에 정죄 받지 않으며, f) 심지어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택자들을 위하여 돌아가실 수도 없었고, 그럴 필요도 없었으며 실제로 그들을 위해 죽으신 것도 아니라고 주장하였습니다.

5)     이러한 아르미니우스의 반론에 대하여 도르트 공의회는, a) 주님께서는 요 10:15, 17에서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나는 저희를 알며”라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는 바,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 아들을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도록 내 주신 것은 어떤 특정 사람들을 구원하고자 하는 특별하고 확정적인 작정에서 하신 것은 아니라는 주장은 성경과 어긋나며, 또한 성부의 지혜와 예수 그리스도의 공효를 모욕하는 것이며 b) 또 성경은 히 7:22; 9:15,17 등에서 그리스도께서 더 나은 언약, 곧 새 언약의 보증과 중보자가 되셨다고 분명히 가르치는 바, 그리스도의 죽으심의 목적이 새 언약을 확정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사람들과 다시 언약 관계에 들어갈 권리를 얻기 위함 이었다고 하는 주장은 성경 내용과 크게 어긋나며 c) 또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인하여 얻게 되는 모든 유익을 모든 사람들에게 동등하게 베풀어 주셨지만, 그의 속상이 구원이나 믿음에 실제적으로 작용하지 않고, 또 구원을 받고 안 받고는 사람들의 자유의지에 달렸다는 주장은 성경과 상충되며 그의 죽음을 멸시하고 또 그의 죽으심의 열매와 유익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며 d) 또 모든 사람이 하나님과의 이미 화목한 상태가 되었고 원죄의 죄책에서 해방 되었으며 심지어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택자들을 위하여 돌아가실 수도, 그럴 필요도, 실제로 그들을 위해 죽으신 것도 아니라는 주장은 엡 2:3절 우리가 “본질상 하나님의 진노의 자식”이라는 말씀과 또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요 10:15)”는 주님의 말씀에 반대되는 바 그의 이러한 모든 주장들을 정죄 하었던 것입니다

6)     그런데, 이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의 가치에 대하여 도르트 신경 둘째 교리 제3조에서는 그리스도의 죽으심은 죄에 대한 유일하고도 가장 완전한 희생 제사와 속상으로 그 가치는 무한하여 온 세상의 죄를 충분히 속하고도 남을 만한데, 그 이유는 자신을 죽음에 내 놓으신 그 분이 단지 참되고 완전하게 거룩하신 사람일 뿐 만 아니라 하나님의 독생자, 곧 성부와 성령과 함께 똑같이 영원하시고 무한하신 본질을 가지신 신이시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또한 그리스도께서 그렇게 무죄하신 참 인간이자 또한 무한한 능력을 가지신 신이셔야 만 했던 이유는 우리가 마땅히 받아야 했던 하나님의 무한한 진노와 저주를 그분이 몸소 다 겪으셔야 했고 또 겪으셨기 때문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그리스도의 죽으심이 무한한  가치 즉 온 세상의 모든 죄를 충분히 속하고도 남을 무한한 가치를 가지고 있기에, 복음의 약속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믿으면 누구든지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을 수 있는 바, 모든 이들에게 믿음의 길이 열려 있기에, 이 은혜의 구원의 복음의 약속을 회개하고 믿으라는 명령과 함께 모든 민족과 모든 사람에게 아무런 차별이나 예외 없이 선포되고 또 선포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그리스도의 속죄의 은혜는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흘러가지 않고 또 그 은혜가 흘러갈 필요도 없는데 그것은 그가 구원의 복음을 이미 거부하였기 때문인데, 그런 의미에서 이 구원의 은혜를 제한 속죄라고 말하고 있는데, 그 의미는 그리스도의 속죄는 그 능력에서 제한이 없고 그 가치는 무한하기에, 믿는 사람에게 그 은혜가 흘러가, 그 믿는 사람을 확실히 구원하는 무한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즉, 그리스도의 죽음은 아르미니우스가 이야기 한 것처럼, 믿음이나 구원에 대한 확실한 효과 없이 그저 인간의 불완전한 자유 의지를 회복시키는데 그치거나, 믿어도 구원에 이르지 못하는 그런 불확실하고 불확정적인 것이 아니라, 그의 십자가 죽으심과 그의 적극적인 순종은 믿는 사람의 죄책을 확실히 제거할 뿐 만 아니라, 또한 그리스도께서 획득하신 그의 의를 전가하여 확실하고 유효한 칭의함을 받아 구원에 이르게 하는데, 그래서 롬 8:31-39절에서는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고 말씀 했고

7)     그래서 주님께서 요 10:28-29 에서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고 하셨고 사도 바울 또한 빌 1:6 에서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고 말했던 바, 그러므로 기도 하옵기는 우리도 이와 같은 확실한 구원의 토대 위에 굳건히 믿음으로 써서, 어떠한 유혹에도 흔들리지 말고 끝까지 승리하여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과 영광을 돌려 드릴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소그룹 모임 가이드 및 예제 질문

Q1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 그리스도의 대속 죽음의 가치는 무한하여, 이 세상의 모든 죄인을 구원하기에 부족함이 없으며, 또한 그를 믿는 자를 확실히 구원하는 능력이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잠시 그의 놀라운 은혜를 묵상하며, 우리가 은혜를 누리며 확신 가운데 있는지 생각해 보고 각자의 생각과 경험과 은혜를 팀원들과 나누면서 은혜 나눌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Q2 그러므로, 우리는 이렇게 확실한 구원의 약속이 있는 그리스도의 구속을 온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잠시 우리의 삶을 돌아 보면서, 과연 우리는 이런 사명의 삶을 살아 가고 있는지 돌아 보고, 각자의 생각과 경험을 팀원들과 나누면서 은혜 나눌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축복합니다.

기도 노트

(  오늘 말씀중 깨달아진 하나님의 성품  ) 하나님 아버지!

(  지난 한주간 혹은 오늘 하루 동안 감사한 일들 ) 해 주심에

찬송과 감사와 영광을 주님께 올려 드립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        깨닫게 해주신 죄          )를 깨닫게 해주셨음에 감사하며,

회개할 때에 용서해 주옵시고 이제 (  새 삶  )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 주옵소서

특별히 오늘 말씀을 통하여 ( 새롭게 배운 점 ) 을 가르쳐 주심에 감사하며

(    삶의 도전     ) 살 수 있도록 은혜를 더하여 주옵소서

( 주님의 성품 ) 우리 주님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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