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25-44 눅16 가이드
- SJ Kim

- 9월 25일
- 7분 분량
눅 16:19-31, 핵심 구절 눅16:22-23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참 예배자를 찾으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의 예배를 통해 올려 드리는 모든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기쁘게 받으실 줄 믿습니다.
오늘 2025년 서른 아홉 번째 주일을 맞아, 여러분 모두에게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이루신 모든 은택들을 우리에게 적용하시는 성령님의 은혜와 또 그의 권능으로 말미암아 복음의 기쁜 소식을 온 세상에 전하는 영광과 은혜와 축복이 가득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우리는 지난 주, 벨직고백서 마지막 장으로 최후의 심판에 대해서 살펴 보았는데, 이번 주에는 중간 상태 즉 우리가 죽었다가 최후의 날에 부활하기 까지의 기간에 대해서 함께 알아보면 좋겠습니다.
1) 먼저 오늘 본문 내용을 요약해 보면, 오늘 본문이 나오는 눅 16장은 주님께서 돈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 가에 대해 교훈을 주신 내용으로, 월스트리트 저널의 한 작가가 “돈은 천국을 제외한 모든 곳으로 통하는 만능 여권이자 행복을 제외한 모든 것을 제공하는 만능 공급자지만 그러나 또한 돈은 탐욕과 경쟁을 유발하는 존재로 훌륭한 종이 될 수도 있고 아니면 끔찍한 주인이 될 수도 있다”고 말한 것처럼, 돈을 사랑하는 것은 온갖 악의 뿌리이자 (딤전 6:10), 온 세상을 부패와 정욕으로 가득 채우는데 (벧후 1:4) 일조할 수 있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예수님께서는 16장에서 독특한 대조를 드러내는데요. 즉 1-13절에서는 주인의 소유를 낭비하던 옳지 않은 청지기가 주인에게 들켜 쫓겨날 것을 알고 주인에게 빚진 자들의 빚을 탕감해 줌으로 오히려 주인으로 부터 칭찬 받은 이야기를 해 주시면서 지극히 작은 것과 불의한 재물에도 또 남의 것에도 충성하되 그러나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음을 교훈해 주셨고, 이어진 14-31절에서는 재물을 잘못 사용한 예를 들어 주셨는데, 먼저 겉으로는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옳다 하지만 결국 마음으로는 돈을 좋아하는 바리새인들을 꾸짖으시면서, 부자와 거지 비유를 해 주셨는데, 이 비유에서는 좋은 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롭게 즐기면서 자기 집 앞에 일평생 살았던 거지를 돌보지 않은 부자의 이야기를 들려 주시면서 결국 살았을 때 그저 자기 자신을 살찌우고 자기의 즐거움만 추구했던 부자는 죽어 음부에서 고통과 괴로움을 받게 될 것이지만 살면서 고난을 받았던 거지 나사로는 낙원에 들어가 위로를 받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2) 주님께서는 오늘 본문의 비유에서 낙원과 음부에 대해 몇가지 사실을 우리들에게 알려 주고 계시는데, a) 낙원과 음부는 육체적 죽음 후 부활할 때 까지 거하는 곳으로 의인은 낙원에 악인은 음부에 가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b) 그리고 낙원의 나사로와 음부의 부자를 보면 위로를 받기도 하고 또 고통도 받는 그런 존재 상태임을 알 수 있습니다. c) 또 두 곳 사이에는 큰 구렁텅이가 있어 서로 오갈 수 없으며 이 구렁텅이를 넘어 세상으로도 갈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d) 마지막으로 구원하는 복음을 전하기 위해 죽은 자를 세상에 다시 보내지 않음도 알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낙원과 음부는 육체를 떠난 영혼들을 위해 예비된 곳으로 최종적인 완성의 단계인 천국과 지옥에 부활체를 입고 들어 가기 전까지 영혼의 상태로 기다리는 곳으로 낙원은 중간 상태의 영역으로 완성된 하나님 나라와 분리 할 수 없는 단일한 기대의 두가지 측면으로 이해할 수 있으며, 본질적으로 낙원과 천국은 그 지복과 지선의 상태에 있어 서로 다르지 않음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3) 이와 같은 중간 상태에 대하여, 여러가지 견해들이 있는데 먼저 연옥설이 있습니다. 로마 가톨릭교회의 트렌트 공의회 (Council of Trent)의 결정에 의하면, 완전히 깨끗해지지 않은 영혼들은 연옥에 가서 고통을 받으면서 천국에 들어갈 준비를 하게 된다고 합니다. 즉 순교자들과 같은 사람들은 하늘로 바로 가지만, 세례 받은 후에 이 땅에서 살면서 죄를 짓다가 별세한 사람들은 일단 연옥에 가서 불 가운데 계속되는 고통을 통해 깨끗함을 받은 후에 야 하늘나라로 올라간다고 합니다. 이와 같이 연옥에서 사람들이 받는 고통은 불의 고통인데, 그 불의 고통은 이 세상에서 제일 큰 고통보다 큰 것이라고 합니다 (Thomas Aquinas). 그리고 이 연옥에 머무는 기간은 돈을 바치면 단축되기에, 사람이 죽기 전에 재산을 교회에 바치거나 그 친척이 죽은 자를 위하여 돈을 바치면 연옥의 기간이 단축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런 교리를 가르치지 않습니다. 이러한 연옥 교리의 근거 구절로 제시하는 구절들은 모두 성경을 잘못 해석한 것인데, 예를 들어 고전 3:15에 “구원을 얻되 불 가운데서 얻은 것 같으리라”고 한 말씀을 소위 연옥의 불을 의미한다고 해석하였지만, 이것은 비유적인 표현으로 주님의 심판 때에는 신자들이 현세에서 성경에 부합하지 않게 행한 것들이 모두 불에 타서 사라진 후 구원을 받는다는 의미이며 또 로마 가톨릭교회가 연옥설의 주요 근거로 제시하는 마카비 1서 2:39–45은 유다 마카비우스 (Judas Maccabeus)가 전사한 군인들의 시체를 가져가려고 그 시체를 찾아보던 중 그들의 옷 속에 우상들이 있음을 발견하였고, 이에 그는 함께 있던 자들과 주님께 그 죽은 자들의 죄를 사해 달라고 기도하였고, 그리고 그 시체를 예루살렘에 보내면서 돈도 같이 보내, 죽은 군인들을 위하여 속죄 제사를 드려 주도록 부탁하였는데, 이 구절을 연옥의 근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말대로 연옥에 가는 자는 사소한 죄를 지은 자들에 국한 된다면, 죽은 군인들은 우상을 섬긴 큰 죄인들이었으니, 그들의 교리대로 라면 ‘지옥’에 갈 자들로 연옥 교리와 관계가 없다고 볼 수 있고, 특히 저희 개신교에서는 이 마카비서를 정경으로 인정하지 않기에 이 교리 또한 성경적이라고 볼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폴 틸리히(Paul Tillich) 같은 신학자도 고통 만을 통해 성화가 이루어진다는 것은 불가능하며 고통 속에서도 은혜가 있어야 인간의 변화가 이루어진다고 하면서 연옥설을 비판하였습니다.
4) 두번째로는 안식교나 여호와 증인이 주장하는 영혼 수면설이 있는데, 고전 15:18 말씀 즉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라는 구절을 인용하여 죽으면 무의식적인 휴식 혹은 수면 상태에 들어간다고 주장하는 설입니다. 그러나, 여기 “잠자다”라고 번역된 κοιμάομαι (koimaomai) 는 죽음의 상태에 대한 완곡 표현법으로, 이것을 소위 ‘영혼 수면’ 으로 해석하는 것은 잘못된 적용이라고 볼 수 있을 것 입니다.
5) 그리고 세번째로는 최근 일부 자유주의 신학자들이 주장하는 영혼 멸절설이 있는데, 이들은 자비하신 하나님께서 그가 창조한 존재를 영원한 고통 속에 넘기실 리가 없다고 하면서, 대신 하나님께서는 악인들은 완전히 말살하실 것이라고 하는 영혼 멸절설을 주장하면서, 신자들은 영원히 살아서 몸의 부활을 경험하게 될 것이지만, 악인들은 어느 시점에 그 영혼조차 멸절되게 될 것이라고 믿는데, 이는 전혀 성경적이지 않는 것입니다.
6) 오히려 성경에서는 중간 상태에 대하여 사람은 육체적 죽음이후 그들의 영혼은 마지막 심판의 날에 부활하게 될 때까지 의식을 지니고 존재하는데, 신자는 낙원에서 잠정적 축복을 누리고 불신자는 ‘음부’(hades)에서 의식을 지닌 채 고통받으며 부활을 기다리다 마지막 심판의 날에 모두 부활의 몸을 입고 신자는 천국에서 영원한 영광 가운데 거하게 될 것이지만 불신자는 지옥 즉 불 못에서 영원한 고통을 받게 된다고 성경은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낙원과 음부는 중간 상태의 영역으로 계 20:14 에서 “사망과 음부도 불 못에 던져지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 못이라”는 말씀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완성된 하나님 나라 즉 천국과 최종 형벌의 장소인 지옥과는 분리 할 수 없는 단일한 기대의 두가지 측면으로 볼 수 있는 것입니다.
7) 이와 같은 중간 상태 즉 이 땅에서의 육체적 죽음 후 다시 부활하기 까지 기간 중의 영혼의 상태에 대하여 웨스트민스터 제32조에서는 “1항 사람들의 육체는 죽은 후 흙으로 돌아가 썩게 되나 죽지도 자지도 않는 그들의 영혼은 불멸의 본질을 가져서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로 즉시 돌아갑니다. 의인의 영혼은 죽을 때에 온전히 거룩해져서 지극히 높은 하늘로 영접되어 빛과 영광 가운데서 하나님의 낯을 뵈오며 그들의 육체가 온전히 구속될 때를 기다리지만 그러나 악인의 영혼은 지옥에 던져져서 그곳에서 고초와 흑암 가운데 지나며 큰 날의 심판때까지 갇혀 있는데, 성경은 육체와 나뉜 영혼을 위하여 이 두 장소 외에는 다른 아무 곳도 인정하지 않습니다. 2항 그리고 마지막 날에 살아있는 자들은 죽지 않고 변화될 것이며 죽은 자들은 모두 본래와 같은 몸으로 부활할 것인데, 이 부활체는 질적으로는 전과 다를 것이나 같은 몸으로 영혼과 다시 결합하게 될 것입니다. 3항 또한 불의한 자의 몸은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살아나 부끄러움을 당하게 될 것이나 의인의 몸은 그리스도의 영으로 살아나 영광을 받으며 그리스도 자신의 영광스러운 몸을 닮게 될 것입니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8)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중간 상태에 대해서 성경과 고백서가 고백하는 바를 따라 낙원이나 음부에 있는 영혼이 임의로 땅으로 갈 수 없도록 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본문 26절과 31절 참조) 물론 구원사에 있어 특별한 계시와 목적을 위해 허락하신 경우도 볼 수 있는데, 예를 들어, 변화산 상에서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님과 더불어 이야기 한 예와 같이 구원사에 있어 특별한 계시와 목적을 위해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는 죽은 영혼이 임으로 땅으로 갈 수 없도록 되어 있는 것입니다. 물론 삼상 28장에서 사울이 신접한 여인을 통하여 사무엘의 영혼을 불러낸 사건을 통해 그렇지 않다고 반박하는 분들도 있습니다만, 그러나 이 사건에 나타난 사무엘은 사무엘의 영이 아니라, 사무엘을 가장한 거짓 영으로 보아야 하는데, 어떤 이들은 여인이 사무엘인 줄 알고 놀란 것과 사울이 그가 사무엘인 줄 알고 그의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였고, 또 사무엘의 영이 예언한 내용이 그가 살아 있을 때 한 예언의 내용과 완전히 일치한 점을 들어 무당이 불러낸 영이 진짜 사무엘의 영이라고 말하지만, 고후 11:14-15 에서 “사탄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사탄의 일꾼들도 자기를 의의 일꾼으로 가장하는 것이 또한 대단한 일이 아니니라”는 말씀처럼 거짓 영이 사무엘의 예언을 알고 마치 자기가 사무엘인 것처럼 행세하는 것은 다반사인 바, 우리 믿는 자들은 이러한 사탄의 속임수에 넘어가지 않도록 주의하여야 할 줄로 믿습니다.
9) 아뭏든 이러한 중간상태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은 우리에게 큰 위로가 되는데, 첫째, 그리스도인들은 죽음이후 영적인 상태가 되어 주님의 임재를 누리게 되며 둘째 고린도후서 5:6-8 “그러므로 우리가 항상 담대하여 몸으로 있을 때에는 주와 따로 있는 줄을 아노니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로라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있는 그것이라”는 말씀 처럼, 현재 우리의 삶은 실제로는 주님과 떨어져 있는 일종의 순례의 삶일 뿐이지만, 그러나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죽음은 결국 이 순례를 끝내고 천성, 즉 우리의 진정한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셋째, 칼빈이 이야기 한 것처럼, 죽음 후부터 우리 영혼은 영원한 복을 누리기 시작하여, 마지막 부활의 때에는 그 복의 절정으로, 영원한 복을 누리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10) 따라서, 바울이 빌 1:20-24 에서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그러나 만일 육신으로 사는 이것이 내 일의 열매일진대 무엇을 택해야 할는지 나는 알지 못하노라 내가 그 둘 사이에 끼었으니 차라리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라 그렇게 하고 싶으나 내가 육신으로 있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고 하며 죽음 이후 그리스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나, 이 땅에서 육신으로 사는 것은 열매를 맺는 일이며 또한 성도들에게 유익을 끼치는 것이므로 내생을 기대하며 이 땅에서 소망으로 살아갔듯, 기도 하옵기는 우리도 믿음의 선진들의 삶을 쫓아, 내생에 대한 기대와 소망 가운데, 이 나그네의 삶에서 열매 맺으며 또한 이 세상에 유익을 끼치는 우리 모두로 살아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소그룹 모임 가이드 및 예제 질문
Q1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 믿는 자들은 이 세상 뿐 만 아니라, 죽음이후 부활하기 까지의 중간 상태에서도 또한 새 하늘 새 땅에서도 지복을 누리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잠시 이렇게 우리가 누릴 지복의 상태에 생각해 보면서, 이로써 어떤 위로를 얻는지 생각해 보고 각자의 생각과 경험과 은혜를 팀원들과 나누면서 은혜 나눌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Q2 그리고, 비록 우리가 이 땅에서 나그네의 삶을 살아가지만, 우리에게는 영원한 나라 본향이 있음을 알고 그런 기대와 소망으로 이 땅을 복음으로 살되 내세의 상급을 위해 이 세상에 유익을 끼치는 삶을 살아야 함을 알 수 있었는데, 잠시 우리의 삶을 돌아 보며, 우리는 오늘 어떤 씨앗을 뿌리고 있는지 돌아 보고, 각자의 생각과 경험을 팀원들과 나누면서 은혜 나눌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축복합니다.
기도 노트
( 오늘 말씀중 깨달아진 하나님의 성품 ) 하나님 아버지!
( 지난 한주간 혹은 오늘 하루 동안 감사한 일들 ) 해 주심에
찬송과 감사와 영광을 주님께 올려 드립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 깨닫게 해주신 죄 )를 깨닫게 해주셨음에 감사하며,
회개할 때에 용서해 주옵시고 이제 ( 새 삶 )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 주옵소서
특별히 오늘 말씀을 통하여 ( 새롭게 배운 점 ) 을 가르쳐 주심에 감사하며
( 삶의 도전 ) 살 수 있도록 은혜를 더하여 주옵소서
( 주님의 성품 ) 우리 주님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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