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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25-40 골2 가이드

골 2:6-19, 핵심 구절 골2:12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참 예배자를 찾으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의 예배를 통해 올려 드리는 모든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기쁘게 받으실 줄 믿습니다.

오늘 2025년 서른 다섯번째 주일을 맞아, 여러분 모두에게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이루신 모든 은택들을 우리에게 적용하시는 성령님의 은혜와 또 그의 권능으로 말미암아 복음의 기쁜 소식을 온 세상에 전하는 영광과 은혜와 축복이 가득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우리는 지난 주, 교회의 성례에 대해서 살펴 보았는데, 이번 주에는 개혁주의 교회의 두 성례 중 첫번째로 교회의 세례에 대해서 함께 알아보면 좋겠습니다.

1)     먼저 오늘 본문 내용을 요약해 보면, 골로새서는 바울이 로마 가택 연금중 쓴 4개의 옥중서신 중 하나로 골로새 교회에 이단, 즉 그리스도의 선재성을 부인하고, 인본주의적 철학을 강조하며, 천사 숭배와 유대교의 규례를 지킬 것을 강조하는 이교적 가르침이 침투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이에 대해 교훈하기 위해 쓰여진 서신서로 바울은 그리스도는 모든 창조물이나 권세들보다 탁월하신 분으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세례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또한 일으키심을 받아 그의 충만하심에 참여한 바, 철학이나 천사 숭배나 규례에 얽매이지 말고 그리스 안에서 행하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새사람을 입으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2)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세례의 의미를 잘 설명해 주고 있는데요. 우리의 구원이 그리스도의 대속 죽음과 부활로 말미암은 의를 전가 받아 칭의함을 받고 하나님과 화목을 이루어 그의 자녀이자 그의 거룩한 백성이 되어 거룩하게 살아가는 것인 바, 이 은혜는 성령이 말씀을 통하여 우리를 그리스도와 연합하게 하심으로 말미암는 은혜입니다. 그래서 겔 36:24-28 에서 “내가 너희를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인도하여 내고 여러 민족 가운데에서 모아 데리고 고국 땅에 들어가서 맑은 물을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하게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 숭배에서 너희를 정결하게 할 것이며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1)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2)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내가 너희 조상들에게 준 땅에서 너희가 거주하면서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고 말씀하신 것인데, 오늘 본문에서 이러한 죄 용서 혹은 죄 씻음을 그리스도의 할례라고 하면서, 우리는 이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었고, 또한 그와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다고 말씀하면서 이러한 그리스도의 할례의 은혜에 대한 신약의 표징이 바로 세례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우리가 세례시 물에 잠기거나 혹은 물을 뿌리는 것은 우리가 죄 씻음을 받았다는 표시이며 또한 우리가 물에 잠겼다가 다시 일어나는 것은 성령께서 말씀을 통하여 우리의 옛사람이 죽고 새사람이 된 것을 보여주며, 또한 이 예식을 통하여 우리가 교회의 일원 즉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는 것을 보증해 주는 성례인데,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은 성례를 통하여 말씀과 성령 안에서 일어난 일들을 우리가 이해할 수 있게 하시며 또한 우리가 믿음에 더욱 굳게 서서 성장해 나갈 수 있도록 하신 것입니다.

3)     그러므로 이러한 은혜를 입은 우리는 세상 어떤 철학과 종교와 의식보다 탁월하신 그리스도 안에서 행해야 하는데, 여기서 그리스도 안에서 행한다는 말은 a) 1:10 말씀처럼 그리스도에 합당한 생활을 한다 b) 혹은 그리스도의 주권을 인정하면서 그 분에게서 배우며 그에게 순종하며 살아간다는 의미로 c) 이는 또한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영접한 것의 외적 표현으로써 그분의 임재가 삶의 모든 영역을 고무하고 빚어가도록 하는 삶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4)     이와 같은 교회의 세례에 대하여 벨직 고백서 제34조 에서는 “우리는 율법을 완성시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의 피를 흘림으로써 사람들이 그들의 죄의 보상으로 삼을 수 있었던 혹은 삼으려던 모든 피흘림의 대신하여 완성하신 것을 믿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그는 피로써 행한 할례를 철폐하시고 그 대신 세례의 성례전을 제정하셨는데, 세례를 통하여 우리가 하나님의 교회에 용납되고 다른 모든 사람들과 타 종교들로 부터 떨어져 나와, 전적으로 그에게 속하게 되었다는 표지와 표징을 지니게 되는데, 이 세례는 하나님께서는, 은혜로운 우리의 아버지이시자, 영원한 우리의 하나님이 되심에 대한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자기에게 속한 모든 사람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순수한 물로 세례를 받을 것을 명하셨던 것입니다. 이러한 세례가 우리에게 상징하여 주는 것은 마치 물이 세례 받는 사람의 몸에 뿌려질 때 몸의 때가 씻겨 없어지듯이 성령의 힘으로 그리스도의 피가 세례 받는 사람의 영혼에 내적으로 뿌려져서 죄를 씻어 영혼을 정결하게 하고 우리를 진노의 자식들로부터 변하여 하나님의 자녀 들이 되게 중생 시키는 것인데, 이는 물질적인 물의 힘이 아니라, 다만 하나님의 아들의 고귀한 피를 뿌림으로 말미암는 것인데, 이는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홍해가 되셔서, 우리가 이 홍해를 통과함으로 악마를 상징하는 바로 왕의 폭거를 피하여 가나안의 영적인 땅에 들어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성례의 사역에 대해서는 교역자들은 성례 즉 외적으로 보이는 것을 베풀지만, 그러나 우리 주님께서는 이 세례의식을 통하여, 여러가지 보이지 않는 선물과 은혜를 주시는데, 즉 죄 씻음과 정화, 그리고 우리 영혼의 더러움과 불의를 제거해 주시고 우리의 영혼을 새롭게 하여서 모든 위로로 채워 주시며 또한 하나님 아버지의 선하심에 대한 참된 확신을 가지게 하실 뿐 만 아니라 우리가 옛사람과 함께 옛사람의 모든 행위를 벗고 새 사람을 입혀 주시는 것입니다”고 하면서, 이어서 “그러므로 우리는 영생을 얻기를 간절히 바라는 사람은 이 세례를 단 한번 받되, 같은 세례를 되풀이하지 말아야 한다고 믿는데, 이는 우리가 두 번 중생할 수 없기 때문이며, 또한 이 세례는 우리에게 물을 뿌리고 우리가 그것을 받을 때 만이 아니라 우리의 전 생애를 통해 효과를 나타낸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재세례파의 과오를 배격하는데, 왜냐하면, 그들은 그들이 전에 받은 단 한 번의 세례에 만족하지 않으며 또한 신자들의 유아들에 대한 유아 세례를 정죄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전에 이스라엘의 어린아이들이 우리의 아이들에게 주신 것과 같은 약속을 할례를 통하여 받았듯이, 우리의 아들 또한 유아 세례를 받아 언약의 상징으로서 세례를 받고 인침을 받음을 믿으며, 또 사실 그리스도께서는 장년들과 마찬가지로 신자들의 어린이들의 죄 씻음을 위해서도 피를 흘리셨음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아이들이 출생한 직후, 그들을 위하여 어린 양을 제물로 바치라고 율법에서 명령하셨듯, 우리들의 유아들도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으로 말미암는 성례전을 받음으로 그들을 깨끗하게 하신 그리스도의 사역에 대한 상징인 그리스도의 성례를 받아야 하며,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유아들에게 행한 할례는 우리 아이들에게 행한 세례와 같기 때문인데, 그래서 바울은 세례를 그리스도의 할례라고 불렀던 것 입니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5)     이 벨직 고백에서 알 수 있듯, 결국 세례는 물이 사람의 몸에 뿌려질 때 몸의 때가 씻겨 나가듯, 성령의 힘으로 그리스도의 피가 세례 받는 사람의 영혼에 내적으로 뿌려져 죄를 씻고 영혼을 정결하게 하며 진노의 자식이었던 우리들이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게 중생시키는 것을 상징하는 것으로 우리는 이 세례를 통하여 a) 죄씻음과 정화, 그리고 우리 영혼의 더러움과 불의를 제거 받으며 b) 우리의 영혼을 새롭게 하심으로 모든 위로로 채워주심을 경험하며 c) 또 하나님 아버지의 선하심에 대한 참된 확신을 가지게 될 뿐 만 아니라 d) 옛사람과 그 행위를 벗고 새사람을 입게 되는 것입니다.

6)     이런 세례에 대하여 다양한 견해가 있는데요. 장대선이 쓴 “프랑스 신앙 고백 해설”의 세례에 대한 해설을 보면, 세례에서 어디에 비중을 두는가에 따라 크게 세가지 견해가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즉 첫째는 로마 카톨릭의 견해로, 세례는 구원과 의화 즉 칭의에 필수로, 실제로 세례를 통하여 죄가 용서 되기에, 세례를 받지 않으면 구원이 없다고 믿는 바, 세례 그 자체를 통하여 죄사함의 은혜가 부여된다고 보는 견해입니다. 반면 둘째 견해는 세례의 시행 자체를 필수로 생각하며 회개 행위와 보속을 부수적으로 강조하는 로마 카톨릭의 세례관과는 다르게, 세례 받는 사람의 회개 또는 믿음을 세례의 본질로 강조하는 재세례파의 세례관이 있는데, 이는 재세례파의 신앙고백인 슐라어타임 신앙고백(1527) 제1조 “세례는 회개와 삶의 개선을 알며 자기들의 죄가 그리스도에 의하여 참으로 제거된 줄 믿는 사람과, 또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서 살며 그와 같이 죽어서 같이 묻혀 그와 함께 부활하기를 바라고, 이러한 의의를 느껴서 우리에게 세례를 받고자 자발적으로 요청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베풀어지는 것이다”는 고백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세례를 받는 사람의 “회개와 삶의 개선”, “자기의 죄가 그리스도에 의하여 참으로 제거된 줄 믿는 믿음”, 그리고 “세례를 받고자 하는 자발적인 요청”을 하는 사람으로 한정하여 세례를 주는 등, 세례를 베푸시는 하나님보다 세례를 받은 사람의 믿음과 행위에 방점을 주는 입장인데, 이러한 재세례파의 입장에 대하여 칼빈은 “지금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회개하기 시작하며 하나님의 위대한 선하심에 대해서 오랫동안 감사할 줄 모르는 우리의 맹목과 완고함을 자책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 그 자체는 사라지지 않았다고 믿는다. 하나님께서는 세례에 의해서 우리에게 죄의 용서를 약속하시며 의심의 여지 없이 그 약속을 모든 신자에게 실행하신다고 생각한다”고 고백함으로, 우리의 믿음의 연약함에 관계 없이 세례를 행하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세례의 본질이 있다고 말하였습니다. 따라서 세번째 관점은 칼빈의 관점으로, 기본적으로 세례식 그 자체에 비중을 두는 로마 가톨릭의 견해와 같지 않으며, 신자의 믿음에 중점을 두는 재세례주의의 견해와 달리 하나님의 약속과 그리스도의 죽으심의 효과에 중심을 두고 있는데, 칼빈은 “우리가 그리스도에게 접붙임을 받아 하나님의 한 자녀로 인정되기 위해서 교회라는 공동체에 가입되는 입문의 표징을 세례라고 한다”는 세례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와 더불어 “우리의 믿음이 세례에서 받는 유익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죽음과 생명에 접붙임이 될 뿐 아니라 그리스도 자신과 밀접하게 연합되어 그의 모든 축복을 나누게 된다는 확실한 증거이다”라는 이해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세례의 근거는 세례 예식 자체의 권위나 이를 시행하는 사제의 권위에 있는 것이 아니며, 또한 자원하여 세례를 받고자 하는 신자의 믿음이나 회개의 신앙에 근거하는 것도 아닌 바, 오직 세례는 그리스도께 접붙여져 연합을 이루도록 하시는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한다고 보아야 한다고 말하는 입장인데, 이에 대하여 칼빈의 프랑스 신앙고백 제18조에서는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다른 방법으로 달리 의롭게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모든 방법에 반대하며, 어떠한 덕이나 공로도 내세우지 않고, 우리의 모든 죄를 가려주는 동시에 하나님 앞에서 은혜와 선의를 볼 수 있도록 우리에게 전가해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에만 전적으로 의지한다”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7)     그런데, 이런 언약에 대한 다양한 견해들은 결국 유아 세례에 대한 입장도 달리하게 만드는데요. 무슨 말인가 하면, 세례에 있어, 세례를 받는 사람의 회개와 믿음을 중시하는 입장을 가진 교단에서는 유아들은 스스로 믿음도 또한 회개도 할 수 없기에, 세례를 베풀지 않거나, 혹은 부모가 유아를 하나님께 바치는 헌아식을 거행하는데, 이런 교단들에서는 결국 아이들이 자라나 성인이 되었을 때, 본인의 생각과 의지로 세례를 받도록 하고 있습니다. 반면, 유아 세례를 주는 교단도 있는데, 북미 개혁주의 교회나 장로 교단이 이에 해당합니다. 우리 교단에서 유아 세례를 베푸는 이유는 세례는 인간편의 믿음의 표현이라기 보다 하나님 편에서 그의 백성임을 선포하는 성례로 보기 때문인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아이가 태어난지 8일째가 되면 할례를 행하라고 말씀 하신 것처럼, 언약 백성이 된 하나님의 백성들의 아이들 또한 이에 근거하여 유아 세례를 베푸는 것입니다. 즉 세례를 언약의 배경하에서 이해하는 것입니다. 

8)     따라서, 이러한 세례의 의미와 여러가지 다양한 견해를 바탕으로 세례에 대한 몇가지 중요한 질문 들에 답해 볼 수 있겠습니다. 첫째로, 여러분 세례를 은혜의 통로일까요? 아니면 은혜의 수단일까요? 카톨릭에서는 세례는 은혜의 통로로 세례를 통하여 실제적으로 원죄를 제거 받을 수 있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희 개혁주의 교회에서는 세례는 은혜의 통로가 아니라 은혜의 수단으로 보고 있습니다. 즉 복음의 말씀을 통한 외적 부르심과 성령의 중생의 역사와 믿음을 일으키심과 칭의의 시점은 세례와 동일 시점일 수도 있지만, 세례 시점과 다른 시점에 일어날 수도 있으며, 이 세례를 중생과 칭의에 대한 표징으로 우리가 이런 보이지 않는 은혜를 보이는 표징으로 나타내어 우리가 구원의 은혜를 이해하고 감사할 수 있게 하며 믿음에서 자라나게 한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두번째로, 세례를 받지 못하면 구원을 받을 수 없나요?  성경에는 세례를 받지 않고도 구원을 받았음을 알 수 있는 사건도 있는데요. 예를 든다면, 골고다 언덕의 십자가에서 주님 옆에서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라고 말했던 강도의 경우 주님께서는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말씀하심으로 세례를 받지 않고도 구원받은 사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마지막 세번째 질문으로, 어떤 교단은 꼭 침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침례를 꼭 받아야 하나요? 교회사를 보면, 12세기까지는 보편적으로 침례를 행하였고 그 이후 머리에 물을 적시거나 뿌리는 방식으로 발전했는데, 그 이유로 병자와 유아를 침수시키기 어려워 이런 방식이 생기기 시작했다는 설과 또 12세기 당시 십자군 전쟁이 한창이었던 시기로, 십자군을 모집함에 있어 일일이 침례를 주기 어려워 약식 세례를 주기 시작했다는 설이 있는데, 후자가 좀 더 설득력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여전히 침례를 선호하는 교회도 있는데, 아무래도 물 속에 푹 잠기는 세례를 받은 것이 더 기억에 깊이 각인되는 은혜가 있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합니다.

9)     이와 같이 우리가 세례를 통하여 인치심과 보증을 받은 우리의 구원은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그 안에서 행하게 하는데, 이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죽음과 함께 죄에 대하여 죽고, 또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라는 말씀처럼, 이는 우리가 이렇게 그리스도 안에서 새 생명 가운데 행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자라게 하심으로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기도 하옵기는 올 한 해 우리들 모두 이 세례의 은혜를 통하여, 그에게 까지 자라나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소그룹 모임 가이드 및 예제 질문

Q1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 세례는 우리의 죄씻음과 중생과 칭의에 대한 표징과 보증으로 우리는 이를 통하여 말씀과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어떤 역사를 이루신지 알 수 있게 됨으로 우리의 믿음이 더욱 성장할 수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잠시 자신이 받은 세례와, 세례를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를 다시 한번 더 생각해 보고, 각자의 생각과 경험과 은혜를 팀원들과 나누면서 은혜 나눌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Q2 그리고, 이 세례는 결국 우리가 죄사함을 받았을 뿐 만 아니라, 옛사람이 죽고 새사람으로 거듭났음을 보여 주는 성례임을 알 수 있는데, 이렇게 옛사람이 죽고 새사람으로 거듭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행해야 한다 말씀하고 있습니다. 잠시 우리의 삶을 돌아 보고 과연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고 각자의 생각과 경험을 팀원들과 나누면서 은혜 나눌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축복합니다.

기도 노트

(  오늘 말씀중 깨달아진 하나님의 성품  ) 하나님 아버지!

(  지난 한주간 혹은 오늘 하루 동안 감사한 일들 ) 해 주심에

찬송과 감사와 영광을 주님께 올려 드립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        깨닫게 해주신 죄          )를 깨닫게 해주셨음에 감사하며,

회개할 때에 용서해 주옵시고 이제 (  새 삶  )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 주옵소서

특별히 오늘 말씀을 통하여 ( 새롭게 배운 점 ) 을 가르쳐 주심에 감사하며

(    삶의 도전     ) 살 수 있도록 은혜를 더하여 주옵소서

( 주님의 성품 ) 우리 주님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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