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25-19 롬7-8 가이드
- SJ Kim
- 4월 5일
- 7분 분량
롬7:18-8:11, 핵심 구절 롬8:6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참 예배자를 찾으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의 예배를 통해 올려 드리는 모든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기쁘게 받으실 줄 믿습니다.
오늘 2025년 열네번째 주일을 맞아, 여러분 모두에게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이루신 모든 은택들을 우리에게 적용하시는 성령님의 은혜와 또 그의 권능으로 말미암아 복음의 기쁜 소식을 온 세상에 전하는 영광과 은혜와 축복이 가득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우리는 지난 주에,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이 하나님께서 금하신 금단의 열매를 따 먹음으로 결국 원초적인 죄책과 원초적인 오염 즉 전적 부패와 전적 무능의 상태로 전락한 바, 이런 인간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여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창세 전에 그의 사랑안에서 택자들을 선택하셨음을 살펴 보았는데, 이번 주에는 하나님의 예정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택자들의 원초적인 죄책과 원초적인 오염이 그리스도와 성령으로 말미암아 어떻게 해결될 수 있는지 알아 보고 함께 은혜 받을 수 있기를 원합니다.
1) 먼저 오늘 본문의 context 를 한번 살펴 보기를 원하는데요. 오늘 본문 말씀 중 특히 7장 13절에서 25절까지의 말씀에 대해서는 오랜 신학적 논쟁이 있는데, 그것은 바울이 이 본문을 통해 신자를 묘사하고 있는지 아니면 불신자를 묘사하고 있는지에 대한 논쟁입니다. 양쪽 모두 좋은 논거를 제시하고 있지만, 특히 어거스틴부터 시작되어 종교개혁에서 재확인된 가장 널리 알려진 견해는 바울이 신자들을 언급하고 있다는 것인데, 이 입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로는 (1) 본문이 현재 시제로 전환되었고, (2) 불신자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기를 그토록 간절히 원하지 않는다는 점(21절)과, (3) '나'와 ‘육신’을 구별(18절)하고 있고, (4) 하나님의 율법에 대해 기뻐한다(22절) 는 점 등을 들 수 있습니다. 또 (5) 죄악 된 몸으로부터의 구원은 미래로 표현되어 있고 (24 절, 8:10, 11, 23) (6) 7:25의 결론 진술에서 선과 악 사이에 긴장감이 있다는 것과 (7) 그리스도인은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다 함을 받았지만 구속의 날까지 아직 완전하지 않다는 사실 등이 이 입장을 지지한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렇지만 널리 퍼져 있지는 않지만 많은 복음주의 학자들이 지지하는 두 번째 입장도 있는데, 이 본문은 바울이 불신자를 언급하고 있다고 보는 입장으로, 이 입장의 근거로는 (1) 본문의 구조 즉 7절에서 25절까지의 구절은 5절에서 예시한 중생하지 않은 자의 삶과 일치하는 반면, 8장 1절에서 17절까지의 구절은 7장 6절에 나타난 신자의 삶과 일치한다는 점과, (2) 성령은 13절에서 25절까지 말씀에는 언급되지 않지만 8장에서 19번 언급되고 있다는 점, 그리고 (3) 그리스도인들이 "죄 아래 팔렸”다는 7장 14절과 "죄의 법에 사로잡혔다”는 23절 말씀은 6절과 23절 말씀과 긴장 관계에 놓여 있는 점, 그리고 (4) 성령이 "죄의 종노릇을 하고 있다"는 것이 죄의 종노릇함에서 자유함을 얻은 신자의 자유를 말하는 6장과 8장과 긴장을 이루고 있으며 또한 (4) 현재 시제는 현재를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거듭나지 않은 바울의 영적 상태를 나타낸다고 제안할 수 있으며, (5)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려는 열망도 도덕적인 삶을 살고자 했던 경건한 유대인의 사고 방식을 반영하고 있다고 볼 수 있고, 마지막으로 (6) 섹션의 첫 구절인 13절은 불신자인 바울에게 율법이 어떻게 사망을 가져왔는지 설명해 주고 있다고 볼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어쨌든 두 입장 모두 (1) 그리스도인은 평생 동안 여전히 죄와 씨름하고 있으며 (갈 5:17, 요일 1:8-9 참조), (2) 그리스도인은 그들 안에 거하시는 성령의 능력으로 평생 동안 성화될 수 있고 또 성화되어야 한다는 데에는 동의하면서도 (롬 8:2, 4, 9, 13-14) 첫 번째 입장을 고수하는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이 구절이 바울 자신의 경험과 일반적으로 그리스도인의 경험을 모두 설명하는 것으로 보면서, 그리스도인은 율법의 정죄에서 자유롭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죄는 계속 그 안에 머물러 있으며, 바울과 함께 모든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자신이 하나님의 절대적인 의의 표준에 얼마나 미치지 못하는지 깊이 인식해야 하는데, 그래서 바울은 "오호라 나는 비참한 사람이로다! 누가 이 사망의 몸에서 나를 건져내랴!" 라고 외친 후 (7:24) 곧바로 이어진 구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그리스도인을 단번에 구원하신 분(4:2-25, 5:2, 9 참조)이자 또한 날마다 구원하실 분으로 소개하고 있는데 (7:25), 이는 바울 서신의 다른 많은 곳에서와 마찬가지로, 구원의 "이미”의 측면 즉 신자들은 이미 구원을 받았다는 것과 "아직”의 측면 즉 신자들이 그리스도의 재림 시 궁극적으로 그리고 영원히 구원받을 것 두 측면 모두를 강조하되, 신자는 이미와 아직 사이의 긴장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을 반영하며, 바로 이어지는 부분(8:1-11)에서 바울은 그리스도인이 내재하는 죄의 권세에서 매일 구원받는 방법은 (1) "육신을 좇지 않고 성령을 좇아"(8:4) 행하며 (2) "육신의 일에 마음을 두지 않고 ... 영의 일에 마음을 두고"(8:5) 생활하는 것과 또 (3) "너희 안에 거하시는 하나님의 영"(8:9, 11) 즉 내주하시며 임재하시는 성령에 의한 삶을 말씀하고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2) 우리 개혁주의 교회가 주로 믿고 있는 첫번째 견해를 바탕으로 오늘의 본문을 해석해 보면, 결국 원죄로 말미암아, 원초적인 죄책과 원초적인 오염 즉 전적 부패와 전적 무능을 지고 있는 우리 인간은 스스로의 노력과 선행으로는 구원에 이르지 못하기에, 우리가 지난 주에 이미 살펴 본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창세 전에 그의 사랑 안에서 우리로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우리를 택하셨고, 2000여년 전 때가 되자, 그의 독생자를 이 세상에 보내셔서 십자가에 못 박으심으로 대속을 이루게 하셨고 또한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그의 의를 전가하시기 위하여 이 땅에 사시는 동안 그의 뜻을 온전히 하나님께 복종시켜 율법의 모든 것을 이루셨고 그리고 각각의 택자의 때에 각각 이 그리스도의 공로를 적용하시기 위해 성령을 보내사 택자를 새롭게 거듭나게 하시고 또한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와 연합함으로 그리스도의 대속의 공로와 그의 의를 전가 받아, 죄책으로 부터 자유롭게 되었을 뿐 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의를 덧입고 이제 내주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선을 행하고자 하는 의지가 회복되어 이런 전적인 은혜의 구원에 감사하여 선하게 살려고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의 몸에는 육신 즉 죄성이 잔존하여 지속적으로 우리를 유혹하는 바, 이런 육신의 생각을 쫓지 않고 성령의 인도하심대로 영의 생각 즉 하나님의 뜻 혹은 하나님의 법에 순종하여 살아가야 하는데, 이 때 율법의 요구는 이루어 지고, 이러한 과정에서 우리는 성화를 이루어가게 된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3) 이와 같은 타락한 인간을 회복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사역에 대하여 벨직 고백서 제17조에서는 “우리는 우리의 가장 은혜로우신 하나님이 놀랄 만한 지혜와 은혜로써 이렇게 육체적 및 영적 죽음에 떨어져서 자신을 전적으로 비참하게 만들고 있는 인간을 살펴보시고 자기의 목전에서 두려워 떨면서 도망칠 때에 즐겨 찾으시고 위로하시며 자기의 아들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는데, 그 아들은 여자에게서 나서 뱀의 머리를 깨뜨리고 인간을 행복하게 하실 분임을 믿습니다” 라고 고백하고 있는데
4) 이러한 원초적인 죄책과 원초적인 오염의 문제를 회복하는 하나님의 사역에 대하여 몇가지를 살펴 보면, 먼저 이러한 모든 인간의 문제 회복은 그리스도의 사역을 바탕으로 한 그의 공로로 말미암는다는 사실입니다. 즉 인간이 선악과를 따 먹음으로 생긴 죄책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 죽음으로 해결되었으며, 그리고 선악을 스스로 결정하게 된 문제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기 전날 밤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자신의 뜻을 아버지의 뜻에 순종시킨 기도를 통해 볼 수 있듯, 그리스도는 그의 순종을 통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살아가도록 창조된 인간의 창조 원형을 회복하신 것이었으며 또한 그의 평생을 통해 하나님의 법에 순종하심으로 율법을 완성하신 것을 통하여, 인간은 선악과를 따먹음으로 말미암아 잃어버린 의와 거룩을 다시 회복할 수 있게 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7:18 말씀을 보면, 신자는 “원함” 즉 하나님의 법대로 살려는 의지는 회복되었는데, “선을 행하는 것은 없다” 즉 영어 성경 ESV 에서 번역한 것처럼 선을 행할 능력은 없는 상태라고 하는데, 이는 성령의 중생으로 말미암아 거듭난 속사람은 비록 선을 행 할 의지는 회복 되었지만,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신자는 스스로의 힘으로는 선을 행할 수 없기에, 결국 성령의 능력을 의지하여야 하는 것을 의미하며, 그래서 바울은 엡 3:16 에서는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해 주시기를 기도했던 것이고 그래서 엡 5:18 에서는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고 권면 했던 것 입니다.
5) 그리고 이러한 그리스도의 의의 전가를 통한 인간의 회복은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통해 이루어 지는데, 이와 같은 인간의 죄책과 오염에 대한 하나님의 사역을 신학적 용어로는 칭의와 성화라고 하며 칭의는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기초로 율법의 모든 요구가 충족되었다고 선언하시는 하나님의 법적 행위로 죄 용서와 하나님의 호의 즉 양자됨과 영생의 회복을 포함 하며 이는 전적인 하나님의 사역으로 인간은 이에 대하여 수동적이며 성화는 칭의 받은 죄인을 죄의 부패로 부터 해방하고 그의 본성 전체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갱신하며 그가 선행을 할 수 있게 하는 성령의 자비롭고 지속적인 사역인데, 이 또한 전적인 하나님의 사역이지만, 인간이 기도/지성으로 협력하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6) 그런데 오늘 본문 7:18 말씀에 의하면 중생한 택자 속에는 여전히 육신 즉 죄성이 존재한다고 말씀하고 있는데, 이 부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간은 영혼과 육체로 이루어진 존재인데, 우리의 영혼이 생각하고 판단하고 결정하여 뜻할 때에는 ‘뇌’라고 하는 기관의 여러 작용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인간의 이런 지정의의 작용은 결국 영혼과 육체의 상호작용에 의한 것이기에, 우리 인간의 성화는 실은 단순히 영혼의 중생 뿐 만 아니라 육체 즉 뇌회로의 오염과 습관화 된 것들 또한 정화가 되어야 하는데, 우리 뇌의 오염과 습관들을 정화하는 것은 단순히 이 부분을 제거하는 것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데, 그렇게 되면 그 부분의 기억 마저도 삭제되기 때문에 부분적 기억 상실을 겪게 될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육신의 죄성의 제거는 결국 우리 육체가 죽었다가 다시 부활할 때 온전한 오염의 정화가 가능하며, 따라서, 우리는 이생을 사는 동안에는 지속적으로 이 육신의 죄성의 유혹과 싸워야 하는데, 이런 과정은 실은 우리들에게 두가지 이득을 가져 옵니다. 즉 첫째는 우리 의지의 강화입니다. 주님께서 겟세마네에서 밤새 기도하실 때, 제자들이 피곤하여 자고 있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고 하시며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고 하셨던 것처럼, 비록 우리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중생이 되었다 할지라도 우리는 아직 어린아이와 같이 연약하기에 성령 안에서 더욱 강건하게 자라나야 하는데, 결국 이는 우리가 우리 속에 남아 있는 육신의 죄성의 유혹과 싸워 이겨내는 과정에서 우리의 의지도 강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번째는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우리의 교만이 깨어지고 우리가 겸손한 심령이 된다는 것입니다. 즉 우리가 우리 속에 있는 죄성을 이기고 죄를 짓지 않고 살려 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연약함으로 인하여 자주 죄를 짓게 됩니다. 그런데 이 과정 속에서 우리는 우리의 힘으로는 우리 속에 있는 견고한 죄성의 진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점점 겸손해 져서 더욱 주님을 의지하게 되는데, 그래서 도르트 신경 다섯번째 주요 신조 1항에서 “중생한 성도라 하더라도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육신이나 죄의 몸으로 부터 완전히 자유로와 지지는 않는다”고 하면서 이어진 2항에서 이러한 “죄로부터 오는 연약함이 성도의 매일의 삶에 드러나고 심지어 가장 선한 행동에도 흠집이 있기 때문에 성도들은 그것들로 인해 스스로 하나님 앞에 지속적으로 겸손해야 하며, 그리고 간구하시는 성령을 따라서 신앙의 경건을 실천하면서, 못박히신 그리스도께 피하여 그의 모범을 따라 더욱 더 육신을 십자가에 못박음으로 그래서 죽음의 몸으로부터 해방되고 하늘에 계신 하나님의 어린 양과 함께 다스릴 때까지 완전함의 목표를 향하여 정진하여야 합니다”고 말하였던 것입니다.
7) 따라서, 주님께서 당신에게서 배우라고 하신 겸손과 온유는 신학적으로는 전적 의존과 전적 순종 즉 자기를 의지 않고 겸손해 져서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것과 또 하나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하게 되는 것을 의미하듯, 우리 속에 깊이 뿌리 박힌 죄성의 치유는 결국 나 자신을 부인하고 주님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쫓아 가는 과정에서 일어나며, 그래서 박영선 목사는 그의 책 “성화의 신비”에서 “베드로를 훈련하신 것과 동일한 내용으로 모든 성도를 훈련하시는데,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진심도 아니며, 열심을 내는 것도 아니며, 오직 주께 매달리는 것입니다. 지식과 방향과 방법과 내용과 실천과 성취, 이 모든 것을 주께 의존하는 은혜를 구해야 합니다. 다른 표현을 쓰자면 자기 의가 깨져야 하는데, 여기서 자기 의란 자기 안에 신앙적 근거와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따라서 기도하옵기는 올 한해 이렇게 죄의 유혹과 싸우며 하나님을 따르는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성화의 열매 즉 겸손한 전적인 의존과 온유한 전적인 순종의 열매가 우리 안에 풍성히 맺힐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소그룹 모임 가이드 및 예제 질문
Q1 오늘 말씀을 보면, 우리의 원초적인 죄책과 오염을 해결하시기 위하여, 하나님의 예정과 택하심,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사역과 순종, 그리고 성령의 내주와 중생과 그리스도의 공로의 적용 등 삼위 하나님의 사역이 있는 것을 알게 되었는 바, 우리는 이런 원리들과 은혜를 알고 입술의 감사와 삶의 감사를 올려 드려야 하는데, 잠시 각자의 삶을 돌아보며 어떤 감사의 삶을 살고 있는지 생각해 보고, 각자의 생각과 경험을 팀원들과 나누면서 은혜 나눌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Q2 그런데, 이러한 성령의 중생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 안에는 죄성이 남아 있는데, 결국 이러한 죄의 유혹과 싸우는 과정에서 우리의 의지가 강해지고 또한 우리는 겸손해 진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잠시 각자의 삶을 돌아 보고, 과연 우리가 어디까지 이르렀는지 생각해 보고, 각자의 생각과 경험을 팀원들과 나누면서 은혜 나눌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축복합니다.
기도 노트
( 오늘 말씀중 깨달아진 하나님의 성품 ) 하나님 아버지!
( 지난 한주간 혹은 오늘 하루 동안 감사한 일들 ) 해 주심에
찬송과 감사와 영광을 주님께 올려 드립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 깨닫게 해주신 죄 )를 깨닫게 해주셨음에 감사하며,
회개할 때에 용서해 주옵시고 이제 ( 새 삶 )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 주옵소서
특별히 오늘 말씀을 통하여 ( 새롭게 배운 점 ) 을 가르쳐 주심에 감사하며
( 삶의 도전 ) 살 수 있도록 은혜를 더하여 주옵소서
( 주님의 성품 ) 우리 주님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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