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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자아 만나기

지원자 중심 일대일 제자 훈련

모든 사람과 화평을 누리라는 주님의 말씀을 쫓으리라며 다짐을 굳게 하고 시작한 사역인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어떤 사람들의 경우 그 사람의 어떤 특별한 성품이나 태도가 특별히 사역자의 신경을 자극할 뿐 만 아니라, 사역자의 마음을 계속 힘들게 하는 경우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비단 이런 경우는 교회 내의 공동체 생활이나 여러 사역 뿐 만 아니라 일반 사회 생활에서도 나타나는 경우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런 경우 다른 사람들은 괜찮은 것 같은데, 나만 유독 특별히 상대방의 어떤 성품이나 태도가 진짜 싫고 또 그것 때문에 쉽게 상처를 입게 되는데도 불구하고 막상 그 사람의 성품이나 태도를 바꿀 수도 또 바뀌어 지지도 않고 자신만 그 때문에 속앓이를 하듯 괴로운 시간을 보내야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런 관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은 상대방에 있지 않고 자기 자신에게 있는 것 같습니다. 그 사람의 어떤 태도나 성품이 옳다거나 맞다는 말이 아니라, 그 사람이 떠나기를 혹은 바뀌기를 기대해 보았자 그런 일은 내 뜻대로 쉽게 일어나지도 않고 그리고 그런 사람을 피해서 다른 곳으로 가 보아도 그곳에 가면 또 그런 사람이 있기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런 기회를 자신이 성장할 수 있는 기회로 활용해 보는 것이 어떨까 생각해 보기를 원하는데, 이는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께서 이러한 순간마저 우리에게 유익하게 선용하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성품과 스타일과 가치 체계가 있어 어떤 상황을 만나면, 이러한 것들이 함께 어우러져 자기 만의 판단을 하고 대응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런 이성적 루틴 이외에도 의사 결정이나 행동 양식에는 자신의 감정이 큰 역할을 하는데, 실은 이런 지정의의 자기 의식 이외에도 내면 깊숙한 곳, 즉 무의식 속에 숨어 있던 반응기재가 작동하여 반응을 하게 되는데, 이렇게 특히 자기 내면 깊숙하게 숨어 있으면서, 자기의 생각의 과정과 행동 양식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심리학적 용어로 “Shadow (그림자)”라고 하는데, 이는 우리의 무의식 속에 깊이 숨어 있어, 우리의 의식으로는 파악이 되지 않고,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다른 사람의 태도나 성품에 투영되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지기 내면 속에 있는 “그림자”를 이해하고 만나는 것을 "참 자아 (Authentic Self)"를 만나기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자기 자신의 지정의 뿐 만 아니라, 자기 내면의 “참자아”를 이해하는 것은 특히 인간 관계를 다루는 사역자나 사회의 리더들에게 있어 너무도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이렇게 자기 자신의 깊숙한 내면에 있는 참자아를 직면하여,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즉 어떤 강점과 단점을 가지고 있고 어떤 내면의 기제 (Shadow)에 의해 반응하는 존재인지를 알게 됨으로, 자기도 불완전한 존재인 것을 깨닫게 되고, 그 불완전한 자신, 즉 Authentic Self (참자아)를 용납하게 됨으로, 먼저 자기 자신을 용납한 후에야 실은 다른 사람들의 부족함과 연약함도 껴안고, 그들을 Fix 하려 하지 않은 채, 있는 그대로의 그들과 함께 같이 걸어 가면서,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께서 일하시도록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맡겨 올려 드리고 또한 자기의 사역의 자리조차도 내어 드릴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자아 성찰을 위해, 본 과정에서는 다음과 같은 것을 다루게 됩니다.

첫번째 시간은 Family Tree 작성해보는 시간입니다.

우리나라 속담에 "세살 버릇은 여든까지 간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만큼 가정에서의 부모님이나 다른 가족 구성원과의 사랑의 관계나 그에 따른 좋은 경험은 성격(성품)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주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 시간에는 한 인간의 성품 형성에 가장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가정에 대해 Family Tree 를 작성해 보고, 자기의 성품(성격) 형성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알아 보고 또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구원해 주시고 또 받아 들여 주시고 또 나의 시간표에 맞추어 성화시켜 가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자기도 자신을 이해하고 용납하고 용서하고 품는 시간인 것입니다.

두번째 시간은 내 속에 있는 Shadow (그림자)를 알아보는 시간입니다.

정우열의 "힘들어도 사람한테 너무 기대지 마세요"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인간관계에서 상대방의 어떤 유형, 예를 들어 자기 자랑을 하는 사람, 자기를 높이려고 남을 비판하는 사람, 자기 의견만 고집하는 무례한 사람, 이기적인 사람, 입이 가벼운 사람, 배려가 부족한 사람, 관심 받는 걸 좋아하는 사람등 나도 모르게 갑자기 예민해지는 경우가 있는데, 대부분의 경우 이럴 때는 그 사람 탓을 합니다. 그런데 사실이 그렇다고 하더라도 달라지는 것은 없는데, 실은 그 사람을 바꿀 수는 없기 때문이며 또한 내가 유독 싫어하는 그 사람의 특징을 객관화 해 보면, 이러한 특징들이 바람직하다고 볼 수는 없지만 큰 문제가 된다고 볼 수도 없는 가치 중립적인 특징으로, 사람마다 우선순위와 가치관이 다를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 때 우리는 차분하게 상대방의 어떤 말과 행동, 어떤 표정과 분위기에 마음이 상했는지에 집중해 보고 내가 왜 유독 그것에 강렬하게 반응했는지 살펴 보아야 하는데, 실은 바로 이 순간이 자기 무의식과 만날 수 있는 기회로, 이렇게 내가 싫어하는 사람들의 특징이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사실 알고 보면 내 안에 있는 나의 일부분인 경우가 많기 때문인데, 이렇게 자기 무의식 속에 숨어서 활동하는 자아를 심리학 용어로 '그림자 (Shadow)"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자기의 마음 깊은 곳에 꾹국 눌러 놓은 그림자가 생긴 이유는 실은 성장 과정이나 친구 관계에서 자기가 실수를 했을 때, 호되게 질책을 당했거나 친구로부터 왕따를 당한 경험이 있을 경우 그러한 경험과 감정을 억누르므로 내면화 되었기인데, 이 그림자는 각 사람의 독특한 개성과 결합하여 자기 만의 독특한 그림자를 형성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자신의 그림자를 자기 스스로는 쉽게 인식할 수 없고 주로 내가 불편해 하는 관계 속에서 내 안에 있는 어떤 것이 그 관계속에서 다른 사람에게 투사되어 나타날 때 나의 그림자를 인식할 수 있게 되는데, 즉 이렇게 내가 싫어하는 그 사람의 특징이 나의 그림자인 것을 알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렇게 자신의 그림자를 자각하면서, 지금까지 나의 행동이나 심리를 이해하고 납득하게 되는 느낌을 자주 받으면, 자신의 안에서 뭔가 통합되는 느낌이 들 수 있는데 이런 경험이 차곡 차곡 쌓이면 조금씩 변화가 일어나, 자신이 점점 더 차분하게 되고 단단하게 되어, 자신의 그림자를 건드리는 사람을 만나도 편안하게 대처할 수 있게 되는데, 이 시간에는 이러한 것들을 이해하고 생각해 보는 시간인 것입니다.

세번째 시간은 모세의 일대기를 살펴 보면서, 모세의 변화를 엿보는 시간입니다.

우리는 이스라엘 민족의 위대한 지도자 모세에 대한 이야기를 잘 압니다. 모세는 80세가 된 노령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이집트에서 종살이 하던 250만의 자기 민족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출애굽을 하여, 시내산에서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간에 언약을 맺고 회막 규례를 받아 40년 동안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함을 받으며, 마침내 약속의 땅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까지 인도한 후, 여호수아에게 전권을 위임하고 하나님 품에 안긴 이스라엘의 위대한 지도자입니다.

그런데 그의 어린 시절과 장년 시절을 보면, 그의 삶이 그리 녹녹지 만은 않았습니다. 그는 불안하고 위험한 상황하에서 태어나, 먼저 그의 어머니에게서 버림을 받았고, 비록 다시 엄마의 품에서 길려졌지만 입양아가 되어 이집트의 왕자로 자라면서, 두 세계 즉 히브리 문화와 이집트 문화, 어느 한군데도 속하지 못한 채 이방인으로 생존해야 했는데, 그런 과정에서 그의 깊숙한 내면에는 급하고 쉽게 분노하며 동시에 쉬 남을 판단하고 바꾸려는 성격이 형성되었고 그런 성품으로 인해 그가 장성한 후 자기 형제들인 히브리 사람을 치는 애굽 사람을 보고 쳐 죽이고 땅에 묻어 버렸고, 또 두 히브리 사람이 서로 다투는 것을 보고는 간섭하였고, 결국 모세가 이집트 사람을 쳐죽인 일이 탄로나 미디안 땅으로 도망와서 살게 되었는데, 이러한 사건들을 통해 보면, 모세의 내면에 분노(anger)가 깊이 뿌리 박혀 있고, 또한 모든 사람들이 자기가 원하는데로 행동해 주기를 바라고 그렇지 않을 경우 남을 바꾸려는 욕구가 있는 리더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런 그가 미디안 광야에서 양치기 목동으로 40년을 보낸 후에는 변했는데, 민12:3 말씀처럼, 온유한 사람으로 변했고, 가나안 땅을 정탐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불신하고 배반하여, 40년 광야 길을 헤메다 죽어가는 징벌을 받았을 때, 그는 그 40년 동안 백성들과 함께 광야의 길을 걸었습니다. 혈기 왕성했던 모세가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했던 것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Parker Palmer 가 "리더는 자기의 내면 속에 일어나는 모든 것에 책임을 져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그의 리더쉽이 선보다는 해로운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고 말했던 것처럼, 리더는 무엇보다도 먼저 자기 내면의 어두운 그림자들을 자각하고 처리할 필요가 있는데, Ruth Haley Barton 은 이것이 바로 진정한 영적인 리더쉽이 시작되는 곳이라고 말했습니다.

우리 인간은 누구나 자기 만의 어두운 면이 있습니다. 그런데, 리더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은 특히 먼저 자기의 내면 깊숙한 곳에 있는 이 어둠의 그림자를 인식하고 또한 치유할 필요가 있는데 Ruth는 그 길은 바로 모세가 미디안 광야에서 침묵의 40년시간을 보냈던 것처럼, 자기 만의 침묵과 고독의 시간 속에서 참자아를 만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납해 주시고 불러 사명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는 것이 바로 리더가 되는 출발점이라고 했던 바, 이 시간은 리더로 섬기기를 원하는 분들이 그렇게 참자아를 만나는 시간인 것입니다.

네번째 시간은 “가나안을 향하여” 하는 시간입니다.

20세기 현대 경영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피터 드러커는 “프로페셔널의 조건”이란 그의 책에서 "리더쉽의 본질은 일의 측면에서는, 목표를 설정하고 우순 순위를 정한 후 그 기준을 유지하는 것, 그리고 설사 일정 부분 타협하는 한이 있다하더라도 그것이 목표에 부합하는 것인지에 그 기준을 엄수하며 적용해 나가는 것, 책임의 측면에서는 리더는 자신이 최종적인 책임을 진다는 의식을 가지는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신뢰를 확보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미래 경영”에서 "특히 지식시대에서는 기업내 부하와 상사의 구분이 없어지고 지시와 감독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이러한 때에 로버트 그린리프는 서번트 리더쉽이 무엇보다도 중요한데, 그것은 "서번트 리더쉽은 타인을 위한 봉사에 초점을 두고, 구성원과 고객, 공동체를 우선시하고 그들의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헌선하는 리더쉽"이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기독교 리더쉽에서 리더쉽의 궁극적 목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목표를 세우고 그 일을 완수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각 리더들과 또한 모든 크리스천들은 우리의 궁극적 목적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 필요가 있습니다.

여러분 인간은 창조후 사단의 유혹에 빠져 금단의 열매를 따 먹음으로 낙원으로부터 쫓겨 나는 실낙원의 경험을 그 마음 깊숙히 가지고 있는데 이런 우리 인간들이 궁극적으로 다시 돌아가야 할 곳은 어디일까요? 먹고 사는 걱정이 없는 아름다운 에덴 동산일까요? 먹고 사는 일에 평안을 얻고 또 행복과 건강과 성공을 이루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인간의 마음 깊은 곳에 있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전 3:11)을 채울 수 있는 것은 이 세상의 한시적인 것들이 아니라 영원한 것 즉 영원하신 하나님 뿐 인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에덴 동산은 바로 그 하나님의 임재가 있고 또 하나님과의 교제가 있는 곳 (창 3:8) 이었고, 또 심지어 하나님의 다른 이름이 임마누엘 즉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다”라고 하셨던 것이며, 심지어 계 21:3 에도 “마지막으로 회복될 새 하늘 새 땅 그곳에는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과 함께 계시는 곳”이라고 소개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인간이 추구하는 궁극적인 약속의 땅은 바로 하나님으로 그래서 Ruth 는 그녀의 책 "Strengthening the Soul of Your Leadership"에서 "모세에게 있어서 약속의 땅은 바로 하나님의 임재였다"고 말했던 것입니다. 이번 시간에는 그렇게 우리 각자에게 있어 약속의 땅이 바로 하나님이신 것을 깨닫고, 하나님의 임재 즉 하나님을 향해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는 것에 대해서 알아보는 시간인 것입니다.

이렇게 네가지 과정을 같이 공부하면서, 각자의 성화의 길은 나와 상대의 부족함에 부정적 반응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부족함과 연약함을 껴안게 되는 과정임을 깨닫고 배우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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