벧전1:3-12, 암송 구절 골1:5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예배자를 찾으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의 예배를 통해 올려 드리는 모든 감사와 찬송과 영광을 기쁘게 받으실 줄 믿습니다.
1977년 존 갈브레시스가 말했던 ‘불확실성의 시대’를 뒤로 하고, 코로나로 인한 판데믹 시대를 맞아, 우리는 지난 2017년 UC버클리 경제학 교수인 배리 아이켄그린이 말한 ‘초불확실성의 시대(Age of Hyper-Uncertainty)’에 접어들었고, 많은 기업이 도산하는 경제 위기를 맞았습니다. 그런 중에 크럼피즘과 브렉시트로 나타난 글보벌 보호주의는 국가간, 사회간 양극화를 심화 시켰으며, 인공지능(AI)과 가상현실(VR) 등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하여, 일생생활에서부터 경제, 산업, 사회, 문화의 기반이 송두리째 바뀌는 페러다임 쉬프트 (Paradigm shift) 시대를 맞아, 불확실성으로 인하여 불안이 가중되는 현실을 접해, 내외적으로 힘든 삶을 살아가고 있는 상황에, 과연 우리 크리스천들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고민이 됩니다. 차제에 소망의 사도라는 별명을 가진 베드로 전서를 통해 과연 환난의 시대에 어떤 소망으로 살아가야 하는지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기를 소망하면서, 부활절기 두번째 주일인 이번 주에는 벧전 1:1-12 말씀을 통하여, 어떻게 하면, 처한 상황에 무관하게 산 소망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지 함께 살펴보고 은혜 나누기를 소망합니다.
1) 오늘 본문은 베드로전서에 나오는 말씀으로, 베드로전서는 제목처럼, 베드로가 AD 64~68년경 그의 순교전에 쓰여진 편지글로,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 즉 지금 터키의 중북부 지방에 흩어져 있는 교회들에 보낸 서신서입니다. 이 지역은 바울이 2차 전도 여행때 전도하고자 하였으나, 그리스의 마케도니아와 아카이아 지방에서 선교하기를 원하셨던 성령님께서 이를 허락하지 않아 발길을 돌려야만 했던 지역으로, 역사가 유새비우스에 의하면, 베드로가 이 지역에 전도하였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 지역은 유대인 디아스포라들이 존재하기는 했지만, 대부분의 개종자들은 이방인들이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방인 개종자들은 기독교에 귀의한 후, 그들의 생활 양식이 바뀌게 됨으로 말미암아, 즉, 주님의 가르침을 쫓아 로마 황제에게 절하는 것을 거절 했기에 로마 군정들로부터 핍박을 받았을 뿐 만 아니라, 그들이 소속되었던 공동체와 이웃들로 부터 거절과 배척을 당하여 사회적으로 추방되는 등, 고통스런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끝까지 신앙을 지켰고, 베드로는 이 서선서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우리를 위해 고난을 받으시고, 그를 통하여, 영광을 받으셨듯 (1:11; 5:1), 그들도 지금 받고 있는 고난을 통하여, 하늘의 영광을 얻게 될 것이라면서, 이 나그네의 때를 거룩하게 살아가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2) 특히 오늘 본문 1장 3-12절에서 베드로는, 하나님의 크신 긍휼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을 통하여, 중생함으로 말미암아 주신 산 소망을 굳게 붙들고, 이 땅에서의 고난을 오히려 기뻐하라고 권면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우리가 잠시 동안 받는 고난은 우리의 믿음을 연단하고 정화하여, 주님 재림하실 때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해 줄뿐 만 아니라, 또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신실하게 보호하시는 가운데 우리의 믿음을 견인하여 주셔서 마침내 믿음의 결국 즉 영혼의 구원을 얻게 해 주실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3) 그런데, 이렇게 우리 크리스천이 기쁨으로 고난을 견딜 수 있을 산 소망을 가질 수 있는 이유는 긍훌이 많으신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적이고 또한 실질적인 부활에 근거하여 성도들이 중생의 은혜를 입었기 때문인데, 결국 이 중생의 은혜는 성도들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그들 앞에 닥친 고난 가운데서도 그들 앞에 있는 영광을 향하여, 새로운 삶 즉 구별된 거룩한 삶을 살아가게 만들기 때문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1]
4) 오늘 본문을 통해서 몇가지 은혜 나누기를 원하는데, 첫째로, 고난은 크리스천들의 성화에 있어, 너무나 중요한데, 이 고난은 우리의 믿음을 연단하고, 정화하여 확고히 하기 때문인 바, 베드로는 심지어 우리가 고난 가운데 기뻐하라고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렇게 고난을 통해 연단 받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중생하여, 하나님의 참 백성이 된 우리의 정체성 때문인데, 금이나 은이나 철들은 용광로에서 제련하는 이유는 그것들이 귀한 진짜이기 때문이듯, 즉 그것들이 만약 가짜라면 용광를 통해 제련할 필요조차 없듯, 마찬가지로 우리가 고난 가운데 연단을 받는 이유는 우리가 중생한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즉 우리의 확실한 정체성 때문에 또한 믿음의 연단을 받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고난의 시험을 받을 때, 우리는 낙망하지 말고 오히려 우리가 하나님의 참 자녀임을 깨닫고 오히려 기뻐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할 줄로 믿습니다.
5) 이렇게 기뻐하고 감사해야 할 또 다른 이유는 우리를 하나님께서 반드시 견인하실 것이기 때문인데, 그 근거는 5절 말씀에서 보면,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았느니라”고 하는데, 여기서 “보호하심을 받음”이라고 번역된 φρουρέω (phroureo, 프루레오)는 군사 용어로 수비대가 누군가를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거나 또는 그가 도망가는 것을 막을 때 사용하는데, 결국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우리가 믿음을 앓지 않도록 외부의 적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해 주실 뿐 만 아니라 우리 스스로의 연약함으로 인해, 우리가 믿음을 잃지 않도록 끝까지 보존하고 견인해 주신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것을 개역개정에서는 “보호하심을 받았느니라”로 번역하어 과거형처럼 이해하기 쉽지만 실은 헬라어 본문은 현재분사형으로 쓰였는데, 이는 이 보호가 현재에도 지속되는 특징을 가지고 있음을 나타내는 바,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믿음을 가진 순간부터, 지금도 그리고 마침내 우리가 영혼의 구원을 받는 그 날까지 계속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확고한 주님의 보호하심 아래에서 또한 어떤 상황에서도 기뻐할 수 있는 것입니다.
6) 그리고 마지막으로, 긍휼이 많으신 하나님과 예수님의 부활의 실재성에 근거하여 우리가 중생함으로 말미암아 얻은 확실한 소망이 살아있다고 말한 이유는 이 소망이 생명력이 있어 우리로 성장하게 하고 또한 열매를 맺게 하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의 크신 긍휼하심과 주님의 부활에 근거한 우리의 중생은 우리의 영적으로 거듭남을 의미하는 협의의 의미에서의 중생 뿐 만 아니라 우리 내면의 변화를 초래하는 성화도 포함하는 광의의 의미에서의 중생도 포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는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우리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고 또한 새롭게 거듭나게 하기 위해 부활하신 주님의 이 큰 사랑과 은혜에 감사하며 주님을 사랑하여 주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감사의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롬 5:20 에서는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다고 말씀하는 것이며, 눅 7:47 “많이 사함받은 자가 많이 사랑”하게 된다고 말씀하는 것이며, 심지어 고난 가운데에도 그 고난이 가져다 줄 우리 성품의 열매와 또한 영광에 감사하는 것 입니다.
7) 기도하옵기는 부활절기 두번째 주일을 맞아, 하나님의 크신 긍휼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말미암은 산 소망이 우리 모두이 마음에 확고히 자리함으로 이 산 소망 안에서 자라고 열매맺어 가기를 소망합니다.
소그룹 모임 가이드 및 예제 질문
Q1 예수님께서는 요 20:29 에서는 “나를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고 말씀하셨고 오늘 본문에서 베드로는 우리가 “예수를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의 구원에 있는 주님의 크신 사랑과 놀라운 은혜를 깨닫게 되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제껏 여러분들이 경험하고 깨닫게 된 주님의 사랑과 은혜에 대해 서로 나누며 피차 은혜 끼치는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Q2 그리고 오늘 본문 3절에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크신 긍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안에서 산 소망을 가지게 되었다고 말씀하고 있는데, 이 소망은 확실하여, 고난 마저도 오히려 기쁨으로 견디게 함으로 마침에 우리로 영광에 까지 이른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가진 소망이 산 소망 즉 살아 역사하는 산 소망이 되기 위해서는 소망의 대상 즉 소망이 누구로부터 왔는가, 그 내용이 무엇인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받는 이의 정체성, 즉 소망을 받을 이가 과연 그 소망을 감당할 수 있는가라는 세가지 질문에 달려 있을 것입니다. 한 예로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이 가졌던 소망은 비록 예수님에 대한 것이었지만, 예수님에 대한 잘못된 소망 즉 예수님을 이스라엘을 로마의 압제로부터 즉각적으로 구원해 줄 정치적 메시아로 기대하였던 바, 이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을 보고는, 부활하셨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지만 주님을 만나지는 못했다고 하자 실망하여 고향으로 낙향하였던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가진 산 소망은 어떻습니까? 여러분들이 가진 소망은 과연 예수님께로부터 왔는지 그리고 그 내용은 무엇인지 그리고 그 소망이 이루어졌을 때 나는 그것을 감당할 수 있겠는지 한번 깊이 생각해 보시고 서로 깨달은 것과 생각들을 나누어 주시면 좋겠습니다.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축복합니다.
기도 노트
( 오늘 말씀중 깨달아진 하나님의 성품 ) 하나님 아버지!
( 지난 한주간 혹은 오늘 하루 동안 감사한 일들 ) 해 주심에
찬송과 감사와 영광을 주님께 올려 드립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 깨닫게 해주신 죄 )를 깨닫게 해주셨음에 감사하며,
회개할 때에 용서해 주옵시고 이제 ( 새 삶 )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 주옵소서
특별히 오늘 말씀을 통하여 ( 새롭게 배운 점 ) 을 가르쳐 주심에 감사하며
( 삶의 도전 ) 살 수 있도록 은혜를 더하여 주옵소서
( 주님의 성품 ) 우리 주님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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