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26-23 살전1 "참 그리스도인상" 설교가이드
- 5월 2일
- 8분 분량
살전1:2-10, 핵심 구절 살전1:3-4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참 예배자를 찾으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의 예배를 통해 올려 드리는 모든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기쁘게 받으실 줄 믿습니다.
오늘 2026년 열 여덟 번째 부활주일을 맞아, 여러분 모두에게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이루신 모든 은택들을 우리에게 적용하시는 성령님의 은혜와 또 그의 권능으로 말미암아 복음의 기쁜 소식을 온 세상에 전하는 영광과 은혜와 축복이 가득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우리는 지난 주 부활 절기 네번째 주일을 맞아 갈5장 말씀을 통해서, 사랑하며 살아가는 삶에 대해서 함께 살펴 보았는데, 이번 주에는 부활절기 다섯번째 주일을 맞아, 살전1장 말씀을 통해서 이렇게 믿음과 소망과 사랑으로 살아감으로 바울로 부터 감사와 칭찬을 받았던 데살로니가 교회에 대해서 함께 살펴 보면서 은혜 나눌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1) 데살로니가전서는 바울의 서신에서 볼 수 있듯, 서두 부분, 감사 단락, 본론 부분과 맺음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중 오늘의 본문은 감사 단락에 해당하며, 오늘 본문은 네 개의 주요 구절, 즉
- 감사의 진술과 방식과 이유를 설명하는 2-5절과
- 바울이 하나님께 감사하는 이유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는 6-7절, 8절, 9-10절의
네 개의 주요 구절로 이루어져 있는데,
바울은 먼저 2-5절에서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으로 인해 감사하며, 또한 그것들로 말미암아 알 수 있는 하나님의 택하심에 대해서 그리고 이렇게 그들에게 복음이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 가운데 증거 되었음에 대해 감사한 후
이어진 6-7절에서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도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그들 즉 바울과 실라와 디모데가 본을 보여 준대로, 그들 또한 주와 그들을 본받은 자가 되어, 마게도냐와 아가야에 있는 모든 믿는 자들의 본이 되었음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8절에서는 그들을 통해 주의 말씀이 증거 되고 또한 그들의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짐으로 말미암아 감사하며
마지막으로 9-10절에서는 그들이 복음을 받아,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 돌아와 살아 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고 또 부활하신 그의 아들의 강림을 소망으로 기다림에 대해서 감사하고 있습니다.
2) 이와 같이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에 대하여 그의 짧은 사역 기간으로 말미암아 체계적인 가르침이 부족한 탓에 잘못된 종말론으로 인한 내적 혼란과 극심한 외적인 핍박으로 시한부 종말론적 경향 등의 문제가 있었지만 그러나 바울이 보낸 서신서에서 볼 수 있듯, 데살로니가 교회는 1세기 다른 교회들보다 이상적인 교회로 바울이 적어도 세번이나 교회의 사역 방식에 대해 감사함을 표현하고 있는데, (살전 1:2; 2:13; 3:9)
오늘은 바울이 이렇게 데살로니가 교회를 믿음 소망 사랑이 충만하며 환난을 견디면서 주의 재림을 기다리는 이상적인 교회로 생각하고 또 그에게 큰 기쁨을 주었던 수 데살로니가 교회의 특징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 보고 은혜 받기를 원하는데
바울은 이렇게 데살로니가 교회가 믿음 소망 사랑으로 충만한 교회가 될 수 있었던 이유를 먼저 하나님의 택하심에서 찾고 있습니다. 즉 그들이 믿음과 소망과 사랑으로 충만함을 보고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하나님의 택자였음을 알게 되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 하나님의 선택 교리는 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는 완전하게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 전체에서 분명히 이 교리를 가르치고 있는 바 이에 대해 몇가지 명백한 사실들을 살펴보면,
첫째, 우리의 구원은 살후 2:13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하”셨다는 말씀과 엡 1: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다는 말씀 등과 같이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의 선택으로 말미암는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두번째, 우리의 구원은 삼위 하나님 모든 분들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즉 성부 하나님께서는 창세 전에 선택하시고 작정하셨으며, 성자 하나님께서는 대속 사역을 이루시고 성령 하나님께서는 구원의 은혜를 우리들 택자에게 적용하시는 것입니다.
세번째 이러한 하나님의 선택은 하나님의 사랑 안에 있는 구원의 은혜를 포함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그의 은혜로 우리들이 받을 자격이 없는 것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네번째로는 이 하나님의 선택에는 믿음을 포함하고 있는데요. 롬 10:17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다는 말씀처럼, 성령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사용하여 믿음을 일으키신 바, 그래서 엡 2:8 에서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말씀하셨던 것이며
마지막으로 이 하나님의 선택은 결국 택자의 삶을 변화시키는데, 이 삶의 변화가 바로 그들이 하나님으로 부터 택하심을 받았다는 증거가 된다고 말씀하고 있는데, 그래서 오늘 본문 3절 말씀과 9-10절 말씀을 서로 연결해 보면, 믿음은 역사하는 바,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며 사랑으로 살아 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며 또한 소망 가운데 인내하며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게 되는 것입니다.
3) 그리고 두번째로 바울은 이렇게 데살로니가 교회를 이상적인 교회로 이끈 것은 바로 복음의 능력이라고 하면서, 복음은 말로만 이른 것이 아니라,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이르렀기 때문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복음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따라서, 그 복음의 말씀은 능력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이 지적한 것처럼 복음은 그저 말로 만 즉 머리로만 아는 지혜나 입술로만 선포되는 인간의 말이 아닙니다. 복음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 즉 천지를 지으시고 지금도 천지를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그 자체로 능력의 말씀이며 또한 성령님께서는 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음을 생성시키는 놀라운 힘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복음은 성령으로 된 것인데, 먼저 성령님께서는 겔 36:27에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데로 택자에게 오셔서 내주하심으로 내적 부르심과 함께 택자를 중생시키시고 또한 성화를 이루어 가시고 영원히 내주하시게 되는 바,
이러한 역사를 통해, 신자는 큰 확신을 가질 수 있는데, 이와 같이 영으로 난 것은 영으로 영으로 바람이 임의로 불매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듯 성령으로 난 사람도 그러하지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은혜를 베푸사 택자의 마음에 구원의 확신을 주시게 됨으로 택자로 하여금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하여 그 믿음과 사랑과 소망의 길을 걷게 하시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참 믿음”을 가졌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방법은 오늘 본문 6절 말씀 즉 “믿음은 사랑으로 역사한다”는 말씀처럼, 사랑의 행위로 나타나는 믿음이 참 믿음임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참 믿음은 행함이 있는 믿음(약 2:17)”인데, 그 행함은 바로 요일 5:1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니 또한 낳으신 이를 사랑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자를 사랑하느니라”는 말씀과 또 요일 4:20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는 말씀처럼 하나님 사랑과 형제 사랑으로 나타난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4) 그리고 이 복음은 주님께서도 요 13:15 에서 제자들의 발을 손수 씻어 주신 후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본을 보이는 삶을 통해서 그의 제자들을 교육하시고 훈련하셨듯 그의 제자인 바울도 빌 4:9 에서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고 함으로 본을 통해 다른 제자들을 양육했고 데살로니가 교인들 또한 “주와 우리 즉 바울과 실라와 디모데를 본 받은 자가 되어”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듯
기독교 제자도의 본질은 실은 “본이 되는 것 (exemplification)”인 바 주님의 제자들인 우리 또한 본이 되는 삶을 통하여 주님께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여 그들로 하여금 본을 보여 줌으로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도록 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5) 그리고 한가지 더 묵상해 보기를 원하는 것은 이러한 모든 것들을 가능케 하고 또한 극심한 환난 가운데에도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견딜 수 있게 한 것은 그리스도의 재림 신앙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를 부연하면,“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는데 (히 9:27) 그 때는 대속 사역을 위해 고난 받으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가 삼일 만에 부활하신 후 승천하셔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권세로 하늘과 땅의 모든 것을 다스리시다가 마지막 날에 하늘로 부터 이 땅에 강림하셔서 “모든 사람들을 심판하시되 각 사람들이 그 행한대로 보응하시되 ... 악을 행하는 각 사람의 영에는 환난과 곤고가 ... 그리고 선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을 것인데” (롬 2:6-10), “무릇 율법 없이 범죄한 자는 그 사람의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는 바 율법 없이 망하고 무른 율법이 있고 범죄한 자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을 것이로되” (롬 2:12-15),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 아래 있어” (롬 3:9) “죽음을 피할 수 없지만(롬 3:23)”그러나 하나님께서 여신 새 길! 즉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를 얻어 의롭다 칭함 받고(롬 3:21,24)” 또한 마지막 날에는 주님께서 우리의 죽은 육체도 무덤에서 부활시키시고 우리에게 심판을 면해 주시고 우리를 새 하늘 새 땅으로 인도해 주실 것을 소망하는 바, 이 재림 신앙은 우리로 이 나그네 인생길을 믿음과 소망과 사랑으로 걸어가게 하는 것입니다.
6) 이와 같이, 삼위 하나님의 택하심과 대속 사역과 거룩하게 하심과 복음의 능력은 그리스도와 믿음의 선진들의 본을 따라 재림을 기다림으로 믿음과 사랑과 소망으로 충만한 삶을 살게 하는데,
여기서, 믿음은 우리로 구원에 이르게 하는 믿음을 말할 뿐 만 아니라 또한 신실하게 사는 삶을 의미하는 것으로 항상 믿음은 행함으로 나타나는데,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은 “우리가 믿음과 행함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행하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사실인 바, 그래서 오늘 본문은 “믿음의 역사”라고 말했던 것이고
사랑 또한 구원의 증거인데, 믿음은 사랑으로 역사할 뿐 만 아니라 (갈 5:6) “하나님의 사랑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 마음에 부어져(롬 5:5)” 그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기(고후 5:14)” 때문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소망 또한 구원의 증거인데, 이는 주님께서 마24:30 에서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민족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고 선포하셨던 것처럼, 주님의 재림에 대한 참 소망은 우리로 이 땅의 모든 환난과 박해를 견디게 하는 힘이 되는 것인데, 우리 그리스도인은 이러한 믿음과 사랑과 소망의 미덕을 가진 자들인 것입니다.
7)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한가지 알아야 될 것이 있습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이러한 믿음과 사랑과 소망의 미덕을 우리가 성취할 수 있는가 하는 것과 만약 그렇다면 그 방법은 무엇일까 하는 것입니다.
즉 이 세상의 모든 종교와 철학과 도덕은 나름대로의 추구하는 “미덕”이 있습니다. 불교에서는 “자비”와 “깨달음”일 것이요, 그리스 철학은 “지혜”일 것이요, 도덕은 “황금율”인데, 모든 이들은 나름대로 그러한 미덕을 성취하기 위해, 평생을 분투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땅에 사는 동안에는 “완전한 미덕”을 성취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는 기독교의 미덕인 “믿음, 사랑, 소망”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평생 이러한 미덕을 추구하며 힘써야 하지만 그러나 우리의 힘으로는 이러한 미덕의 완전함에 이를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어떤 사람들은 기독교를 포함한 모든 종교는 한 산 정상에 오르기 위해 여러 갈래의 길을 가는 다양성일 뿐 모든 길은 결국 한 곳에 이른다고 하며, 모든 종교에 구원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 점에서 기독교의 신앙은 극명히 다릅니다. 성경은 분명히 “율법의 행위 즉 이런 저런 미덕을 추구하는 행위로는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고 그러한 율법의 행위로는 다만 죄를 깨달을(롬3:20)” 뿐 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기독교는 인간의 책임 즉 인간이 평생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삶을 포기하고 그냥 자유롭게 원하는 대로 살아도 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구원을 받은 사람들은 한 평생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 위해 매일 아침마다 다시 일깨우며 도전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과정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우리가 나이가 들어 갈수록 더욱 깊이 우리의 죄성을 깨닫고 더욱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는데, 그래서, 칼빈은 그의 책 “기독교 강요”에서 기독교의 핵심 신앙 강령을 “겸손”이라고 아우구스티누스의 말을 인용하여 ’자기에게 무언가 덕이 있다고 생각하면서 교만과 자랑을 삼가는 것은 겸손으로 여기지 않는다’‘고 하면서 사람이 완전히 낮아지는 것 이외에는 피할 곳이 없다고 진정으로 느낄 때에 그것을 가리켜 겸손이라고 여기는 것이라고 하며 누구든지 자기 스스로 아무것도 아니요 또한 자기로부터는 아무 도움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으면, 자기 속에 있는 무기들이 다 부서지고, 전쟁은 끝난다”고 말했던 것입니다ㅣ.
그리고 또한 성경은 갈 5:22에서 성령의 열매를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라고 말했는데, 각각 세가지 미덕들을 엮어 보면, 첫번째 그룹인 사랑과 희락과 화평의 첫째 미덕은 사랑이요, 두번째 그룹인 오래참음과 자비와 양선의 첫째 미덕이 소망으로 말미암는 오래참음이며 마지막 그룹인 충성과 온유와 절제의 첫째 미덕이 충성 즉 신실함인 바, 각 그룹의 첫번째 미덕이 나머지 두 미덕을 함양하는 바, 결국 성령의 열매도 또한 사랑과 소망과 믿음에 기반하는데, 이 성령의 열매는 “열매”라는 단어가 암시하듯, 우리가 우리의 뜻과 노력과 훈련으로 맺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하여 우리 마음의 주인 자리를 주님께 내 드리고 그의 뜻에 순종하여 살면, 내주하시는 성령의 열매가 우리의 삶에 나타나게 되는데, 그래서, 이 성령의 열매는 아홉가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단수로 쓰인 것입니다.
8) 그래서 주님께서도 마 11:29에서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고 하시면서 그때 “우리 마음이 쉼을 얻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 하옵기는 올 한 해 우리들 모두는 주님의 멍에를 메고 주님의 겸손과 온유를 배워 참 그리스도인의 미덕인 믿음과 사랑과 소망으로 풍성한 삶을 삶으로 하나님께 영광 올려 드리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소그룹 모임 가이드 및 예제 질문
Q1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 참 그리스도인의 미덕은 믿음, 사랑, 소망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잠시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과연 우리의 삶에 이런 그리스도인의 미덕이 풍성히 맺혀 있는지 살펴 보고 각자의 생각과 경험을 나누면서 은혜 나눌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Q2 그리고, 이러한 그리스도인의 미덕은 결국 우리가 주님의 겸손과 온유를 배워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하여 살면 우리의 삶에 풍성히 맺혀지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잠시 우리의 삶을 돌아보고 과연 우리가 주님의 온유와 겸손을 배우고 또한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며 살고 있는지 돌아 보고 각자의 생각과 경험과 은혜를 팀원들과 나누면서 은혜 나눌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축복합니다.
기도 노트
( 오늘 말씀중 깨달아진 하나님의 성품 ) 하나님 아버지!
( 지난 한주간 혹은 오늘 하루 동안 감사한 일들 ) 해 주심에
찬송과 감사와 영광을 주님께 올려 드립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 깨닫게 해주신 죄 )를 깨닫게 해주셨음에 감사하며,
회개할 때에 용서해 주옵시고 이제 ( 새 삶 )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 주옵소서
특별히 오늘 말씀을 통하여 ( 새롭게 배운 점 ) 을 가르쳐 주심에 감사하며
( 삶의 도전 ) 살 수 있도록 은혜를 더하여 주옵소서
( 주님의 성품 ) 우리 주님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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