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26-14 마11 가이드
- 2월 27일
- 7분 분량
마11:25-30, 핵심 구절 마11:29-30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참 예배자를 찾으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의 예배를 통해 올려 드리는 모든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기쁘게 받으실 줄 믿습니다.
오늘 2026년 아홉번째 주일을 맞아, 여러분 모두에게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이루신 모든 은택들을 우리에게 적용하시는 성령님의 은혜와 또 그의 권능으로 말미암아 복음의 기쁜 소식을 온 세상에 전하는 영광과 은혜와 축복이 가득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우리는 지난 주에 요한복음 15장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주 안에 거함으로 그의 사랑과 진리 가운데 거하는 삶을 살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 살펴 보았는데요. 이번 주에는 마태 복음 11장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주께 와서 주의 멍에를 지는 가운데 주의 겸손과 온유를 배워 그의 모든 은택을 누릴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 함께 알아 보고 은혜 나눌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1) 오늘 함께 읽은 마태복음은 그림에서 보시는 것처럼 6개의 이야기 사이 사이에 다섯개의 예수님의 설교를 배치한 구조로 되었는데,
먼저 1-4장에서 마태는 예수 그리스도는 구약에서 예언된 메시아 즉 왕이자, 선지자이자 제사장으로 기름부음 받은 자로서 이스라엘의 위대한 왕 다윗의 후손으로 오셨는데,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 예수 그리스도 즉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 그의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자, 그리고 기름부음 받은 자이신데, 그가 태어날 때 동방 박사들이 와서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그를 찾아 경배하고 돌아간 이야기를 시작으로 하여 성령으로 기름 부음을 받으시고 사역을 시작하신 이야기를 시작으로, 8-9장에서는 예수님께서 기적을 베푸신 이야기와 제자들을 부르신 이야기, 그러고 11-12장에서는 유대인들이 점점 예수님을 배척하는 이야기에 이어, 14-17 장에서는 제자들이 예수님을 받으들인 이야기와 함께 19-22 에서는 예수님을 과연 메시아로 영접할 것인가 아니면 그를 거부할 것인가에 대해 도전하는 이야기들을 기술한 후, 마지막으로 26-28 장에서는 그의 고난과 죽음과 부활 그리고 마지막으로 승천하시기 전에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을 것이니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 삼으라”고 명하신 이야기로 마무리하는데,
그 이야기들 사이로 다섯 개의 설교, 즉, a) 하나님 나라의 도래와 그 나라의 여덟 가지 복에 대한 설교, b) 제자들의 사명과 그들의 고난에 대한 설교, c) 또 하나님 나라의 비밀에 관한 설교, d) 그리고 제자들의 공동체와 제자도에 대한 설교, e) 마지막으로 하나님 나라의 완성에 대한 설교를 각각의 이야기들 사이에 배치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이 나오는 11 & 12장에는, 구약에서 예언한 엘리아 즉 하나님의 선지자로 주의 길을 예비하러 온 세례 요한이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라”고 선포하면서, 그의 뒤에 오시는 메시아 즉 이스라엘의 왕이자 선지자이자 대제사장으로 기름부음 받은 이가 오실 것이라고 전하였고, 또 예수님께서도 그의 권능과 가르침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과 리더들에게 복음에 대한 결단을 요구 하였지만, 그들은 오히려 세례 요한과 예수 그리스도를 배척하였는데, 마 11장과 12장에는 이 이야기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2) 그리고 오늘 본문 11장에서는 먼저 2-19절에서 마태는 본봉 왕 헤롯 안티파스가 그의 이복 동생 필립의 아내이자 자신의 조카인 헤로디아와 재혼한 일로 세례 요한이 이를 공개적으로 책망하자 그를 옥에 가두었는데, 요한이 예수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소개한 점 때문에 유대 지도자들은 그들의 조상이 그랬던 것처럼 하나님의 선지자인 요한을 박해한 이야기를 소개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20-24절에서 마태는 예수님께서 그의 권능을 가장 많이 행하신 복음의 삼각지대 즉 고라신과 벳세다와 가버나움이 회개하지 않음을 보시고 책망하신 사건을 기록하고 있는데, 예수님께서는 결국 이들이 복음을 듣지 않았던 이유는 스스로 지혜롭고 슬기롭다는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하면서, 이렇게 자기 스스로 진리를 깨달을 수 있다고 하는 사람이나 스스로의 힘으로 선을 행할 수 있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은 결국 하나님의 복음의 비밀을 깨달을 수 없고 오히려 어린 아이들과 같이 스스로의 부족함과 연약함을 인정하고 아버지께 나오는 사람들은 복음을 듣고 믿어 그 기쁨을 누릴 수 있다고 하면서 주님께서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고 말씀”하시면서 사람들을 다시 복음으로 초대하고 있습니다.
3) 오늘 본문에서 몇가지 중요한 포인트들에 대해 묵상해 보기를 원하는데,
첫번째, 주님께서는 우리를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로 정의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인간이 고통에 처해 있다는 입장은 시대와 문화를 넘어 만국 공용어이자 거의 모든 종교와 철학에서도 같은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 철학자 니체는 그의 책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에서 인간의 정신은 낙타, 사자 그리고 아이의 3단계로 성장하는데, 신이 부과한 무거운 고통을 감내하는 낙타에서 시작하여, 그러한 숙명에 항거 하는 사자, 그리고 마지막에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자기에게 주어진 삶을 하나의 유희요 예술 작품으로 승화시키는 아이로 성장해 간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불교의 창시자 싯타르타는 “인생은 고해다”라고 하면서, 생노병사, 즉, 태어남도, 나이먹는 것도, 병드는 것도, 죽는 것도 다 고통인데 팔정도 즉 여덟가지 바른 길을 통해 집착을 버리고 해탈함으로 니르바나에 이른다고 했습니다.
이와 같이 모든 종교나 철학에서는 인생이 고통이라는 데에는 거의 모두가 인정을 하지만, 그러나 그 해법에 있어서는 다른데, 그 해법들을 크게 두가지로 나눈다면, 한가지는 인간이 스스로 깨우치거나 혹은 자기 자신의 노력을 통해 이 인생의 고통으로 부터 해방될 수 있다는 입장이 있고 다른 입장은 그것이 불가능하기에 오직 은혜로만 이러한 고통으로 부터 구원받을 수 있다는 입장이 있는데요. .
부연하면, 깨달음을 통해 고통을 벗어나 해탈하거나 또는 선한 카르마 즉 선행을 쌓음으로 결국 이 고통의 세계로의 환생을 중지할 수 있다고 믿는 불교나, 지혜를 깨우침으로 불완전한 몸을 벗어 버리고 우리의 정신이 이데아의 세계로 갈 수 있다는 그리스 철학이 전자의 입장인데, 비록 그 해법이 조금씩 다르게 보이지만, 인간 스스로의 깨달음이나 노력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보고 점에서는 일치합니다. 그런데, 오늘 주님께서는 우리의 고통에 대해서 다른 해법을 제가하고 있는데요. 즉 예수님께서도 분명 죄와 죄책과 또 그 저주로 말미암아 인간은 죄짐을 지고 고통 가운데 있지만, 그러나 율법을 지켜 구원을 얻으려고 하는 율법주의나 자신의 욕망을 다스림으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고 하는 금욕주의는 오히려 인간에게 더 무거운 짐을 지울 뿐, 인간 스스로는 깨우치거나 자신의 노력으로 이 무거운 짐에서 자유함을 얻을 수 없다고 말씀하시면서.
4) 대신 예수님께서는 이런 무거운 짐을 지고 헛된 수고를 하는 이들에게 “나에게 나와서 나의 짐을 지고 나에게 배우라”고 하시면서 그러면 쉼을 얻을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주께 나오라는 말씀은 주님을 신뢰한다 즉 믿는다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바리새인들은 주님께서 마 23:4 절에 말씀했던 것처럼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고는 모두 “행하라!”고 말하며 백성들이 모세의 전통을 따르도록 강요했지만, 그러나 실은 자기들 또한 그 짐을 질 수도 없었고 또한 그런 짐을 피해 가려 했는데, 그 이유는 율법은 선하고 거룩하지만 롬 7:18 말씀처럼, 중생한 기독교인들 마저도 율법대로 살아갈 능력은 없기에, 롬 3:20절 말씀처럼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으며 다만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을 뿐이기 때문입니다.
5) 그리고 이어서 주님께서는 주님의 멍에를 지라고 하셨는데, 그 당시 멍에를 지다는 말은 그의 제자가 된다는 뜻이었던 바, 그의 제자가 되어 그를 쫓아오라고 말씀하신 것인데, 여기서 그의 멍에는 진리 혹은 복음에 대한 믿음과 그의 계명대로 사랑하라는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는데, 믿음도 선물이요 사랑도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부어 주시고 그 인도하심에 따라 감으로 성령께서 우리의 삶에 사랑의 열매로 맺어 주시는데, 그래서 주님은 심지어 이 멍에는 쉽고 가볍다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6) 그러나 이렇게 주님께서 주신 믿음과 사랑으로 주님을 믿고 사랑하며 살라고 하신, 주님께서 쉽다고 하신 이 주님의 멍에조차 힘이 드는 것은 그 믿음과 사랑 마저도 우리의 힘으로 할려고 하니 힘이 들 뿐 인데, 주님의 다음 말씀을 보면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즉 주님은 자기의 멍에를 메고 주님의 성품인 온유와 겸손을 배우라고 말씀 하셨는데, 이 겸손과 온유는 모든 성품의 근본적 기준이자 모델인데, 여기서 겸손으로 번역된 헬라어 “타페이노스 (ταπεινός,tapeinos) 는 자기의 힘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을 깨닫고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고 모든 것을 하나님께 의존하는 온전한 의존의 성품을 말하는 것이고 온유로 번역된 헬라어 “프라우스 (πραΰς,praus) 도 가르침을 받는 사람이 가르치는 하나님을 거스르려 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르침을 받으려고 준비된 온전한 순종의 성품을 말하는 바
따라서, 서로 사랑하라는 주님의 명령 앞에, 순종하는 마음으로 나아오되 그러나 스스로의 힘으로는 사랑할 수 없음을 인정하고 주님께서 부어지는 사랑을 의지하여 사랑하면, 그때서야 우리는 “사랑하라”는 주님의 명령이 쉽고 가벼운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7) 이와 같이, 우리가 믿음으로 주님께 나와서 그의 멍에를 메고 주님께 배우면 우리는 복종과 순종으로 말미암은 깊은 안식과 평화를 누리게 되는데, 첫번째로는 하나님과의 화해를 누리고 또 두번째로는 하나님의 평화를 누리게 되는데, 부연하면 이제 우리는 죄를 용서 받고 하나님과 화해를 이루어 그의 사랑하시는 자녀가 되는데, 그래서 롬 5:1 에서는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고 말했던 것이고 그리고 두번째로 빌 4:6-7 말씀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는 말씀처럼, 어떠한 어려움과 환난이 오더라도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를 지켜 주시게 되는 것입니다.
8) 그런데 여러분! 여기서 우리는 매우 중요한 point 에 대해서 알 필요가 있습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주님께서 25-27절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천지의 주재가 되신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이러한 복음의 진리를 스스로 지혜롭고 슬기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시는데, 그런데,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아들에게 주셨지만,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사람들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다고 말씀하시고 있는 바, 우리는 어린 아이와 같이 겸손한 마음으로 복음에 믿음으로 반응해야 할 책임이 있지만, 또한 이러한 믿음의 역사는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요 은혜로 말미암는다는 사실입니다.
이를 부연 설명하면, 인간은 영적으로 죽어 있는 존재이기에, 복음의 진리가 선포되었을 때 그 복음의 비밀을 이해할 수도 또 그래서 스스로 믿을 수도 없기에, 하나님께서는 복음의 말씀이 선포되었을 때 성령께서 도우셔서 우리의 마음을 여시고 믿음으로 받아 들일 수 있도록 하시는데, 이는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에 의한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한 우리 인간은 오늘 주님께서 복음에로 초대하신 것처럼 또한 그의 전도자를 세워 그로 하여금 복음의 진리를 선포하게 하시고 인간이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오게 하시는데, 이로 말미암아 우리 인간은 복음에 믿음으로 반응하지 않은 것에 대한 책임을 면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심지어 믿음으로 반응한 신자들 조차, 이 신비를 이해하기가 어려운데, 그러나 막상 믿고 나서 점점 더 하나님의 복음의 비밀을 알게 되면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는, 처음 믿었던 그 때를 뒤돌아 보면, 이 모든 것이 오직 하나님의 은혜임을 깨닫고 눅 17:10 말씀처럼 더욱 겸손히 하나님께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 뿐이라”고 고백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다 3절에서는 유다는 그의 서신서 수신자인 이방 사회에 살고 있던 유대 그리스도인들에게 “사랑하는 자들아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고 하였는데, 이와 같이 한편으로는 하나님께서는 그의 주권으로 믿음을 주시지만 그러나 동시에 인간 편에서는 힘써 싸우라고 권면하였던 것입니다..
9) 그러나 도르트 신경 다섯번째 주요 신조인 “성도의 견인” 제1항과 2항에서는 “중생한 성도도 죄로 부터 완전히 자유롭지 않다고 하면서 죄로 부터 오는 연약함이 매일의 삶에 드러”나는 데, “그 때에는 그것들로 인해 하나님 앞에 더욱 겸손해 져서, 한편으로는 더욱 더 육신을 십자가에 못 박으면서, 마지막 날에 이 죽음의 몸으로 부터 완전히 해방될 때 까지 정진하여야 한다”고 말씀하셨던 것인 바, 우리가 주님의 제자로 살아가면서, 혹 넘어질 지라도 주님의 겸손과 온유함을 배울 기회로 알고 오히려 더 낮아져서 주님의 은혜를 구하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그러므로 기도 하옵기는 올 한 해 매사 매순간 믿음으로 주님께 나아와 주님 주신 멍에를 메고 앞서 가신 주님을 붙쫓되, 그런 과정에서 우리의 연약함으로 넘어질 때에, 더욱 겸손과 온유를 배워 주님을 더욱 의지하고 순종에 이르러, 주님께서 주시는 참 쉼을 얻어 누리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소그룹 모임 가이드 및 예제 질문
Q1 오늘 말씀에서, 주님은 우리 인간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로 이 땅을 살아가지만 주님께 믿음으로 나와 주님의 제자가 되어 주님께 배우는 삶을 살면 참 쉼을 얻을 수 있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잠시 우리 자신의 삶을 돌아 보면서, 과연 우리가 주님의 제자로 살아가면서 무엇을 배우고 있는지 돌아 보고 각자의 생각과 경험을 나누면서 은혜 나눌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Q2 그리고, 이렇게 주님의 제자로서의 삶은 결국 주님의 겸손과 온유를 배우는 삶인데, 잠시 우리의 삶을 돌아보면서 과연 우리의 겸손과 온유가 어디까지 이르렀는지 돌아 보고 각자의 생각과 경험과 은혜를 팀원들과 나누면서 은혜 나눌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축복합니다.
기도 노트
( 오늘 말씀중 깨달아진 하나님의 성품 ) 하나님 아버지!
( 지난 한주간 혹은 오늘 하루 동안 감사한 일들 ) 해 주심에
찬송과 감사와 영광을 주님께 올려 드립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 깨닫게 해주신 죄 )를 깨닫게 해주셨음에 감사하며,
회개할 때에 용서해 주옵시고 이제 ( 새 삶 )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 주옵소서
특별히 오늘 말씀을 통하여 ( 새롭게 배운 점 ) 을 가르쳐 주심에 감사하며
( 삶의 도전 ) 살 수 있도록 은혜를 더하여 주옵소서
( 주님의 성품 ) 우리 주님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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