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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25-4 요15 가이드

요15:1-12, 핵심 구절 요15:12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참 예배자를 찾으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의 예배를 통해 올려 드리는 모든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기쁘게 받으실 줄 믿습니다.

오늘 대림절 네번째 주일을 맞아, 여러분 모두에게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이루신 모든 은택들을 우리에게 적용하시는 성령님의 은혜와 또 그의 권능으로 말미암아 복음의 기쁜 소식을 온 세상에 전하는 영광과 은혜와 축복이 가득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우리는 지난 주에 로마서 5장 1-11절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칭의함을 받고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면서, 또한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고 즐거워하며 심지어 환난 가운데에도 기뻐할 뿐 만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즐거워하는 삶을 산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번 주 대림절 네번째 주에는, 요한 복음 15:1-12 말씀을 통해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한번 묵상해 보고 은혜 나눌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1)     여러분 우리는 이번 주에 대림절 네번째 주를 보내고 있는데, 이번 주에 함께 묵상해 볼 주제는 “사랑”입니다. 그런데, 지난 주에 우리가 로마서 5장에서 우리 크리스천들은 세가지 즐거움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데, 그것은 1) 하나님의 영광을 입을 것에 대한 소망 안에서 즐거워하고, 2) 심지어 환난 가운데에도 즐거워하는데, 그 이유는 환난은 인내와 성품을 함양하게 하여 소망을 가질 수 있게 하기 때문이며 3) 그리고 마지막으로 또한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즐거워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가진 소망에 대해서 우리가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 마음에 부어 주셨고, 또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즉 우리가 아직 연약함에 휩싸여 우리가 원수 같이 행하고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자기의 아들을 내어 주심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확정하셨기 때문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2)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런 놀라운 “사랑”을 베풀어 주신 이유는 바로 요일 4:8 말씀처럼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세 분 하나님은 완벽한 사랑의 공동체를 구성하고 계시답니다. 즉 성부 하나님은 사랑하시는 분으로, 또 성자 하나님은 사랑 받으시는 분으로, 그리고 성령 하나님은 사랑 그 자체이신 분로서, 이 세 분 하나님의 존재의 깊은 신비 속에는 친밀한 관계, 교제, 그리고 사랑의 공동체 즉 완벽한 사랑의 서클을 형성하고 계시기에, 이 사랑의 서클로 부터 실은 무궁한 사랑이 흘러 나오기 때문입니다.

3)     이렇게 완벽한 사랑의 공동체를 구성하고 계신 하나님의 사랑을 신약 성경에서는 “아가페”라고 말하고 있는데, 원래 헬라어에는 사랑을 표현하는 단어가 네가지가 있습니다, 즉, 스토르게, 필레오, 에로스, 아가페가 있습니다. 여기서, 스토르게 (Storgē, stergō)는 부모가 자녀에 대해 자연스럽게 느끼는 부드러운 감정이나 형제자매와 부모에 대한 자녀의 부드러운 감정, 또는 남편과 아내를 하나로 묶는 유대감을 의미하며, 또한 친구와 동포에 대한 동정심을 나타내는 단어입니다. 그리고 필레오(philia, phileō)는 우정 또는 우애를 말하는데, 엄밀히 말하자면, 우정은 호혜성을 바탕으로 하며, 규정된 집단의 사람들 내에서만 그리고 무엇보다도 같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 사이에 일어나는 감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에로스(eraō)는 불합리한 열정 즉 논리적이거나 합리적이지 않은 사랑이나 욕망(alogos orexis)을 표현하며, 종종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어, 탐욕의 의미가 있기에, 특히 신성한 사랑을 표현하는 데에는 잘 쓰이지 않습니다. 반면에 아가페 (ἀγάπη agape)라는 단어는 가치에 대한 인식과 판단을 바탕으로 하는 가장 합리적인 종류의 사랑으로, 아가페는 벧전 2:17 말씀처럼, 깊은 존경을 담은 사랑인데 (벧전 2:17), 그래서 이 사랑은 종종 감탄을 동반하고 흠숭을 일으켜, 그에 따른 적절한 말과 행동으로 표현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따라서 마음 속에 숨겨져 있을 수 있는 다른 사랑들과는 달리, 이 아가페 사랑은 자신을 나타내고, 사랑의 증거를 제공하는 바, 그래서 신약에서는 아가페를 "사랑의 표현"으로 번역할 때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 아가페는 일반적으로 문학 작품에서 끝없는 고통과 재앙을 가져오는 에로스와는 달리 만족을 동반하는 것으로 표현하는데, 그래서, “아가페”의 동사형 “아가파오”는 일반적으로 행복하고 만족하다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에서는 아가페가 롬 5:5 말씀처럼 하늘로부터 오는 하나님의 사랑이기 때문에, 그것은 기쁨이 될 것이며 축복의 맛보기가 될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는 가장 일반적인 헬라어인 “아가페”의 사랑은 그가 사랑하시는 사람들에 대한 가치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그들에 대한 감탄을 동반하는 놀라운 사랑임을 알 수 있는데, 그런데, 하나님의 사랑은 이렇게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랑 만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4)     무슨 말인가 하면, 스바냐 3:17 말씀 즉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는 말씀에서 보면, 하나님은 그의 백성에 대한 기쁨을 세 차례 반복하여 말씀하시는데 첫번째로 하나님은 남은 자들을 향한 기쁨의 감정을 표현하고 있고, 두번째에서는 하나님이 남은 자들에 대한 사랑 때문에 자기 입을 다무신다고 말씀하시는데, 여기서 “잠잠하다”라고 번역된 히브리 동사חרשׁ  (ḥrš 하라쉬)는 단순히 말없는 모습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내면의 깊은 감정, 즉 남은 자들에 대한 깊은 사랑의 감정에 복 받혀 말을 잇지 못하는 모습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제 그 감정이 터져 나오면서 소리를 지르며 남은 자들에 대한 형용할 수 없는 기쁨을 표출하시는데, 이를 개역개정은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라고 말하고 있는 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랑은 깊은 감정적 사랑도 포함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또 요 13:1 말씀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것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는 말씀을 보면, 예수님의 사랑은 그의 제자들의 불완전함이나 심지어 배신을 넘어서 끝까지 사랑하시는 의지적 사랑임을 우리는 또한 알 수 있습니다.

5)     그런데, 여러분 하나님께서 이 사랑 안에서 인간을 창조 하셨고, 또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드실 때, 그 하나님의 형상의 중심에 바로 이런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이 있었습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여러분, 성경의 맨 처음에는 하나님께서 온 세상을 창조하신 이야기가 나오는데,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살기에 적합한 우주와 환경을 먼저 창조하신 후에 마지막에 인간을 창조하셨는데, 그는 인간 즉 남자와 여자를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드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하나님의 형상에는 구조성과 기능성 양면을 모두 포함하는데, 이 두 가지 측면을 묘사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신학자들은 다양한 용어들을 사용하였습니다. 즉 헤르만 바빙크와 루이스 벌코프는 광의적 형상과 협의적 형상으로 그리고 부른너는 형식적 측면과 실질적 측면의 하나님의 형상 등으로 설명하였는데, 안토니 후크마는 그의 책 “개혁주의 인간론”에서 광의적, 형식적, 구조적 측면에서의 하나님의 형상을 인간의 지성적, 합리적 능력들이라고 설명하면서, 물론 이 속에는 인간의 도덕적 감수성 즉 옳고 그름을 구별하는 능력과 양심을 포함하고 있으며, 또한 이 범주 안에는, 종교적 예배 행위를 할 수 있는 능력 즉 칼빈이 말하는 sensus di-νinitatis 즉 신성을 감지할 수 있는 능력을 포함하며, 또한 최근의 신학자들에 의해 자주 언급되고 있는 인간의 책임성을 포함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하면서, 하나님과 동료 인간을 향하여 반응할 수 있는 능력과 이러한 반응의 행위에 대하여 책임을 질 수 있는 능력을 광의적 의미의 하나님의 형상 속에 포함시키기도 했는데, 그 외에도 인간의 의지적 능력들, 결정할 수 있는 능력들과 그 밖에도 인간 만이 갖고 있는 심미적 감각도 포함할 수 있는데, 요약해서 말하면, 넓은 의미로의, 혹은 구조적 측면으로서의 하나님의 형상은, 인간이 맺고 있는 다양한 관계성과 소명들 속에서 인간으로서 마땅히 행해야 할 것을 행하도록 즉 기능하게 하도록 인간에게 부여된 모든 은사들과 재능들을 말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어서 협의적, 실질적, 기능적 측면에서의 하나님의 형상은 전통적으로 개혁주의 신학자들은 골 3:10과 엡 4:24 말씀을 근거로 하여 참된 지식과 의와 거룩성을 그 속에 포함시키며, 벌카워는 이를 “구체적으로 보여질 수 있는 성화”로 묘사하기도 했고, 또 이 기능적 측면의 하나님의 형상은 사람이 하나님께 바른 응답을 하여, 사람이 하나님과 이웃들과의 올바른 관계 즉 사랑으로 살아가는 것을 말한다고 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협의적 의미의 하나님의 형상은 인간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과 조화를 이루어 작동하는 인간의 올바른 기능성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는데, 그런데, 이와 같은 하나님의 형상의 가장 중심부에는 바로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사람을 향한 사랑이 있습니다. 즉 하나님을 빼어 닮은 형상이신 그리스도의 하나님의 형상의 심장에는 바로 사랑이 있는데, 그래서 우리는 그의 삶을 통해서 그 누구도 그리스도만큼 사랑해 본 이가 없음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6)     그래서, 이런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인간에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십계명을 주셨고, 예수님께서도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을 주신 것인데. 이렇게 사랑의 계명을 주신 이유는 사랑하는 것이야 말로 바로 사랑이신 하나님께서 만드신 인간의 존재 이유이자 동시에 인간의 자연스런 존재 양식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심지어 타락한 이후에도 서로 사랑하려고 하고 또한 사랑을 목말라 하며 심지어 동물들 마저도 원초적인 사랑을 보여 주는데,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랑은 그가 만드신 인간을 포함한 모든 만물에 스며 들어 있는 것입니다.

7)     그러므로 우리 인간 특히 크리스천들은 중생을 통하여 회복된 본성으로 말미암아 사랑하며 살 수 밖에 없는 그런 존재가 되었는데, 그래서, 오늘 본문 요 15장 말씀에서는, 이런 사랑의 열매를 맺어야 하는데, 즉 내면적으로 성령의 첫째 열매인 사랑의 열매를 풍성히 맺는 것이거나, 또는 그 사랑으로 세상을 섬기는 사랑의 섬김의 열매를 맺는 것이거나, 또 세상에 그 사랑을 전하는 사랑의 복음의 열매를 맺는 것이거나 간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사랑의 열매를 맺기에 힘써야 하는데, 이런 사랑의 열매를 맺기 위해서, 우리는 사랑이신 그리스도 안에 거해야 하며, 또한 하나님의 말씀 안에 거하며 즉 하나님의 뜻인 사랑 안에서 다른 사람을 위하여 기도해야 하며, 또한 무엇보다도 주님의 말씀처럼 주님의 사랑 안에 거하여야 한다고 말씀하시고 있는데, 여기서 주님의 사랑 안에 거한다는 것은 주님의 따뜻한 사랑 안에 잠겨서 감정적인 포근함을 누리라는 말씀이기도 하지만, 오늘 본문은 다른 측면을 말씀하고 있는데, 주님은 주님의 새 계명인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을 지키라고 하시면서, 그렇게 하면 우리는 주님의 사랑 안에 거할 수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주님의 따스한 사랑을 누릴 뿐 만 아니라, 주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사랑으로 행할 때 우리는 또한 주님의 사랑 안에 거하게 된다고 말씀하고 있고 그래서, 요일 3:14 에서는 “우리는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안다고 말씀했던 것입니다.

8)     그래서 여기 있는 우리들 모두는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택하심을 입어, 때가 됨에 우리 안에 찾아 오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사랑이신 하나님께로 부터 났고, 또한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 안에 계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랑 가운데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또한 충만하게 되어, 사랑하며 살게 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우리의 영성의 성숙이며 그래서, 제임스 윌호이트는 그의 책 “교회를 통한 영성의 함양”에서 “그리스도인의 영성 함양은 공동체 안에서 서로 어울리는 과정을 통하여,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성장하고, 성령의 능력을 통해 그리스도를 더 닮아가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는 궁극적으로 크리스천들로 하여금 다른 사람들을 더 사랑하게 만들고, 또한 바르고 질서 잡힌 공동체를 만들 수 있도록 하는 것에 대한 것입니다’라고 말했던 것인데, 오늘 대림절 넷째 주를 맞아, 우리가 주님을 기다리면서, 한 평생을 그리고 마지막 순간에도 그의 모든 것을 바쳐 우리를 사랑하신 주님을 생각하며, 우리가 주님의 사랑 안에 거함으로 또한 주님의 기쁨이 우리들 모두에게 충만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소그룹 모임 가이드 및 예제 질문

Q1 오늘 말씀을 보면, 사랑은 하나님의 본질적 속성이자 또한 우리의 하나님 형상의 중심으로, 우리 인간의 존재 이유이자 또 본연의 존재 양식이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잠시 자신과 자신의 삶을 돌아 보면서, 과연 우리는 사랑하며 살고 있는지 돌아 보고 각자의 생각과 경험을 팀원들과 나누면서 은혜 나눌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Q2 그리고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우리가 주님의 새 계명대로 사랑하며 살게 될 때 우리는 주님의 사랑 안에 거한다고 말씀하고 있는데, 잠시 이 말씀을 묵상해 보고, 각자의 생각과 경험을 팀원들과 나누면서 은혜 나눌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축복합니다.

기도 노트

(  오늘 말씀중 깨달아진 하나님의 성품  ) 하나님 아버지!

(  지난 한주간 혹은 오늘 하루 동안 감사한 일들 ) 해 주심에

찬송과 감사와 영광을 주님께 올려 드립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        깨닫게 해주신 죄          )를 깨닫게 해주셨음에 감사하며,

회개할 때에 용서해 주옵시고 이제 (  새 삶  )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 주옵소서

특별히 오늘 말씀을 통하여 ( 새롭게 배운 점 ) 을 가르쳐 주심에 감사하며

(    삶의 도전     ) 살 수 있도록 은혜를 더하여 주옵소서

( 주님의 성품 ) 우리 주님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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