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일1:5-2:11, 핵심 구절 요일2:5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참 예배자를 찾으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의 예배를 통해 올려 드리는 모든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기쁘게 받으실 줄 믿습니다.
오늘 성령 강림 후 스물 네번째 주일을 맞아, 여러분 모두에게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이루신 모든 은택들을 우리에게 적용하시는 성령님의 은혜와 또 그의 권능으로 말미암아 복음의 기쁜 소식을 온 세상에 전하는 영광과 은혜와 축복이 가득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우리는 지난 주에 베드로전서를 통해 비록 말세지말의 유혹과 고난이 우리에게 있겠지만 그러나 주님으로 말미암은 산 소망 안에서 믿음의 시련을 견디는 과정에서, 우리의 믿음이 더욱 확실하게 되어 마침내 주님 오실 때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받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번 주에는 요한일서를 함께 살펴 보면서, 마지막 시대에 성도들을 유혹하는 잘못된 가르침들은 어떤 것이 있고 또 그것들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지 살펴 보기를 원합니다.
1) 요한1/2/3서는 8개의 공동서신서 즉 야고보서, 히브리서, 베드로 전후서, 유다서, 그리고 요한 1/2/3서 중 마지막에 쓰여진 서신서들로, 저자는 사도 요한입니다. 사도 요한은 세베대의 둘째 아들로 초기에는 형인 야고보와 함께 가버나움에서 베드로와 안드레 형제와 함께 어부 생활을 하다가 게네사렛 호수가에서 배의 그물을 손질하던 중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아버지와 삯군들을 남겨둔 채 그를 따라 나서 그의 제자가 되었고, 수제자인 베드로와 함께 예수님을 가장 가까이 따라 다녔던 예수님의 사랑받는 제자로 알려졌는데, 그와 그의 형 야고보는 원래 화를 잘 내며 도량이 좁아 예수님께서 “우뢰의 아들”이라는 별명을 지어 주셨지만, 예수님을 따라다니며 결국 변하여 나이 들어서는 “사랑의 사도”로 알려 졌고 그의 제자들로는 안디옥 교회의 제3대 감독 이그나티우스와 서머나의 사제 폴리갑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께서 잡히신 것을 보고 무서워 도망쳤다가, 다시 돌아와 결국 골고다 언덕까지 예수님을 따라 갔고, 그곳에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께서 그의 모친 마리아를 그에게 부탁하시자 그로 부터 마리아를 모셨으며 사도들 중 요한 만이 “내가 목이 마르다” 또 “다 이루었다”는 예수님의 최후 말씀을 들었고 또 예수님의 영혼이 떠나가시는 것을 지켜 보았습니다. 그리고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이후 그는 베드로와 함께 예루살렘과 사마리아에서 포교 활동을 벌이다, 전승에 의하면, AD44년 헤로데스 아그리파 1세의 박해를 피해 소아시아로 피신해 그곳의 일곱 교회 즉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교회를 지도하며 요한 복음서를 기록하였고, AD 95년 로마 황제 도미티아누스의 기독교 박해 때 잡혀 밧모 섬으로 유배되었는데, 이 때 요한 계시록을 저술하였고, AD 96년 도미티아누스 황제가 암살되자 사면을 받아 다시 에베소로 귀환하여 여생을 보내다가 AD100 년경 임종을 맞았다고 전해 내려오는데, 요한일이삼 서신서는 그 때 에베소에서 기록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2) 이 서신서들이 쓰여진 1세기 말에는 그동안 사도 바울과 할례파 유대인들과의 할례 논쟁이 거의 종식되었고 이제 교회는 새로운 논쟁에 직면했는데, 그것이 바로 영지주의 논쟁이었습니다. 이 영지주의는 인간은 신령하고 선한 영혼이 악한 육체를 입고 있기에 결국 고통 당하다가 죽고 또 살기를 반복한다고 보았고, 따라서 인간은 영적 각성을 통해 신비한 지식을 얻으면 그의 영혼이 육신의 굴레에서 해방되어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보았기에, 그들의 가르침에 빠지면 주로 육체를 학대하는 극단적인 금욕주의에 빠지거나 또는 악한 육신은 아무 것도 아니기에 오히려 윤리적 방탕주의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신이신 예수님께서 인간의 육체 즉 악한 육체를 입으시고 이 땅에 오셨다는 것을 부인하면서, 그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하여 인간의 구원을 이루신 예수님의 그리스도 되심을 인정하지 않으며, 교회로 부터 분리되어 나갔습니다. 이에 사도 요한은 그 당시 교회들에게 이 편지를 써 보내, 이러한 영지주의의 패단으로 부터 교회를 지키고자 하였는데, 그는 이 서신서를 통해 그리스도의 인성과 사역에 대한 바른 이해를 돕고, 또 기독교인의 바른 믿음과 실천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참 진리의 특징인 그리스도를 닮은 사랑의 삶을 살도록 권면하였습니다.
3) 이 요한일서는 주제의 반복과 그 주제에 대한 추가적인 부연 등으로 인하여 그 구조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지만 히브리 문학의 키아즘 구조 즉 대칭 병행 구조로 그 내용을 간략히 정리해 보면, 요한은 먼저 도입부에서 그리스도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신데 그는 그를 직접 보고 듣고 만져 보았다고 하면서, 그가 보고 들은 바를 전함은 그들과 사귐이 있게 하고 또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리게 함으로 그의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고 운을 뗀 후, 본론에서 그는 먼저 하나님은 빛 즉 순결하시고 진리이신 분으로, 우리가 빛 가운데 행하면 그와 사귐이 있게 되고, 예수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시는데, 그렇게 빛 가운데 거하는 자는 그의 계명을 순종하며 그의 형제를 사랑하게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적 그리스도는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고 그의 교회로 부터 분리되어 나갔지만,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은 그리스도 안에 거함으로 자기를 깨끗하게 하고, 또 서로 사랑하게 되는데, 이 형제 사랑으로 말미암아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게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그는 히브리 문학의 키아즘 즉 대칭 병행 구조를 따라 이제껏 말한 주제들을 대칭적으로 다시 반복하면서 심화하는데, 먼저 적 그리스도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지 않지만, 하나님의 사람들은 내주 하시는 진리의 영이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알게 되는데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사랑이심을 알게 된 크리스천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사랑하셔서 그의 독생자를 통해 그들을 살리셨듯, 하나님을 사랑하며, 이 하나님에 대한 사랑은 결국 형제 사랑으로 나타나는데, 이를 통해서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사람들 안에 그리고 하나님의 사람들이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것을 알 수 있으며, 또한 하나님께로 부터 나서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는 그의 아들이 그들의 안에 거하시기에, 그의 계명을 지켜 서로 사랑할 뿐 만 아니라 또한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세상을 이기게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종결부에서 요한은 다시 한번 더 이 편지를 쓴 이유는 이 편지의 수신자들로 하여금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고 자 한 것이라고 하면서, 하나님께로 부터 난 자는 범죄하지 아니하고 참된 자 즉 영생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고 하면서, 그들에게 “너희 자신을 지켜 우상에게서 멀리하라”고 권면하면서 그의 서신서를 마무리 하고 있습니다.
4) 오늘 본문인 1장 5절에서 2장 11절 말씀을 통해서 몇가지를 같이 생각해 보고 은혜 나누기를 원하는데, 먼저 이단 즉 영지주의 사상은 인간의 영혼은 선한데 다만 악한 육체를 입었기에, 신비로운 지고한 지식을 깨달으면 결국 구원을 받아, 악한 육체를 벗어 버리고 마침내 영의 세계 즉 빛의 세계에 이르게 된다고 말하는 반면 사도 요한은 오늘 본문 1장 8절과 10절에서 모든 인간은 죄를 지었고, 또 죄성이 있는 존재인데, 예수님께 나아와 죄를 고백하면 예수님께서 죄를 깨끗하게 해 주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10절에서 “우리 모두가 범죄 하였다”는 구절은 완료형으로 쓰였는데 그 뜻은 과거부터 지금까지 우리는 범죄하였다는 의미하며, 반면에 8절에서 “우리에게 죄가 있다”는 구절은 현재형으로 쓰였는데, 그 의미는 지금 현재에도 죄성이 남아 있다는 말씀으로 심지어 중생한 신자에게도 죄성이 남아 있음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그는 인간은 과거로 부터 지금까지 죄를 짓고 있는, 그 안에는 죄성이 있는 존재이기에, 죄를 없이 하고자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 그 죄를 자백하면 구원을 얻게 된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이며 그래서 롬 3:10 에서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이며, 또한 롬 7:25 에서는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고 탄식했던 것입니다.
5) 그래서 요한 사도는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거하여야 한다고 말했는데. 요한일서 2:3 에서 크리스천들은 “그리스도를 안다”라고 말하고 있고, 2:5 절에서는 우리가 “그 안에 있다”고도 말하고, 2:6 에서는 우리가 “그 안에서 산다”라고도 하며, 3:6에서는 우리가 “그 안에 거한다”라고도 했는데, 여기 이 말씀들을 보면, 그리스도를 안다는 것은 그와 함께 하는 것이며 또 우리가 그 안에 거하면서 그와 함께 사는 것을 의미하는데, 2:6 말씀 즉 “그의 안에 산다고 하는 자는 그가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할지니라”는 말씀에 의하면, 그와 함께 사는 자는 또한 그리스도가 행하시는 데로 행하는 사람들을 의미하는데, 3:10 말씀에 의하면 그와 같이 행한다는 것은 의를 행하며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하는 것임을 알 수 있으며, 그리고 3:9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그도 범죄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났음이라”는 말씀과 5:1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니 또한 낳으신 이를 사랑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자를 사랑하느니라”는 말씀을 보면, 의를 행하며 형제를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께로 부터 난 자들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바, 결국 하나님께로서 난 자는 의를 행하며 형제를 사랑하는데 그러한 삶을 바로 하나님을 아는 삶,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는 삶,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삶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Gary Derickson 은 그의 요한일서 주석서에서 "거하는 것은 습관적인 순종을 포함합니다.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삶을 살았던 것처럼 사는 삶입니다. 신자의 삶에서 습관적인 순종이 자동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의무입니다”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6) 그리고 하나님께로 부터 난 자는 의를 행하고 사랑하게 되는 이유를 요한은 하나님의 속성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즉, 1:5 말씀에서 “하나님은 빛”이시기에, 하나님께로 부터 난 크리스천들은 7절 말씀처럼 하나님께서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게 된다 즉 의를 행하게 되며 또한 4:16 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의 안에 거하시느니라”는 말씀처럼 사랑이신 하나님께로 부터 난 크리스천들은 사랑하며 살게 된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 하옵기는 여기 있는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의 씨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부터 났음을 깨닫고, 그의 부르심의 뜻을 쫓아 빛 되시고 사랑이신 우리 안에 거하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이 세상에서 의와 사랑으로 행함으로 하나님의 자녀들이 됨을 증거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소그룹 모임 가이드 및 예제 질문
Q1 오늘 말씀을 읽어 보면, 우리가 비록 중생하였다 하더라도 육신 즉 죄성은 여전히 우리 안에 남아 우리가 때때로 죄에 빠지게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도르트 신경에 의하면 우리는 그런 연약함으로 말미암아 더욱 겸손해 지게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혹 이런 연약함으로 말미암아 넘어지고 또 그로 말미암아 깨닫게 된 사례가 있으면 각자의 생각과 경험을 팀원들과 나누면서 은혜 나눌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Q2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는 그렇게 연약함이 있기에 우리는 더욱 그리스도 안에 거하여야 한다고 하는데, 과연 그리스도 안에 거한다는 의미가 무엇인지 자기의 언어로 한번 정의해 보고 서로의 생각과 경험을 나누며 서로 은혜 나눌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축복합니다.
기도 노트
( 오늘 말씀중 깨달아진 하나님의 성품 ) 하나님 아버지!
( 지난 한주간 혹은 오늘 하루 동안 감사한 일들 ) 해 주심에
찬송과 감사와 영광을 주님께 올려 드립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 깨닫게 해주신 죄 )를 깨닫게 해주셨음에 감사하며,
회개할 때에 용서해 주옵시고 이제 ( 새 삶 )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 주옵소서
특별히 오늘 말씀을 통하여 ( 새롭게 배운 점 ) 을 가르쳐 주심에 감사하며
( 삶의 도전 ) 살 수 있도록 은혜를 더하여 주옵소서
( 주님의 성품 ) 우리 주님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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