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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24-4 사9 가이드

이사야 9:1-7, 핵심 구절 사 9:6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참 예배자를 찾으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의 예배를 통해 올려 드리는 모든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기쁘게 받으실 줄 믿습니다.

우리는 이번 주 포함 4주 동안 대강절을 맞아, 이사야 서를 묵상하면서, 보냈는데, 이사야 64장을 통해서는 우리의 연약함을 깨닫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했고, 이사야 40장 말씀을 통해서는, 그러한 우리 인간의 비참함을 해결하시기 위해 여호와께서 친히 오셔서 구해 주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으로 위로를 받았으며, 또한 이사야 61장 말씀을 통해서, 메시아가 영광으로 임하셔서, 가난한 자들에게 복음의 소식을 전해 주실 것이라는 예언의 말씀을 살펴 보았는데, 이번 주에는 이사야 9장 말씀을 통해 메시아의 사역과 이름에 대해 살펴 보면서, 은혜 나눌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1) 이사야서의 주제는 지난 몇주에 걸쳐 살펴 본 것처럼,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에게 그들 가운데 거하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데로 의롭고 정의롭게 살아갈 것을 도전하는데, 여기서, 공의는 히브리어 짜디크에서 파생한 짜다카흐로 영어로는 Righteousness 이며, 정의는 히브리어로는 미쉬파트로 영어로는 justice 인데, 공의는 규범적 의와 관계적 의 두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즉 의 혹은 공의로 번역되는 짜디크 혹은 짜다카흐라는 히브리어는 하나님의 법 즉 십계명이나 사회의 도덕적 규범을 지키는 것이나, 하나님과 혹은 사람들과 바른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을 말 하는데, 이 단어를 하나님께 대하여 쓸 때에는 하나님의 거룩하심 혹은 하나님께서 그의 언약에 신실하심을 나타낼 때 쓰이게 됩니다. 반면에 정의로 번역되는 미쉬파트는 인류의 평등을 촉진하는 신성하고 의로운 행동으로 의로운 자과 억압받는 자를 높이고 불의하고 억압하는 자를 낮추는 것과 관련하여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에게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바탕으로 하나님의 법대로 살며, 정의 즉 의로운 자는 세우고 불의한 자를 벌하는 사회적 정의를 실현하며 살아가도록 요청하고 있는 내용이 이사야서의 주제인 것입니다.

2) 오늘 본문 이사야서 9장에서는 메시아가 오시면 그렇게 공의와 정의로 다스려 지는 그의 나라를 세우실 것이라고 말씀하시고 있는데, 그는 한 아들을 주신 바 되어 한 아기로 나실 것이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는데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시요 평강의 왕이라 할 것이라고 말씀하시고 있는데,

3) 먼저, 환난과 흑암과 고통의 땅에 주님께서 메시아로 오심으로 이제 영화로운 땅이 되고 또한 그곳에 빛이 비치게 되었는데, 오늘 본문 6절에서 그분은 한 아기로 나셨고 또 한 아들을 우리에게 보내 주신 바 되었다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여기서, 한 아들을 우리 에게 주셨다는 말은 하나님의 독생하시는 아들 예수를 이 땅에 보내 주셨다는 말씀인데, 하나님의 제2의 위격이신 예수님이 이 땅에 임하시는 방법이 아주 독특합니다. 즉, 보통 세상에서 위대한 왕이 탄생하는 것처럼, 군대와 함께 위대한 왕으로 이 땅에 강림하셔서, 악을 멸하시는 방식이 아니라, 한 아기로 이 땅에 나셨다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이는 그가 겸손히 인간의 육신을 입고 아기로 태어 나셨다는 뜻인데, 그 이유는 롬 8장 3절과 4절에서 말씀하시는 것처럼,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셔서 그 육신에 죄를 정하사 십자가에 못 박아 죽게 하심으로 우리 인간의 죄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하신 것이었는데, 이것을 고전 1:18 에서는 십자가의 도라고 말하면서, 이 십자가가가 바로 하나님의 능력이요 지혜인데, 고전 1장 30절에서는 이 하나님의 지혜가 바로 우리에게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을 가져다 준다고 하면서 사단과 악과 죄와 죽음의 폭거를 오히려 십자가의 도로 이기시고 마침내 우리들에게 하나님의 구원을 가져다 주셨는데 이를 고전 1장 25절에서는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함”이라고 노래하고 있는 것입니다.

4) 그리고 이렇게 십자가의 도로 승리를 이루신 그리스도께서는 부활 승천하셔서 하나님 우편에 앉으신 후 약속하신 성령을 보내 그의 교회를 탄생시키시고 그와 함께 그의 나라를 도래케 하시고 통치하시기 시작하셨는데, 이것을 정사를 메었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5) 그리고 그렇게 주님께서 다스리시는 나라에서는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게 될 것이며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들에게 이제 빛이 비추게 될 것인데, 그들이 무겁게 멘 멍에와 그들의 어깨의 채찍과 그 압제자의 막대기를 주께서 꺽으실 뿐 만 아니라 주께서 이 나라를 창성하게 하시며 그 즐거움을 더하셨으므로 그의 백성들이 주 앞에서 즐거워하게 될 것인데, 이것이 바로 주님의 나라의 공의와 정의라고 말씀하시고 있는 것이며 그래서 주님께서는 마 11장 28절에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말씀하셨던 이유인 것입니다.

6) 그런데 이러한 놀라운 일을 이루실 메시아는 네가지 이름이 있는데, 첫째는 기묘자라 모사라는 이름입니다. 이 단어는 두 단어가 아니라 한 단어 즉 “기묘한 지혜가 있으신 분”이란 말로 이 지혜는 전술한 바와 같이 십자가의 도로, 빌 2장 6절에서 8절에서는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고 하며, 그의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죄문제를 해결하셨을 뿐 만 아니라 이어진 빌 9절에서 11절 말씀에서는 이를 통하여,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는데, 우리가 그 기묘한 지혜에 참여하여, 죄 용서를 받았을 뿐 만 아니라 그와 함께 그의 지상 통치에 참여하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게 된 것인데, 이러한 그의 지혜를 바울은 로마서 11장 33절에서 “깊도다 하나님의 2)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7) 그리고 두번째는 그의 이름을 전능하신 하나님이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이는 그의 신성을 말씀 하시는데, 결국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또한 신성에 있어서는 하나님과 한 분이시라는 말씀으로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요 10장 30절에서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고 말씀하신 것이며 또한 도마는 요 20장 28절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뵙고 부활하신 주님을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라고 고백했던 것입니다.

8) 그리고 세번째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은 또한 영존하시는 아버지이신데, 신성에 있어 하나님과 하나가 되신 예수님은 영원에 거하시면서 또한 만물의 창조주가 되시는 분이란 말씀으로 그래서 골 1장 16절에서는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다고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이 부분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해야 할 부분이 있는데, 우리가 일반적으로 창조와 섭리를 성부 하나님께, 구원을 성자 하나님께 그리고 성화를 성령 하나님께 돌리지만, 세 분 모도 창조와 섭리, 구원, 그리고 성화 사역에 관여하고 있다는 점을 이해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9) 그리고 마지막으로 오늘 본문에서는 메시아를 평강의 왕으로 고백하고 있는데, 이 말씀은 우리의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원수되었던 우리가 이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함을 누리게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10)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가 함께 생각해 보며 은혜 나누기를 원하는 데, 첫째, 오늘 본문 1절에 보면, 스블론 땅과 납달리 땅이 멸시를 당하게 하셨더니 후에는 해변 길과 요단 저쪽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신다고 하셨는데, 스블론 땅과 납달리 땅은 스크린에서 보시는 것처럼, 스블론 지파와 납달리 지파가 차지한 땅으로 갈릴리 호수의 서쪽 편에서 지중해 사이에 있는 땅으로 스블론 땅에는 나사렛이 위치해 있고 납달리 땅은 갈릴리 호수에 인접해 있는데, 나사렛은 예수님께서 베들레헴에서 나셨다가 헤롯이 그를 죽이려 하자 애굽으로 피신해 있다가 다시 가나안 땅으로 돌아와 나사렛에 정착하여 자라나셨던 곳이고 예수님께서 물을 포도주로 변하게 하신 가나 또한 스블론 지역에 위치해 있으며 갈릴리 지방은 예수님께서 그의 공생애 기간의 대부분을 보내셨던 곳으로 오늘 본문에서 갈릴리 지압을 이방이라고 불렀던 것처럼, 두 지방은 역사적인 여러 이유로 멸시를 받았던 곳이었는데, 이 곳에 주님께서 오심으로 영화롭게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들의 삶에도 주님께서 찾아 오시면, 어떤 상황에도 영화로운 삶으로 변화될 수 있다는 소망의 말씀인 줄로 믿습니다. 두번째로 생각해 보기를 원하는 것은 그가 정사를 메었다고 말씀하고 있는 부분인데, 그런데, 이 다스림의 주제는 실은 창조로부터 새 하늘 새 땅에 이르기 까지 면면히 이어지는 모티브로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 하실 때에 마지막 여섯째 날에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인간을 창조하시고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고 땅을 정복하라고 하시며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고 말씀하셨는데, 이 문화 명령은 노아의 홍수 후에도 다시 재확인해 주셨을 뿐 만 아니라 삼하 7장16절에서는 영원한 다윗 왕국에 대해 예언해 주셨고 그 말씀대로 마침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 나라를 도래케 하셔서, 그의 천상 통치와 성령과 교회를 통한 지상 통치로 계속 다스리시다가 마지막 날에 재림하시면, 이제 그의 성도들과 더불어 영원히 왕노릇 하실 것인데, 심지어 이 다스림의 주제는 주께서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에도 “나라가 임하옵시기”를 기도하라고 말씀하신 것으로, 우리가 이 주님의 다스림에 지금도 동참하고 있는 바, 늘 그 정체성을 잊지 말고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주님께서 평강의 왕으로 오셨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면서, 우리의 평강을 방해하는 것이 무엇이 있는지 그리고 그 해결책에 대해서 성경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살펴 보면 좋겠는데요. 먼저, (1) 우리는 근본적인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의 화평함을 잃어 버렸으며, (2) 우리들의 죄로 말미암아 이 세상에 들어온 환난들로 말미암아 우리가 고통 받게 되었으며, (3) 우리가 죄로 인하여 땅이 저주를 받아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냄으로 먹고 살기 위해 수고함으로 말미암아 근심하게 되었으며, (4) 또 우리에게 주신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이 하나님과 멀어짐으로 말미암아 영원히 채워지지 않음으로 인하여, 우리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근심과 두려움으로 부터 말미암는 불안들로 가득하며, (5) 또 서로 도우며 사랑하며 사는 관계가 죄 때문에 파괴됨으로 불편한 경쟁의 관계가 되어 버렸으며, (6) 또 세상이 우리를 끊임없이 부귀와 권세를 쫓게 만듦으로 인한 조바심과 욕심들로 가득하게 되었으며, (7) 그리고 악한 영들이 우리의 끝없이 유혹하여 넘어지게 만듦에서 오는 것들로 말미암아, 우리가 끝 없이 몰아치는 파도 속에서 허우적대게 되었는데, 이러한 모든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 우리 주님께서는 이 땅에 평강의 왕으로 찾아 오신 것인데, 그래서 골 1:20 에서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고 말씀하셨던 것이며 요 14:27 에서는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리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고 하셨으며 심지어 요 16: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고 하시며, 시 107:30 에서는 “그들이 평온함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중에 여호와께서 그들이 바라는 항구로 인도하시겠다”고 약속하셨던 것이며 그래서 예레미야 29:11절에서는 이러한 평안이 바로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의 마지막 구절인 계시록 22장 20절에서 주님께서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고 말씀하실 때에, 우리는 모두 “아멘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하면서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지어다 아멘”하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하옵기는 우리 함께 대강절 네번째 주일이자 성탄절 하루 전날인 오늘 주일 날에 “주님 어서 와 주십시오”라고 기도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소그룹 모임 가이드 및 예제 질문

Q1 오늘 본문에서는 주님께서 평강의 왕으로 오셨다고 말씀하시는데, 왜 이렇게 아직 이 세상에는 전쟁과 기근 등이 끊이지 않는데, 왜 그럴까요? 한번 생각해 보시고, 서로의 생각을 나눌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Q2 그리고 두번째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육체의 모양을 입으시고 그 육체에 죄를 짊어지시기 위해, 아기로 태어 나셔야 하셨는데, 이는 또한 죄와 죽음과 사탄의 폭거를 그 스스로 죄값을 지고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이기시는 하나님의 지혜요 능력으로, 그래서 평강의 왕이신 아기 예수로 오셨던 것입니다. 폭력에 대한 참 승리는 같은 폭력이 아니라 결국 희생과 사랑으로 이기는 것인 것을 가르쳐 주는 것 같습니다. 잠시 시간을 내서 주님께서는 왜 그런 방법에 순종해야 하셨는지 생각해 보시고 서로의 생각을 나누면서 은혜 받으실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축복합니다.

기도 노트

( 오늘 말씀중 깨달아진 하나님의 성품 ) 하나님 아버지!

( 지난 한주간 혹은 오늘 하루 동안 감사한 일들 ) 해 주심에

찬송과 감사와 영광을 주님께 올려 드립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 깨닫게 해주신 죄 )를 깨닫게 해주셨음에 감사하며,

회개할 때에 용서해 주옵시고 이제 ( 새 삶 )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 주옵소서

특별히 오늘 말씀을 통하여 ( 새롭게 배운 점 ) 을 가르쳐 주심에 감사하며

( 삶의 도전 ) 살 수 있도록 은혜를 더하여 주옵소서

( 주님의 성품 ) 우리 주님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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