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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24-18 눅24 가이드

눅24:1-9,44-49, 핵심 구절 눅24:47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참 예배자를 찾으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의 예배를 통해 올려 드리는 모든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기쁘게 받으실 줄 믿습니다.

오늘 부활 주일을 맞아 여러분 모두에게 부활하신 주님의 부활의 능력과 기쁨과 은혜가 가득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우리는 지난 주에 주님의 고난과 죽으심의 참의미에 대해서 살펴 보았는데, 이번 부활 주일에는 주님의 부활의 참의미와 능력에 대해 살펴 보면서, 함께 은혜 받는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1)     이번 주에 우리는 고난 주간으로 지켰는데, 이 고난 주간 주님께서는 주일 날 겸손하게 나귀를 타시고 뭇 백성들이 깔아 놓은 종려 나무잎 위을 밟고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신 후 월요일에는 결실을 맺지 못한 이스라엘을 나무라시듯 열매 맺지 못한 무화과 나무를 저주 하시고 성전에 들어가 상인들을 내 쫓으시며 성전을 정결하게 하셨고 화요일에는 성전에서 가르치시며 바리새인들의 외식을 꾸짖으시고 사두개인들과 부활에 대해 논쟁을 하셨으며, 또 올리브 산에 올라 마지막 날에 대한 설교를 하셨습니다. 그리고 수요일에는 기도하시면서 보내시고 목요일에는 주님의 제자들과 유월절 식사를 하신 후 겟세마네에서 밤새 기도하시다가 금요일 새벽에 붙잡혀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신 후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는데,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주님의 주검을 무덤에 장사하였고 토요일에는 무덤에 계셨다가 주일 새벽에 예언 하신 데로 부활하셨습니다.

2)     그런데 주님의 부활은 단순히 주님께서 다시 살아나셔서 영육이 다시 결합하는 것 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주님의 부활은 그의 인성이 영육 면에서 원초적인 능력과 완전성을 회복하고 더욱 높이 승화되었는데, 예를 들어 요20:19에 보면 마가의 다락방에 문을 닫고 숨어 있는 제자들에게 갑자기 나타나시기도 하고 눅 24:16에서는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이 알아 보지 못하기도 하는 등 그의 부활하신 몸은 지금 우리의 몸과 달리, 고전 15장에서 말하는 것처럼 하늘에 속한 형체로, 더 이상 썩지 않는 몸이요, 영광스런 몸이요, 강하며 신령한 영의 몸으로 부활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부활은 루이 벌코프가 이야기 한 것처럼 세가지 중요한 신학적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a) 첫째는 최후의 대적인 죽음이 정복되고 죄값이 지불되었으며 또 생명의 약속이 충족되었다는 천부의 선언이요 (b) 둘째로는 크리스천들의 칭의, 중생 그리고 미래의 부활을 상징할 뿐 만 아니라 (c) 또 크리스천들이 받게 될 칭의와 중생 그리고 최후의 부활과 도구적으로 즉 주님의 부활의 권능이 우리 죽을 몸도 다시 살리시게 되는 것입니다.

3)     그래서 존 칼빈은 말하기를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해 죄와 사망이 소멸되었고 그리고 그분의 부활을 통해 의가 회복되고 생명이 일으킴을 받게 되었습니다”라고 말했던 것인데, 이는 첫 인간 아담과 이브가 하나님께서 절대 먹지말라고 하신 그러나 만일 먹으면 반드시 죽을 것이라는 선악과를 따 먹음으로 인간에게 부과된 죄 값 즉 살면서 당하게 될 저주와 고통들 그리고 육체적 죽음과 영적 죽음의 고통과 함께 본성이 전적으로 부패하고 마침내 인간이 비참한 상태로 전락하여 하나님의 진노인 영원한 지옥불의 고통과 또한 이러한 비참한 상태로 부터 자기의 힘으로는 헤어날 수 없는 전적으로 무능한 상태로 빠져 들고 말았는데,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셨던 것입니다.

4)     즉 그리스도의 죽으심은 모든 삶과 죽음의 고통에 대한 죄값을 치르신 것이었으며 그리스도의 부활은 인간 본성의 부패 문제를 해결하신 것으로써 우리 인간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의 죽으심 안에 있는 은택들을 전가 받아, 하나님의 진노를 면하고 속죄함을 받아 하나님과 다시 화해를 이루어 그의 자녀들이 되는 것이며 또한 주님의 부활 안에 있는 은혜로 말미암아 중생 함으로 우리 본성의 전적인 부패 문제가 해결 되는데, 성령님께서는 이 과정에서 죄와 죽음의 쇠사슬에 매여 있는 옛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고 우리 안에 새로운 한 정결한 영 즉 새 사람을 창조하시고, 주 안에서 자라나게 하시며, 그리고 우리의 몸도 마지막 날에는 주님의 몸과 같이 신령한 몸으로 부활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찰스 스펄전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이 다시 태어날 때, 그들은 옛 아담 즉 옛 사람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바, 축복의 날인 것입니다. 그리고 천국에서 우리가 누리는 행복들 중에 가장 중요한 한가지는 바로 죄로 기울어지는 경향으로부터의 자유, 즉 우리의 비참함이자 슬픔이었던 옛 본성이 완전히 죽는 것입니다”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5)     그리고, 이렇게 우리가 주님의 부활의 능력은 우리의 본성의 부패 문제를 해결할 뿐 만 아니라 점점 우리의 새 사람이 영원한 영광을 입어 가게 만드는데, 그런데 주님의 부활은 또 다른 곳으로 우리를 인도합니다. 즉 주님의 부활 사건이 기록된 사복음서의 마지막장인 마태 복음 28장 18절과 마가복음 16장 15절, 누가복음 24장 47절 그리고 요한 복음 20장 21절을 보면 이들 사복음서 모두에서 주님의 부활 사건은 주님의 대위임령으로 연결되면서 복음서가 마무리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주님의 부활은 결국 제자들의 복음 전파 사명으로 연결되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주님의 부활이 복음 전파의 사명으로 연결되는 데는 이유가 있는데, 그것은 빌 3:10 에서 말씀하는 것처럼 부활에는 부활의 능력이 함께 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즉 우리가 부활의 능력을 입게 되면 우리의 삶은 새 생명으로 넘쳐 나게 되며, 우리의 삶의 목적과 사명을 발견하게 될 뿐 만 아니라 또 그 사명을 감당하도록 해 주기 때문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레온 모리스가 말한 것처럼 “그리스도를 죽음에서 다시 살리신 그 권능이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들 안에서도 역사"하면서 그 부활이 그들 안에서 지금도 역사하게 함으로, 먼저 그 부활의 능력은 사람들을 다시 살리고 변화하게 할 뿐 만 아니라, 그 부활의 권능을 맛보고 체험한 사람들이 십자가의 죽음으로 인간의 모든 죄값을 치르시고 능력으로 부활하신 후 온 세상의 왕으로 즉위하셔서, 하나님으로 부터 받으신 아들의 나라를 통치하고 계신 살아 계신 주님을 증거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6)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가 함께 생각해 보며 은혜 나누기를 원하는 데, 먼저 주님의 부활로 말미암은 은택을 우리가 어떻게 받을 수 있는가에 대한 것입니다.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해 이루어 놓으신 모든 은택들은 성령님께서 우리를 그리스도와 연합하게 하심으로, 우리가 값없이 받을 수 있게 되는데, 이런 그리스도와의 연합에 대한 상징과 보증이 바로 물 세례인 것입니다. 그런데, 두번째로 이렇게 우리가 죄의 본 줄기로 부터 떨어져 나와 그리스도에게 접붙임 즉 연합되는 과정에 대해서  좀 더 깊이 살펴 보기를 원하는데, 청교도 신학자 토마스 보스턴은 놀라운 통찰력을 우리에게 제공해 주고 있는데, 보스턴은 성령님께서 신자의 마음에 찾아 오시면, 그의 마음에 크게 네 단계를 통해서 옛 본성의 줄기로 부터 그를 잘라내고 그리스도와 연합 즉 접붙임을 하시는데 첫번째 단계는 성령님께서 빛의 광채를 어두운 영혼 안에 던지셔서 이제껏 불경했던 외적인 삶의 길들과 죄들을 지적하고 그가 그러한 죄들을 더 이상 짓지 않도록 힘쓰게 만드시는데, 이렇게 율법적으로 애를 쓰며 거룩한 삶을 살려고 하는 단계를 표면적 종교의 단계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두번째 단계는 이제 그의 내면에 거하는 교만과 정욕과 같은 내적인 죄들을 일깨워 그러한 죄들을 없애려고 노력하게 만드시는데 이 단계를 내면적 종교의 단계라 하였습니다. 그런데, 첫번째와 두번째 단계를 거치면서, 자기의 힘으로는 이렇게 외적인 죄와 내적인 죄성을 극복할 수 없음을 깨닫게 되면, 이제는 그리스도의 은혜를 의지하는 단계로 나아가는데, 처음에는 차용, 흥정, 구걸의 자세를 취하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즉 자기의 노력으로는 부족한 부분에 대해서만 주님의 은혜를 빌리려는 차용의 자세나 자신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 해결해 주시면 믿음 생활을 제대로 하겠다며 주님과 개인적인 언약을 맺으려는 흥정의 자세를 취하거나 혹은 이것도 안되면 주님의 용서와 자비를 구하는 구걸의 자세를 취하는데, 이 세번째 단계에서도 아직 내면적으로는 자기 자신에 대해 완전히 낮아지지 않은 상태로 이 단계에 있는 사람을 보스턴은 교만한 거지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자기 자신을 그리스도께 나아가기에 더욱 합당하도록 만들려고 노력하다가 그것이 불가능한 것을 깨닫고는 이제 그 자신에게 두었던 소망도 끊어지고 절망하여, 이제는 자기 모습 있는 그대로 그리스도께로 나갈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이처럼 스스로 그의 손을 하늘에 닿게 할 수 없고, 또한 하늘에 계신 그리스도를 모셔 내릴 수도 없으며, 또한 본성적인 믿음과 노력으로는 자신을 도울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어, 이제 더 이상 자기의 옛 아담 즉 죄의 본성에 매달리지 않게 되어 마침내 떨어져 나가게 되면서, 마치 하나님의 진노의 홍수에 쓸려 갈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되면서 그는 강둑에서 자라고 있는 생명나무의 잔가지를 잡으려 하지만 그것 조차 잡을 수 있을 만큼 손을 뻗칠 수가 없어 괴로워하는 단계에 이르면, 그때서야 그는 주님의 은혜로 위로 사로 잡혀 올라가 믿음의 영을 주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 곧 참 포도나무에 접붙임을 받게 된다고 말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죄로 인하여 부패된 본성이 죽임을 당하고 자연적인 줄기인 옛 아담 즉 옛 사람에서 끊어져 참 포도 나무 즉 참 생명이신 그리스도에게 접붙임이 되기 까지의 과정은 오랜 시간이 걸리고 또한 신자가 심지어 절망마저도 경험하게 되는 과정이라고 말하였는데, 그러나 우리가 이런 과정 속에서도 소망을 갖을 수 있는 것은 이러한 모든 과정에서 우리 주님께서 우리를 이끄시고 또 견인하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가 이런 놀라운 은혜의 비밀이 숨어 있는 부활의 능력을 우리가 맛보고 경험하고 또 누리며 그 능력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고민해 보기를 원합니다. 때때로 어떤 이들을 만나보면, 부활의 주님으로 부터 오는 참 기쁨! 그 기쁨을 직접 느끼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친구들이나 가족들 혹은 교회 공동체나 삶의 다른 어떤 것들을 통해서 주시는 기쁨으로 그것을 맛보려 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주님이 주시는 기쁨은 그러한 기쁨들을 넘어서는 것으로 세상 어느 것과도 도무지 비교할 수 없는 참 기쁨입니다. 그래서 그 지극한 기쁨을 직접 맛보지 않고는 부활의 기쁨을 감히 이야기할 수 없는 데, 소망 하옵기는 여기 계시는 우리들 모두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그 부활의 권능과 기쁨을 맛보아 알기를 소망합니다. 그래서 NT 라이트가 "에른스트 트릴취는 우리는 우리의 경험 안에서 어느 정도 유사한 점이 있는 것들에 대해서만 말하거나 글로 쓸 수 있다고 한 말을 인용하며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삶에서 부활을 경험하지 않으면 우리는 부활에 관해 말할 수 없습니다"라고 말했는데 그 이유는 우리가 부활과 그 기쁨과 능력을 경험하고 나서야 비로소 삶의 변화가 시작되며 또한 주님 주시는 사명도 기쁨으로 감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기도하옵기는 우리들 모두가 이런 부활의 기쁨과 능력을 체험하고 맛보고 참 부활의 기쁨 가운데 살아가며 또한 이 능력있는 부활을 온 세상에 전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소그룹 모임 가이드 및 예제 질문

Q1 레온 모리스가 말한 것처럼 부활의 능력은 지금도 그에게 속한 크리스천들의 안에서 살아 역사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서, 과연 중생케 하시고 성화를 이루어 가시는 주님의 부활의 능력이 우리 안에 역사하고 있는지 또 어떤 방식으로 역사하고 있는지 살펴 보고, 서로의 경험과 생각을 나누면서 서로 은혜 받는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Q2 그리고 우리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통해서,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한 모든 은택들을 누리게 되는데, 성령님께서 찾아 오셔서 우리를 살리시고 믿음을 통해서 그리스도와 연합시키셨지만, 이 그리스도와의 연합이 체화되고 우리의 삶에 완전히 작동하기 까지는 여러가지 과정을 거쳐야 함을 알았습니다. 혹 여러분 들의 삶을 돌아보면서, 나는 어떤 과정에 있고 어떤 부분을 가지고 죄와 싸우고 있는지 생각해 보고 서로의 생각과 경험과 의견을 나누면서 은혜 받는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축복합니다.

기도 노트

(  오늘 말씀중 깨달아진 하나님의 성품  ) 하나님 아버지!

(  지난 한주간 혹은 오늘 하루 동안 감사한 일들 ) 해 주심에

찬송과 감사와 영광을 주님께 올려 드립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        깨닫게 해주신 죄          )를 깨닫게 해주셨음에 감사하며,

회개할 때에 용서해 주옵시고 이제 (  새 삶  )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 주옵소서

특별히 오늘 말씀을 통하여 ( 새롭게 배운 점 ) 을 가르쳐 주심에 감사하며

(    삶의 도전     ) 살 수 있도록 은혜를 더하여 주옵소서

( 주님의 성품 ) 우리 주님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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