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26:36-46, 핵심 구절 마 26:39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참 예배자를 찾으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의 예배를 통해 올려 드리는 모든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기쁘게 받으실 줄 믿습니다.
오늘 고난주간이 시작하는 사순절 여섯번째 주일을 맞아, 여러분 모두에게 우리 주님의 사랑과 은혜와 축복이 가득하시기를 기도하며, 이번 주에는 특별히 주님의 고난의 의미에 대해서 함께 묵상해 보며 은혜 나눌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1) 크리스토퍼 라이트라는 구약 신학자는 성경을 창조 타락 약속 혹은 언약 복음 선교 새창조라는 대서사로 이해하면서, 하나님의 창조 이후 첫 인류인 아담과 이브가 죄를 짓고 그에 따라 이 세상이 부패하게 되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들을 구속하시고 또 인간과 모든 피조 세계를 다시 회복하시고 마침내 재창조하신 새 하늘 새 땅에 강림하셔서 영원히 그의 백성들과 함께 거하시는 대서사를 이루어 가시는 것을 하나님의 선교라고 말하였는데,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도 실은 이 하나님의 선교를 감당 하시기 위함 이었습니다.
2) 무슨 말인가 하면,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제6항에서 말하는 것처럼, 하나님은 인간을 선하게 하나님의 형상대로 즉, 참된 의와 거룩함으로 창조하신 후 인간들이 창조주 하나님을 바르게 알고 온 마음을 다하여 사랑하며 하나님의 영광과 존귀를 위하여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행복하게 살도록 하셨는데
3) 그런데, 인간의 첫 조상인 아담과 이브가 하나님께서 절대적으로 금하시면서 이 열매를 따먹으면 정녕 죽을 것이라고 하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는 죄를 범하였고, 이에 인간은 죽음의 형벌 즉 육신의 죽음과 영의 죽음과 영원한 죽음에 이르는 벌을 받게 되었을 뿐 만 아니라 또 도르트 신경에서 말하는 것처럼 인간의 지정의 모든 영역이 부패하게 되었는데, 창조주와 영적인 것에 대한 참되고 순전한 지식으로 가득했던 지성에는 무지와 왜곡된 판단과 불신앙과 교만이 가득 차게 되었고 의로웠던 마음과 의지에는 사악함과 하나님께 대한 반항심과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으려는 강팍함과 불순종으로 가득 차게 되었으며, 순수했던 감정에는 불순함으로 가득 차게 되고 말았습니다. (도르트 신경 세번째와 네번째 주요신경, 제1 &. 2항) 또한 이에 더하여 인간의 모든 관계는 파괴되고 말았는데, 하나님과 타인과의 관계 뿐 만 아니라, 피조물 들과 심지어 자기 자신과도 평안을 누리지 못하게 되었으며 심지어 인간의 죄로 말미암아, 피조물들 조차도 저주를 받아 (창3:17) 썩어짐의 종 노릇 하면서 탄식하고 고통받게 되었습니다. (롬8:21)
4)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죄와 죄의 결과들을 해결하기 위해 이 땅에 오셨는데,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는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내려오셔서, 인간의 모든 죄와 그 죄책을 그의 몸에 지시고, 십자가에 못박혀 대속의 죽음을 죽으심으로, 죄의 형벌이었던 육신의 죽음과 영의 죽음 그리고 영원한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셨고 또한 죄로 말미암아 입게 된 인간의 전적 부패성을 치유하는 길 즉 중생과 부활의 길을 여셨을 뿐 만 아니라 또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과 타인과 피조물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더 나아가 선악과를 따 먹음으로 이제 인간들이 자기 뜻대로 자기가 원하는데로 살아가는 죄를 돌이켜, 하나님의 나라 즉 하나님의 통치 아래 살아가는 길을 여셨는데
5) 이러한 길을 여시기 위해 예수님께서는 마27:50 말씀처럼 십자가에서의 육체적인 죽음의 고통 뿐 만 아니라, 마27:26 에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는 그의 부르짖음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하나님과의 교제가 단절되는 영적 죽음의 고통과 또 우리가 사도신경에서 “음부에 내리셨다"고 고백하는 것처럼, 지옥 불에서 영원히 고통받는 영원한 죽음의 고통을 당하셨고 또 주님은 그의 일생을 통해 히4:15 말씀처럼 인간에게 부과된 모든 삶의 저주와 고통도 모두 겪으심으로 사53:10 에서 "그가 상함을 받고 질고를 당하심으로 그의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실 것"이라고 예언했던 것과 같이 히 9:12 말씀처럼,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셨습니다. 그래서 요 1:29 에서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보고는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했던 것입니다.
6) 그리고, 주님은 인간의 조상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따먹고 선과 악을 자기가 결정하며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하며 살게 된 그 죄성을 치유하는 길은 오늘 본문에 나오는 겟세마네의 기도를 통해 여셨습니다. 물론 어떤 이들은 인간의 죄를 대신 짊어지신 대속의 죽음은 하나님께로부터 철저히 버림을 당하는 길이었기에 이 하나님으로부터의 소외와 단절에 대한 고통은 죽기 보다 힘들었기에 겟세마네에서 주님은 그렇게 처절한 기도를 하셔야 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조금 더 생각해 보면, 주님께서 십자가 상에서 겪으셔야만 했던 고통은 우리가 조금 전에 살펴 본 것처럼,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무한한 크기의 고통이었고, 심지어 이 무한한 고통을 주님의 인성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기에, 그의 신성이 그 고통들을 감당할 수 있도록 그의 인성을 붙들어 주신 바, 주님께서 감당하신 고통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 고통이었고 그런 의미에서 주님께서는 겟세마네에서 죽을 만큼 근심하며 처절히 기도했을 법도 합니다. 그런데, 여기 주님의 기도에서 “나의 원”과 “아버지의 원”이 함께 언급되고 있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한 인간이 다른 사람을 위해 의롭게 죽는 것을 우리는 때때로 뉴스에서 접하지만, 그런 죽음은 의로운 일이고 또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죽음입니다. 그런데, 죄 없는 한 인간이 죄인 취급을 받아 죽어야 하고, 또 그 죽음은 사형수를 발가벗겨 인간적인 수치심과 조소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죽음이며, 또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고통을 받으며 죽어가야만 하는 죽음이라면 그것은 좀 다른 문제일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의 일평생을 순종으로 살아오셨던 주님조차 죽지 않을 방법이 있을까 라는 고민보다도 꼭 그런 죽음이어야만 하는가 라는 인간적인 고뇌와 생각이 들었을 법 한데, 그러한 인간적인 고민이 바로 겟세마네 동산에서 주님께서 경험하셨던 것인데, 우리는 그것이 바로 선악과를 따먹고 난 후 자기의 뜻대로 또 자기가 원하는 대로 사는 것이 이제 본성이 되어버린 우리 인간이 가진 죄성 일진대, 주님께서는 그 인간 의 죄성을 다시 돌이켜 아버지의 뜻에 복종시키셔야 했기에, 인성을 입으신 주님께서는 그 자신 스스로 죽을 만큼 고민하며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그렇게 처절하게 기도함으로 자기의 뜻을 하나님의 뜻에 복종시키셨고 우리가 또한 그 혜택을 입어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며 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7) 우리가 주님으로 부터 받는 은혜가 바로 이런 은혜들인데, 즉 주님께서 우리를 대신해 당하신 고통은 그 크기가 한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감당하실 수 없는 것이었기에 무한한 신성의 힘을 빌어서 까지 끝까지 감당하셨고 또 인간이 선악과를 따먹고 이제 선악 간에 자기의 뜻대로 판단하고 자기 힘으로 살아가는 그 죄성을 돌이켜 하나님의 통치에 복종시키기 위해 주님께서는 밤이 새도록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기 까지 처절하게 기도하셔야 만 했던 그런 은혜들인 것입니다. 그래서 사53:5절에서는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고 말씀하신 것이며 팀 켈러 또한 그의 책 “고통에 답하다”에서 “예수님께서 그의 모든 영광을 버리셨으므로 우리가 그 영광을 입을 수 있고, 그가 거절 당하심으로 우리가 진리에 접근할 수 있게 되었으며, 그가 결박당하고 못 박혔기 때문에 우리는 자유로워질 수 있었으며, 그가 버림 받았기에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 있게 되었다”고 말했던 것입니다.
8)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가 함께 생각해 보며 은혜 나누기를 원하는 데, 먼저 과연 어떻게 한 인간이 세상의 모든 죄 즉 그 무한한 크기의 죄값을 다 짊어질 수 있었는지 즉 유한한 인간의 몸을 입으신 예수님께서 어찌 그 무한한 하나님의 죄에 대한 진노를 다 지실 수가 있으셨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기를 원합니다.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제17문항에서는 이 질문에 답하기를 예수는 인성과 신성을 가지신 분이신 바, “그의 신적 능력으로 사람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를 몸소 감당하심으로 우리를 위하여 의와 생명을 성취하고 그것들을 우리에게 회복 시켜 주실 수 있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유한한 인간의 몸을 지니신 예수님께서 그 무한한 고통을 다 감당하실 수 있도록 신성이 그를 붙들고 계셨다는 말씀이니, 과연 주님께서 받으신 그 고통의 크기가 얼마나 큰지 도무지 짐작조차 할 수 없을 정도 입니다. 그래서 30대의 건장한 몸을 가지셨던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지 채 6시간만에 돌아가셨던 것이 아닌가 미루어 짐작해 보면서, 주님의 은혜가 얼마나 큰지 다시 한번 더 깊이 생각해 보고 감사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그리고 두번째로 우리가 생각해 보기를 원하는 것은 우리가 이런 주님의 은혜를 그냥 무임승차 하듯 가만히 앉아서 받기만 하면 되는가 하는 것인데 그 대답은 예 그리고 또 아니오 입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주님께서 이루신 그 은혜에 우리의 공로는 하나도 끼어들 수 없으며 또 막 16:16에서 믿고 세례를 받는 모든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라고 말씀하신 측면에서는 그 대답은 분명 “예”입니다. 그러나, 약 2:26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고 말한 점과 또 롬 8:17 에서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라고 말씀하신 측면에서는 “아니오”인데, 그래서, 골1:24에서는 우리가 주님의 남은 고난에 참여하여야 한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감당하는 고난은 고전 10:13 말씀처럼 우리가 감당할 만큼의 고난인 바 딤후 1:12 말씀처럼 우리가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복음과 함께 고난을 감당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주님께서 차마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하심으로 이루어 놓으신 모든 은택들을 값없이 받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또 팀 켈러는 조나단 하이트의 글을 인용하여, 우리는 고난을 통하여 “더욱 인내심을 키우고 고난에 함께 한 사람들과의 관계가 더욱 돈독해지며 또한 우리의 우선순위와 생각을 바꿀 수 있”게 된다고 하였고, 또 이어서 이렇게 “우리가 우리의 삶의 모든 고난을 통하여 성장할 수 있게 되는 것은, 주님께서 고난 받으신 것은 우리가 결코 고난을 겪지 않게 하기 위함이 아니라 우리가 고난을 당하는 과정을 통하여 우리가 그분과 같이 되도록 하기 위함”이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에서도 롬 1:5에서는 믿음은 순종을 낳는다고 말씀했던 것이며 또한 그래서 바울도 고후 4:17에서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한다고 말했던 것입니다. 기도 하옵기는 사순절 여섯번째 주 특히 고난 주간을 시작하면서, 빌3:10-14 말씀처럼 우리들 모두는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 받아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이미 얻지도 온전히 이루지도 못했지만, 오직 그리스도 예수께 붙잡힌 바 되어, 아직 우리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 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함께 손 잡고 달려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소그룹 모임 가이드 및 예제 질문
Q1 우리는 오늘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당하신 고난은 우리 유한한 인간이 감당하기에 불가능한 그런 고난이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과연 그러한 엄청난 고난을 견뎌 내셨던 우리를 각자를 향한 주님의 사랑은 과연 얼마나 큰지, 우리 함께 생각해 보고 서로의 의견과 생각을 나누면서 서로 은혜 받는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Q2 그리고 또한 우리는 주님의 놀라운 은혜를 받기 위해,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고난을 감당해야 한다고 하는데, 그러한 결단이 쉽지를 않은 것 같습니다. 각자 그 결단이 힘든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 서로 나누면서 은혜 받는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축복합니다.
기도 노트
( 오늘 말씀중 깨달아진 하나님의 성품 ) 하나님 아버지!
( 지난 한주간 혹은 오늘 하루 동안 감사한 일들 ) 해 주심에
찬송과 감사와 영광을 주님께 올려 드립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 깨닫게 해주신 죄 )를 깨닫게 해주셨음에 감사하며,
회개할 때에 용서해 주옵시고 이제 ( 새 삶 )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 주옵소서
특별히 오늘 말씀을 통하여 ( 새롭게 배운 점 ) 을 가르쳐 주심에 감사하며
( 삶의 도전 ) 살 수 있도록 은혜를 더하여 주옵소서
( 주님의 성품 ) 우리 주님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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