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8:18-27, 핵심 구절 마 8:22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참 예배자를 찾으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의 예배를 통해 올려 드리는 모든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기쁘게 받으실 줄 믿습니다.
오늘 사순절 다섯번째 주일을 맞아, 여러분 모두에게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와 축복이 가득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우리는 지난 몇 주에 걸쳐 마태 복음에 대해서 살펴보고 있는데, 특히 이번 주에는 마태복음 8장에 나오는 제자도에 대해 살펴 보면서, 예수님의 제자도에는 어떤 것이 요구되는지 알아 보고 함께 은혜 받는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1) 오늘 본문이 나오는 마태 복음은 지난 몇 주에 걸쳐 살펴 본 것처럼, 마태가 AD 75-80 년경 사이에 유대 개종자들로 구성된 기독교 공동체가 점점 유대 공동체로 부터 독립해 나가던 시기에 기록한 복음서로 AD 70년 예루살렘이 로마에 점령 당하고 성전이 파괴된 것을 지켜 본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주님의 교회 공동체에 대한 신학적 기틀을 마련하기 위해서 쓰여 졌는데, 교회 공동체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임재와 용서를 경험할 수 있는 곳이며, 그의 통치를 통하여 하나님의 뜻이 임하는 곳으로, 이 세상에서 “모든 민족을 제자 삼으라”는 주님의 대 위임령을 감당하는 선교와 세계 변혁의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2) 그런데, 이 지고한 사명을 감당할 사람들이 바로 주님의 제자들인데, 마태복음은 주님의 제자는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쫓는 사람들"이라고 하면서, 오늘 본문 8장 18절에서 22절에서는 그의 제자들이 쫓아야 하는 주님께서 가신 길은
첫째, 그의 머리조차 둘 곳이 없는 길이고
둘째, 또한 주님을 쫓는 것에 가장 높은 우선 순위를 두어야 하는 길”이라는 주님의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3) 그런데, 마태는 이렇게 고난을 각오하고 주님을 따르는 일에 최우선할 때 제자들이 직면하는 도전들과 어려움들에 대해서 우리들에게 또 다른 마음의 평안을 주고 있습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마태는 주님의 이 제자도에 대한 도전의 말씀에 이어 23-27절에서 “바람과 바다를 잔잔하게 하신 사건”을 배치하였기 때문입니다. 즉, 마가복음 4장 35-41절에서는 이 사건을 자연 마저도 순종케 하시는 주님의 신적 능력을 드러낸 사건으로 묘사하였지만, 마태는 이 사건을 주님께서 제자도에 대한 초청의 말씀을 하신 다음, 예수님께서 배에 먼저 오르시자 제자들이 따랐다고 묘사함으로, 이 사건을 제자도와 연관시켜 해석하면서, 이렇게 주님을 따르는 제자들에게는 거센 바람과 파도가 몰아치는 바다 즉 인생의 풍랑과 도전들 가운데에서도 주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시며, 그들에게 필요한 도움을 주신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으로 결국 바람과 바다의 풍랑과 같은 고난이 있다 하더라도 믿음을 가지라고 권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4) 이렇게 마태는 그의 복음서에서 제자들을 아직 믿음이 작은 자들이라고 부르면서, 제자들이 주님과 함께 하는 과정에서 점점 그들의 “믿음이 성장”해 나갔음을 드러내고 자 하였는데, 이 제자도에 있어서의 성장을 브루스(A B. Bruce)는 그의 책 《열두 제자의 훈련》에서 세 단계로 구분하여 제시하였습니다. 즉 첫번째 단계는 그들이 단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신자로서 때때로 예수님과 동행하는 단계에 있다가 (예를 들면 요 2:1, 12. 17, 22; 3"22: 4:1-27. 31, 43-45) 그리고 두번째 단계에서는 그들이 모든 일에서 직접 그리스도와 항상 함께하는 형태를 취하고, 심지어 세속의 직업까지도 완전히 포기하거나 습관적으로 포기하는 단계에 이르게 되고 (예를들면 마 4:1s-22:9-9) 마지막으로 세번째 단계에서는 열두 제자가 많은 무리로 부터 선택되어 그들 생애에 있어 가장 높은 단계의 부르심인 사도가 되어 주님으로 부터 별도의 특별 훈련을 받는 단계로 구분하였는데,
5) 그러나 신자인 첫째 단계이든,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두번째 단계이든, 혹 사도로 부름 받은 세번째 단계이든, 그들의 믿음이 성장하는 모든 단계에서 그들은 언제나 예수님의 제자였으며, 이 “제자”라는 정체성이 그들이 예수님과 함께하는 모든 생활의 기초가 되었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마태가 그의 복음서에서 제자들이 제자도에 있어 점점 성장해 가는 모습을 보여 준 것은 우리들에게 있어 큰 위로가 되는데, 비록 제자들이 약점도 있고 자주 실패도 하였지만 그들은 예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자기에게 맡겨진 역할을 감당할 수 있는 제자들로 점점 성장해 나갔던 것처럼, 우리들도 아직 성숙한 제자도의 단계에 이르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우리들 모든 신자는 또한 주님의 제자임을 명심하고, 한걸음 한걸음 주님을 쫓아가는 과정에서 주님의 제자도에 있어 성장해 가야 하고 또한 성장해 갈 줄로 믿기 때문입니다.
6) 일반적으로 서양 철학의 시조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은 제자도를 도덕적 판단을 제대로 하여 도덕적 삶 즉 덕스런 삶을 살 수 있도록 “선”에 대한 의식을 일깨워 주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제자도는 구약에서는 히브리어 리무드 (לִמֻּד,limmud) 와 신약에서는 헬라어 마세테스 (μαθητής,mathetes) 모두 “배우다”라는 어근에서 출발하여, 스승에게 배우는 것에서 시작하여 또한 스승에게 헌신하는 사람이란 의미로 쓰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도에 있어서 지식이나 정보의 전달 혹은 기존의 덕을 심화시키는 것 보다 자기를 계시하심으로 자기에 대한 헌신을 일깨워 순종하여 따르도록 하는 것에 많은 시간을 투자 하셨습니다. 즉 제자도에 있어서의 성장은 주님을 더 알아가는 것과 함께 순종에로의 성장에 초점을 맞추셨던 것입니다.
7) 그래서 마태는 제자를 주님을 알고 그를 닮아가며 또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사람으로 묘사하면서 마 11:29절에서는 주님의 멍에를 메고 주님의 온유와 겸손을 배우는 사람으로 또 마16:24 에서는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쫓는 사람으로 말씀하고 있는데, 이 두 말씀은 실은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자기를 부인하는 것 즉 자기의 지혜와 힘을 내려 놓는 것은 결국 겸손 즉 하나님 앞에 자기의 무능함을 깨닫게 되는 것을 말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순종은 결국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온유함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8) 그런데, 이렇게 제자는 예수님의 성품을 닮아 가며, 예수님께서 명하신 것을 행하는 사람이라는 개념은 그의 복음서 마지막 28장에 나오는 대 위임령에서도 나오는데, 대 위임령에서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첫째 주님께서 분부한 모든 것을 배워 지키는 것과 둘째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는 것 두가지로 요약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9) 그리고 마태는 제자도의 시작과 성장은 은혜로 말미암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즉 마 20장 29절에서 34절에 보면 맹인 두사람이 은혜로 고침을 받자 예수님을 따랐다고 말씀하고 있고 또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산상 수훈이 나오는 마5장에서는 주님은 “복 받은 사람 즉 은혜 받은 사람이 하나님나라의 덕성을 입고 또 하나님 나라를 주님께로 부터 받아 그 하나님 나라의 일들을 감당할 수 있다”고 하셨듯 제자도는 바로 은혜로 부터 솟아나는 삶이며, 또 그 은혜를 덧입어 성장해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회퍼는 그의 책 “나를 따르라 (The Cost of Discipleship)”에서 “값싼 은혜란 제자도가 없는 은혜요, 십자가가 없는 은혜이며, 살아 성육신 하시는 예수님이 없는 은혜를 말한다고 하면서. … 제자도로의 부르심은 실은 은혜의 선물인 바 … 제자도는 은혜로 부터 솟아 나는 삶을 의미하며 은혜란 오직 제자도 임을 아는 사람이 복 있는 사람”이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10)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가 함께 생각해 보며 은혜 나누기를 원하는 데, 먼저 주님의 제자의 요건, 즉 고난과 우선 순위의 재정렬은, 과학과 문명의 발달로 물질적으로는 풍요로운 사회가 되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먹고 살기가 점점 힘들어지고 그래서 마음은 더욱 불안해져 가는 그런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는 참 도전이 되는 말씀인 것 같은데, 실은 이 말씀들을 곰곰히 다시 생각해 보면 꼭 그렇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이 말씀은 주님의 제자가 되면 집도 없이 살아야 한다는 의미라기 보다는 우리의 본향은 하늘에 있기에, 실은 이 세상에서는 우리가 마음 편할 수 없다는 의미이고 또 두번째 아버지의 장례식에 대한 주님의 말씀은 아버지가 죽어도 장사를 지내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일반적으로 아버지가 죽으면 유대 전통에는 24시간 내에 매장한 후 그에 따르는 장례 예식들을 치르는 것이 아들의 의무 였기에, 유대인의 법인 미쉬나(Mishnah)에 의하면 이 장례법은 시체를 멀리하라든가 하는 정결 예식들보다 우선 하였지만, 그러나 민 6:6-7 과 레 21:11 에서 나실인이나 대제사장으로 구별된 경우에 있어서는 아버지의 장례 조차 참여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던 것과 같이 제자는 “주님을 따르는 것”에 절대적 중요성과 최우선성을 두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는 말씀으로 실은 주님의 제자인 우리들 모두가 이미 마음으로 그것을 인정하고 또 그렇게 이미 따르고 있는 말씀인 줄로 믿습니다. 두번째로, 바울이 고전 15:10 에서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했듯 우리도 하나님의 은혜 때문에, 또 그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를 인도하시기에, 비록 제자도의 길이 힘들어도 세상 모든 것들보다 우선하여 기쁜 마음으로 주님을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혹 그런 은혜를 아직 깨닫지 못하신 분이 있다면, 마11장 28절에서 30절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고 하신 주님의 음성을 지금 이 자리에서 들을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기도 하옵기는 사순절 다섯번째 주일을 맞아, 우리가 차고 넘치는 하나님의 은혜 받은 자로써, 우리와 함께 하시며 주님의 멍에를 함께 져 주시는 주님과 그의 은혜 때문에, 우리는 아버지를 따르는 어린아이와 같이 기쁜 마음으로 오늘도 주님을 따르는 모든 제자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소그룹 모임 가이드 및 예제 질문
Q1 오늘 본문에서 제자는 한편으로는 주님을 닮아가면서 주님께서 말씀하신 제자 삼은 일을 행하는 사람이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과연 그런 의미에서 우리들 각자가 얼마만큼 주님의 겸손과 온유를 닮아가고 있는지 생각해 보시고, 어떻게 하면 주님의 겸손과 온유를 닮아갈 수 있는지 서로의 의견과 생각을 나누면서 서로 은혜 받는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Q2 그리고 또한 제자는 주님께서 명하신 데로 제자 삼는 사람이라고 하셨는데, 과연 나는 몇 사람이나 주님의 제자를 삼았는지 그리고 그렇게 제자 삼은 나름대로의 know-how 가 있다면 서로 나누면서 은혜 받는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축복합니다.
기도 노트
( 오늘 말씀중 깨달아진 하나님의 성품 ) 하나님 아버지!
( 지난 한주간 혹은 오늘 하루 동안 감사한 일들 ) 해 주심에
찬송과 감사와 영광을 주님께 올려 드립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 깨닫게 해주신 죄 )를 깨닫게 해주셨음에 감사하며,
회개할 때에 용서해 주옵시고 이제 ( 새 삶 )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 주옵소서
특별히 오늘 말씀을 통하여 ( 새롭게 배운 점 ) 을 가르쳐 주심에 감사하며
( 삶의 도전 ) 살 수 있도록 은혜를 더하여 주옵소서
( 주님의 성품 ) 우리 주님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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