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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24-14 마태5 가이드

마 5:1-10, 핵심 구절 마 5:3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참 예배자를 찾으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의 예배를 통해 올려 드리는 모든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기쁘게 받으실 줄 믿습니다.

오늘 사순절 세번째 주일을 맞아, 여러분 모두에게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와 축복이 가득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우리는 지난 몇 주에 걸쳐 마태 복음에 대해서 살펴보고 있는데, 특히 이번 주에는 마태복음 5장에 나오는 산상수훈을 통해, 예수님의 제자들로써 어떤 성품으로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함께 생각해 보시면서 함께 은혜 받는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1)     마태 복음은 지난 몇 주에 걸쳐 살펴 본 것처럼, 마태가 AD 75-80 년경 사이에 유대 개종자들로 구성된 기독교 공동체가 점점 유대 공동체로 부터 독립해 나가던 시기에 기록한 복음서로, AD 70년 예루살렘이 로마에 점령 당하고 성전이 파괴된 것을 지켜 본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새롭게 이 땅에 도래한 하나님 나라의 본질과 또 그 하나님 나라를 이어받은 교회 공동체와 그 공동체의 구성원들인 제자들의 정체성과 그 하나님 나라 안에서의 삶의 방식을 가르쳐 주고, 또 마침내 이 교회 공동체를 모든 민족을 제자 삼는 대 위임령을 감당할 선교 공동체로 세우고자 쓰여 졌는데

2)     오늘 우리가 함께 살펴보는 산상 수훈은 5장에서 7장에 걸친 매우 긴 예수님의 설교로 그 내용은 5장 1절에서 16절까지는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사람들의 여덟가지 복들 즉 이들 천국인들의 성품들과 행위들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고 있고 그리고 5장17절에서 48절까지는 율법의 참 의미에 대해서 가르쳐 주신 후 이어진 6장1절에서 7장6절까지는 참 경건에 대해서 가르쳐 주시는데, 특히, 구제생활과 기도생활, 그리고 금식 등 경건생활에 대한 바른 자세와 바른 우선 순위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으며 그리고 7장 7절에서 27절에서는 참 도덕에 대해서 가르쳐 주셨는데, "네가 대접받고 싶은 데로 남을 대접하라"는 황금도덕률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는데, 마지막으로 7장28절과 29절에서는 이러한 가르침을 베푸신 참 선생이신 주님의 권위에 사람들이 놀랐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3)     오늘은 특별히 팔 복에 대해서 살펴 보되, 서로 연관성이 깊은 두가지 씩 짝을 지어 살펴 보기를 원합니다. 먼저, 첫번째 3절에서는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심령이 가난한 자는 겸손한 자를 말씀하는데, 성경에서 말하는 이 겸손 헬라어로 (ταπεινός) 타페이노스는 세상에서 말하는 것과는 조금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즉 겸손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전적으로 부패한 존재이며 또한 이러한 비참함으로 부터 우리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는 전적으로 무능한 존재임을 시인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며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존하는 것을 말하는데, 이와 같이 겸손한 자는 천국이 그들의 것이 된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 동사의 시제가 현재형으로 쓰여 있는 점을 감안하면 겸손한 자란 천국, 즉 하나님의 나라 다른 말로는 하나님의 통치가 이미 임하였고, 그 하나님의 통치를 지속적으로 받고 있는 사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10절에서 이러한 자는 또한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게 되는데, 이러한 자들에게는 천국이 그들의 것”이 된다고 말씀하시면서, 여기서도 현재형 동사를 사용하셨는데, 그 의미는 이렇게 박해를 무릎 쓰고 서라도 의를 추구하는 삶이야 말로 바로 하나님의 통치를 받고 있다는 것의 증거라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4)     그리고 이어서 4절에서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이라고 말씀해 주셨는데, 이 말씀은 자기 자신과 우리 즉 인간의 죄와 그로 말미암은 고통에 대해 애통해 하면서 회개하는 이들은 하나님의 위로를 받게 될 것이라는 말씀으로 여기서는 동사가 미래시제로 쓰인 바, 미래적 위로 결국 종말론적 위로를 받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죄에 대한 애통함이 있는 사람들은 또한 고통받는 인간들에 대해 긍휼한 마음으로 자비를 베푸는 삶을 사는데, 이러한 사람들은 7절에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입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긍휼”은 “하나님의 선하심”의 속성들중 한가지로, 하나님의 긍휼은 죄의 결과 때문에 비참한 상태에 있는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을 뜻하는데, 이러한 긍휼은 스 7:9에 “너희는 진실한 재판을 행하며 서로 인애와 긍휼을 베풀라”는 말씀처럼,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에게도 요구되어지는 것이었습니다.

5)     그리고 이어서 5절에서는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라고 말씀하셨는데 여기서 말씀하시는 “온유”는 헬라어 “πραΰς” 프라우스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르침을 받아 순종하려고 준비된 마음 자세를 가지고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는 것을 말하는 바, 이렇게 하나님의 통치를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그 통치에 순종하는 자는 땅을 기업으로 받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태는 온유한 사람은 땅을 상속받는다고 하면서 미래 시제를 사용함으로 마가가 마가복음 10장30절에서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현세에 있어 백배나 받되 박해를 겸하여 받고”라는 말씀과 일견 서로 모순되는 것 같이 보이는데, 실은 마가는 현세에 영적인 의미의 새가족과 영적인 의미의 하나님 나라를 받게 될 것에 대해 말한 것이었고 반면 마태는 미래적 의미의 땅 즉, 결국 새 하늘 새 땅에서 기업으로 받게 될 땅과 그리고 그 땅에서 영원히 예수님과 왕 노릇할 것이란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기에 서로 다른 시각을 가지고 말씀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온유한 사람은 또한 9절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라는 말씀처럼 세상의 화평을 위해 애를 쓰는데,  여기서의 화평은 십자가를 통한 하나님과 화해를 이룬 그의 백성들이 이제 사람들 간의 화평도 이루어 나가려 노력하는 것을 의미하는 바, 이렇게 세상 가운데 화평을 이루려 하는 사람들은 결국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6)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렇게 겸손하고 온유하며 죄에 대한 애통함과 회개를 한 사람들은 의에 주리고 목말라 하게 되는데, 6절에서 이들은 배부르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의”라는 단어는 하나님 앞에서 바른 삶과 또한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의미하는 것으로 성경에서는 이를 “하나님을 아는 것!”이라고도 말씀하고 있는데, 이렇게 하나님 앞에서 바른 삶과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추구하는 사람은 배부를 것 즉 원어적 의미로는 만족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추구하는 사람들은 8절에서 마음이 청결하게 되는데, 그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의 용서함을 받을 뿐 만 아니라 또한 성화를 이루어 가며 동시에 이 세상도 주님의 보혈로 청결하게 되기를 원하게 되는데, 이렇게 마음이 청결한 자는 결국 하나님을 보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바, 그러나 비록 하나님을 완전하게 볼 수 있는 일은 종말에 가서야 가능한 일이지만, 여기 기 땅에 살면서도 우리는 하나님의 존재와 속성을 알고 기쁨을 누리며, 그분의 임재와 능력을 그분과의 친밀한 교제를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7)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가 함께 생각해 보며 은혜 나누기를 원하는 데, 먼저 이 산상수훈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고민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오늘 본문을 읽을 때, 겸손과 온유한 마음으로  긍휼을 베풀고 화평하게 하는 것 등 이러한 성품과 행위를 하면 복을 받게 되는데, 그 복은 천국을 소유하는 것과 그 천국의 여러가지 복락들을 누리게 될 것이라고 조건절 형식으로 읽어야 할지 아니면, 영어로는 같은 형식, 즉 “Blessed is the human whose delight is in the law of the LORD and on His law he meditates day and night” 라고 쓰고, 이것을 “복있는 사람은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도다”라고 번역한 시편 1절1절 말씀과 같이 복 있는 사람 즉 복을 받은 사람이 그러한 겸손한 성품과 긍휼의 행위를 하게 될 것이며 따라서 그들은 천국과 그 천국의 여러가지 복락들을 누리게 될 것이라고 읽어야 할지에 대한 것인데, 실은 조금 전 살펴본 것처럼 겸손이 전적 부패와 전적 무능을 고백한 자가 갖는 전적 의존의 성품이라면, 그렇게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긍휼한 행위를 할 때에 복을 받는다라고 읽으면 실은 복을 받는 일은 불가능할 것이 될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 본문은 복을 받은 자가 겸손하고 온유한 마음으로 죄를 애통해 하고 의와 마음의 정결함을 추구하면서, 남을 긍휼히 여기고 화평케 하며 또 심지어 의를 위하여 박해까지도 감내하게 되며, 이에 천국도 받고 또한 그 천국의 모든 복락들을 누리게 된다고 읽게 되는 것입니다. 즉 성령께서 먼저 찾아 오셔서 우리 죽어 있는 영을 거듭나게 하시고서야, 우리는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인정하고 그 분의 통치를 받아 들이고 그 통치 아래서 살아가게 되는데, 그러한 사람의 주요한 특징이 바로 하나님을 향한 겸손과 사람들을 향한 자비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두번째로 고민해 보아야 할 것은 이렇게 겸손하고 자비로운 사람들이 동료 인간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아야 할 것 같은데, 왜 주님께서는 10절에서 이렇게 바른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 즉 겸손과 온유한 마음으로 긍휼과 화평을 추구하는 기독교인들이 왜 박해를 받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일까요? 예. 그 이유는 먼저 주님의 삶이 그러했고, 또한 선지자들도 그러한 삶을 살았기 때문 입니다. 즉 벧전 2:21 에서 주님께서 박해를 받으셨기 때문에 우리도 당연히 박해를 받게 될 것이란 말씀인데, 그런데, 왜 주님께서는 박해를 받으셨을까요? 즉 이 세상을 행복한 세상으로 만들기 위해 인과 예를 외쳤던 공자도 사람으로부터 숭상을 받았고 모든 고난을 벗어 버리고 더 이상의 고통의 세계로 다시 태어나지 않고 니르바나에 이르는 길로 가기 위해 정진하되 깨달음이 있는 자는 중생을 위해 자비를 베풀어야 한다고 설파했던 부다도 사람들로 부터 숭상을 받았는데 왜 원수까지 사랑하라고 하시며 이 땅에 진정한 천국이 임하기를 외쳤던 예수님은 박해를 받고 또 심지어 십자가에 달려 처참하게 죽어야만 했을까요? 예. 그 이유는 하나님 즉 신에 대한 공경과 사람들에 대한 사랑을 외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실은 우리 인간은 그렇게 살 수 없는 존재라고 외치셨기 때문입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선악과를 따먹은 후에도 자기의 노력과 정진으로 선을 이루고 지극한 경지에 이를 수 있다고 외치는 종교들과 철학들로 중무장한 사람들에게 그렇게 해서는 진정한 선에 이를 수 없고 또한 천국 즉 지극한 경지에 이를 수 없다고 외치며, 자기의 깨달음과 노력과 선행으로 천국에 이르려는 인간 역사의 큰 수레바퀴를 멈추고 다시 선악과를 따먹기 전의 삶, 즉 하나님과 함께 하며 그를 전적으로 의지하는 삶으로의 복귀는 오직 “은혜”로 만 가능하다는 것을 외치며 그 “은혜”의 나라와 그 통치를 이 땅에 도래시키기 위해 십자가를 지셨던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기독교는 자기의 깨달음과 노력과 선행으로 천국에 이를 수 있다고 하는 모든 종교들과 철학들로부터 핍박을 받을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번째로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이렇게 진리를 외치며 세상으로 박해를 받는 우리가 또 어떻게 세상에 화평을 이룰 수 있을까 하는 문제입니다. 한편으로는 그 방법은 간단한데요. 그 방법은 바로 “내가 너보다 거룩하다” 라거나 “너는 틀렸고 나는 옳다”라고 말하지 않고 우리는 “내가 이처럼 부족하다”고 말하며 또한 “나는 안되더라”고 하면서 “그래서 나는 주님의 의를 전적으로 의지하게 되었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즉 남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이렇게 주님의 의를 의지하고 그에 대한 소망으로 살아가면서, 혹 우리들이 이 소망이 어디로 부터 말미암았는가 하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면, 우리의 소망은 오직 예수님께 있음을 온유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사람들에게 말함으로 주님의 은혜가 혹 그들에게 미치게 함으로 오직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는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기도 하옵기는 사순절 세번째 주일을 맞아,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 즉 복을 받은 자로써, 겸손하고 온유한 마음으로 긍휼과 평화를 전하면서, 이 땅에서도 이미 그 천국과 그 천국의 복락도 받아 누리며 하나님께 영광 올려 드리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소그룹 모임 가이드 및 예제 질문

Q1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나라가 그 마음 속에 이루어진 자 즉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자의 첫번째 덕목은 겸손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자신을 한번 돌아 보시면서, 나는 하나님의 통치를 받고 있는지 그리고 겸손해져 가고 있는지 생각해 보시고 자신의 생각을 팀원들과 함께 나누시면서 서로 은혜 받는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Q2 그리고 또한 그렇게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게 된 사람은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풀게 된다고 말씀하고 있는데, 오늘 여러분들의 삶에서 과연 자비를 베풀고 있는지 혹은 지금 자비를 베풀어야 할 내 이웃은 없는지 돌아보고, 서로의 생각을 팀원들과 나누면서 은혜받는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축복합니다.

기도 노트

(  오늘 말씀중 깨달아진 하나님의 성품  ) 하나님 아버지!

(  지난 한주간 혹은 오늘 하루 동안 감사한 일들 ) 해 주심에

찬송과 감사와 영광을 주님께 올려 드립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        깨닫게 해주신 죄          )를 깨닫게 해주셨음에 감사하며,

회개할 때에 용서해 주옵시고 이제 (  새 삶  )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 주옵소서

특별히 오늘 말씀을 통하여 ( 새롭게 배운 점 ) 을 가르쳐 주심에 감사하며

(    삶의 도전     ) 살 수 있도록 은혜를 더하여 주옵소서

( 주님의 성품 ) 우리 주님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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