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6:16-18, 핵심 구절 마 6:18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참 예배자를 찾으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의 예배를 통해 올려 드리는 모든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기쁘게 받으실 줄 믿습니다.
오늘은 지난 재의 수요일을 시작으로 40일 동안 지키는 사순절 기간중의 첫 주일인데, 여러분 모두에게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와 축복이 가득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사순절은 다가 올 부활절을 준비하는 기간으로, 이 기간 동안에는 주님의 고난을 생각하며 성경을 읽고 몸과 마음을 깨뜻하게 하면서, 자신의 신앙을 성찰해 보고 다른 사람들을 섬기는 자원 봉사나 혹은 금식 등의 경건 생활을 하며 보내는데, 초대 교회 때는 주로 이 사순절 기간에 새샌자들에게 세례 문답 교육을 하였고, 시간이 점점 흐르면서, 모든 크리스천들이 경건 훈련을 하면서 참회하는 기간으로 지켜 왔는데, 오늘은 특별히 사순절 기간에 행하는 금식에 대해서 알아보고 함께 은혜 받는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1) 마태 복음은 지난 몇 주간 살펴 본 것처럼, 마태가 AD 70년 예루살렘이 로마에 점령 당하고 성전이 파괴된 후인 AD 75-80 년경 사이에 유대 개종자들로 구성된 기독교 공동체가 점점 유대 공동체로 부터 독립해 나가던 시기에 기록한 복음서로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그들의 정체성과 삶의 방식을 가르쳐 주고, 또 교회 공동체를 모든 민족을 제자 삼는 선교 공동체로 세우고자 쓰여 졌는데
2) 오늘 본문은 5장에서 7장에 걸친 주님의 산상 수훈 설교 말씀 즉 하나님 나라에서의 제자들의 성품과 그들의 삶의 방식에 대한 예수님의 설교들 중에 나오는 예수님의 금식에 대한 가르침으로 특히 금식의 방법과 금식의 마음 자세에 대하여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3) 그런데 이 금식의 전통은 실은 오래 된 것으로 출애굽 시대에 까지 거슬러 올라 가는데, 레위기 16장과 23장에 대 속죄일 (the Day of Atonement) 즉 유대 민간력으로 정월에 해당하는 티쉬리월 10일에 1년 간 지은 모든 백성들의 죄를 속하는 대 속죄일 때에 “스스로 괴롭게 하라” 즉 “금식하라”고 하신 것에서 유래하였는데
4) 여기서 “스스로 괴롭게 하다”라는 히브리어는 영혼 혹은 목 또는 목구멍을 뜻하는 “네페쉬”(נֶ֫פֶשׁ)와 괴롭게 하다란 뜻을 가진 히브리어 “아나”(ענה)”가 합쳐진 구절로, 문자적으로는 “너의 영혼 혹은 너의 목을 괴롭게 하라”는 뜻으로, 이 말은 주로 금식하다는 의미로 쓰였고, 더 넓게는 “자기 영혼의 소욕을 따르지 않”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습니다.
5) 이렇게 하나님의 속죄가 회개와 금식 그리고 수송아지와 수염소의 피를 뿌리고 그 모든 것을 태우는 것과 또 그들의 모든 죄를 전가한 아사셀 염소를 광야로 떠나 보내는 속죄 의식으로 이루어졌는데, 그들이 바벨론 포로로 잡혀가 성전 제사를 드릴 수 없었던 때를 기점으로, 회개와 금식만을 속죄와 연관시키다가 주 후 70년 성전이 완전히 파괴 된 이후로는 회개와 금식이 속죄의 희생 제사를 대체하는 수단으로 자리 잡게 되었고 이렇게 죄를 용서받기 위해 대 속죄일에 행해지던 금식은 특히 구약 시대 때부터 이스라엘의 대단히 중요한 속죄와 관련된 경건 행위가 되었는데,
6) 그러한 예를 우리는 성경의 여러 곳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사무엘상 7장에 보면 이스라엘이 사사시대의 마지막 때에 블레셋의 지배를 받고 있었는데 그때 사무엘 선지자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미스바에 불러 모아 종일 금식을 하면서 죄를 자복하고 하나님께 돌아 왔을 때, 마침 이 소식을 듣고 이스라엘로 쳐 들어온 블레셋을 하나님께서 물리쳐 주신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고 또 에스더 4장에는, 남유다가 망해 백성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 거주하던 때에, 하만의 궤계로 아하수에로 왕이 모든 유다 백성을 죽이라는 조서를 내렸을 때, 모르드개와 함께 유대인들이 크게 애통하여 금식하며 울며 부르짖자 하나님께서는 에스더를 통해 그들이 죽음을 면하고 은혜를 입게 해 주셨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을 뿐 만 아니라 심지어 요나서 3장에서는 요나가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에 가서 그 백성들에게 회개를 선포하자 이방인인 그들이 하나님을 믿고 금식을 하며 기도하였고 이에 하나님께서는 내리시기로 작정하신 재앙을 내리지 않으신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는 등 구약 시대 때에는 유대인들 뿐 만 아니라 이방인들 조차 금식을 중요한 속죄 행위로 간주하여, 그들이 하나님 앞에 죄를 지어 하나님께로 부터 벌을 받게 되었을 때에 그들이 죄를 자복하고 회개하면서 그에 대한 외적 증거로 금식을 행함으로 하나님께 속죄를 받는 주요한 기도 응답의 수단으로 금식을 행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7) 그리고 이 금식은 하나님과 가까이 하기 위한 목적으로도 행해졌는데, 이것은 이사야 59장 2절 말씀처럼 하나님과 그의 백성들 사이를 갈라 놓았던 것이 죄였기에, 그 죄에 대한 용서를 구하는 내적 참회의 외적 표현인 금식을 행함으로 죄를 용서받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여 하나님과 가까이 할 수 있었던 것인데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은 보다 자주 금식을 하여 이러한 종교적 경건을 실천하려고 하였던 것이었고 또 교회 시대인 지금에도 사순절에 금식을 행함으로 하나님과 좀 더 가까이 하고자 하는 경건 생활을 실천하고 있는 것인데,
8) 그런 의미에서 이사야 선지자는 이사야서 58장에서 금식의 방법에 대하여 논하면서, 금식을 할 때는 자기의 오락을 구하지 않고 또한 다투지도 말아야 한다고 말했던 것인데 그 이유는 금식하면서 자기의 오락을 구하는 것 즉 자기의 정욕을 만족시키는 행위를 한다는 것은 바로 금식 즉 자기의 영혼을 괴롭게 한다는 목적과 상충하는 것이며 또한 다툼은 정욕으로 부터 난다는 야고보서 4장 1절 말씀과 같이 다툼은 결국 금식 즉 자기 영혼의 소욕을 따르지 않는다는 목적과 상충하는 것이기에 금식을 할 때에는 오락을 구하거나 다투지 말라고 했던 것 입니다.
9) 그런데, 이렇게 우리가 금식을 할 때,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 우리와 가까이 해 주시며 또한 우리의 기도하는 바를 들어 응답해 주시는 분은 바로 하나님 아버지이시기에, 그래서 주님께서는 오늘 본문 마태복음 6장 16절에서 금식할 때에 사람 들에게 보이려고 슬픈 기색을 띠고 얼굴을 흉하게 하는 행위는 결국 금식의 원래 목적인 자기 자신의 소욕을 내려 놓는다는 의미와 전혀 맞지도 않고 또한 금식의 대상 자체가 잘못된 것이기에, 금식의 목적을 이룰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는 것입니다.
10) 그런 의미에서 주님은 제자들에게 금식을 하되 은밀한 곳에 계시는 하나님 앞에서 하라고 하신 것인데, 여기서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은밀한 곳에 계시는 분으로 말씀하셨는데 이 말씀은 첫번째로 하나님은 무한한 지혜와 지식을 가지신 분이시기에 유한한 우리가 다 알 수도 또 이해할 수도 없는 분이란 뜻도 있지만 그러나 이 말씀은 또한 하나님은 모든 은밀한 것을 다 아시는 분으로 삼상 16장 7절에서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고 말씀하셨던 것처럼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 마음의 은밀한 모든 것, 즉 우리의 경건 행위가 하나님을 향하고 있는지 또 우리 마음의 모든 동기와 의도가 바른 것인지 다 아시는 분이란 말씀인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님은 우리의 은밀한 것 즉 우리 마음의 깊숙한 것 마저도 다 꿰뚫어 아시는 분이란 말씀은 하나님은 그런 분이시기에 또한 우리 마음의 모든 깊은 상처들 마저도 다 치유해 주실 수 있는 분이란 뜻이기도 합니다.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은 우리의 은밀한 곳 심지어 무의식에 있는 옛 습관들과 상처들 마저 다 알고 계시고 또 치유하기를 원하시는데, 다만 우리 스스로가 우리의 모든 부분을 주님께 하나 하나 맡겨 드릴 때 까지 기다리시고 계시는 분이신 바, 우리가 이 사순절 기간 동안 말씀도 읽고 봉사도 하며 금식을 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깨닫게 되는 부족한 부분들을 하나 하나 주님께 내어 드릴 때에 주님께서는 우리의 아픔과 상처를 치유해 주시는 것입니다.
11)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가 함께 생각해 보며 은혜 나누기를 원하는 데, 먼저 이 금식 즉 영혼을 괴롭게 한다는 개념은 선악과를 따 먹은 죄 와도 밀접하게 연관이 되어 있단ㄴ 것입니다. 즉, 선악과의 의미가 선악 간 판단을 누가 할 것인가 즉 하나님께서 하시도록 할 것인가 아니면 인간이 할 것인가에 대한 것이었고 그 선악과를 따 먹은 결과, 우리 인간은 선악 간 판단을 스스로 하기 시작하였을 뿐 만 아니라, 또한 하나님의 뜻보다 자기의 뜻과 소욕을 앞세우게 되었는데, 그런 의미에서 일년에 한번 모든 죄를 용서받는 대 속죄일에 자기의 영혼의 소욕 즉 자기의 생각과 판단을 따르지 않겠다는 그런 금식을 실천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은 결국 은혜로 말미암은 죄 용서의 의미를 되세기고 이제부터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겠다는 그런 의미가 금식에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두번째로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이렇게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것을 다 아시는 분이란 말씀은 실은 우리 마음에 불편한 마음도 불러 일으키는데, 그것은 우리가 비록 성령으로 거듭나 새사람이 되었지만 아직도 우리 속에 남아 있는 옛 습관 때문에 자주 넘어지는 연약함으로 둘러 싸여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것을 다른 각도에서 보면 이 사실은 오히려 우리에게 평안함을 가져다 주는데, 무슨 말인가 하면, 비록 우리의 거듭난 속사람이 연약함으로 말미암아 옛 습관에 넘어져 겉으로 드러난 행동에 아직 불완전함이 있다 하더라도 우리가 너무 걱정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은 주님께서는 우리의 은밀한 속 사람 즉 거듭난 새사람은 하나님을 향하고 있다는 것을 다 아시고 그러한 우리의 마음과 동기를 받아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나도 다 알 수 없는 내 마음을 모두 다 아시는 하나님! 그렇기에 우리는 어떤 것도 숨길 필요가 없이 오히려 진실한 마음으로 있는 그대로의 모습 그대로 주님 앞에 나갈 수 있는 것이며 또한 있는 그대로의 모습 그대로 주님 앞에 나갈 때 또한 있는 그대로의 모습대로 나를 사랑해 주시는 하나님을 만나 용서와 용납과 회복과 치유를 경험하고 주님의 형상에 까지 점점 자라나는 가운데, 한걸음 더 나아가 다른 사람들도 품고 용납할 수 있게 되는 것인데 그것이 바로 우리가 사순절의 경건 생활을 통해 누릴 수 있는 은혜인 것입니다. 따라서, 특별히 이번 사순절 기간에는 시편 139편에서 다윗이 고백했던 것처럼 우리의 생각과 말과 행동을 모두 다 아시는 하나님 앞에 있는 그대로의 모습대로 나와 주님 앞에 모든 것을 내려 놓고 치유와 회복과 성장을 경험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소그룹 모임 가이드 및 예제 질문
Q1 사사기 21:25 에는 “그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실은 그때 이스라엘의 왕은 하나님이셨고, 하나님을 왕으로 인정하지 않았기에 사람들이 자기 소견대로 행했던 것입니다. 오늘 금식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도전 또한 우리 마음의 소욕을 금하라는 말씀인데, 실은 그렇게 자기 소견대로 사는 방식은 선악과를 범한 인간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자기의 삶을 한번 돌아보고 과연 내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내 뜻대로 내 고집대로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 보고 서로 깨달은 것을 나누며 은혜 받는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Q2 여러분 혹 이번 사순절 기간에 어떤 경건 훈련에 한번 도전해 보시겠습니까? 성경 읽기, 자원 봉사 혹은 금식, 기도 하옵기는 각자가 처한 위치에서 한 두가지 경건 훈련을 정해서 실천해 보시기를 권합니다. 혹 한번 생각해 보시고, 서로의 생각과 계획을 나누며 서로 은혜도 함께 나눌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축복합니다.
기도 노트
( 오늘 말씀중 깨달아진 하나님의 성품 ) 하나님 아버지!
( 지난 한주간 혹은 오늘 하루 동안 감사한 일들 ) 해 주심에
찬송과 감사와 영광을 주님께 올려 드립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 깨닫게 해주신 죄 )를 깨닫게 해주셨음에 감사하며,
회개할 때에 용서해 주옵시고 이제 ( 새 삶 )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 주옵소서
특별히 오늘 말씀을 통하여 ( 새롭게 배운 점 ) 을 가르쳐 주심에 감사하며
( 삶의 도전 ) 살 수 있도록 은혜를 더하여 주옵소서
( 주님의 성품 ) 우리 주님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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