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16:13-20, 핵심 구절 마 16:16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참 예배자를 찾으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의 예배를 통해 올려 드리는 모든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기쁘게 받으실 줄 믿습니다.
오늘 2024년 여섯번째 주일이자 한국의 구정 명절을 맞아, 여러분 모두에게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와 축복이 가득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지난 여러 주에 걸쳐, 살펴본 마가 복음에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인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했다는 기쁜 소식을 전하려고 세운 제자들이 하나님 나라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모습으로 많이 그려져 있었는데, 지난 주부터 살펴본 마태 복음에서는 마태가 첫 주제로 내세운 것이 예수 그리스도는 또한 임마누엘 즉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시라는 점을 강조한 것처럼, 제자들 또한 좀 더 긍정적인 측면을 많이 보여 주고 있는데, 이러한 차이를 어떻게 이해할지 함께 고민해 봄으로 은혜 나눌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1) 마태 복음은 지난 주에 살펴 본 것처럼, 세리 마태로 잘 알려져 있는 레위 마태가 시리아 혹은 팔레스타인 지방에서 AD 70년 예루살렘이 로마에 점령 당하고 성전이 파괴된 후인 AD 75-80 년경 사이에 유대 개종자들로 구성된 기독교 공동체가 점점 유대 공동체로 부터 독립해 나가던 시기에 기록된 복음서로 마태는 목회 신학자로써, 예수님의 제자들의 정체성과 삶의 방식을 형성하도록 도와 주고, 또 결국 모든 민족을 제자 삼는 교회 공동체로 세우고자 이 복음서를 썼는데
2) 마태는 예수님의 삶과 사역에 대한 6개의 이야기 단락 사이 사이에 제자도와 하나님 나라에 대한 다섯개의 설교를 아주 조직적으로 잘 배치하였는데, 그 중 첫번째로 예수 그리스도는 임마누엘 즉 그의 백성들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시란 것이 가장 중요한 주제라고 소개하였습니다. 이런 면에서 마태가 묘사하고자 했던 제자들의 모습 또한 임마누엘 즉 제자들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마가 복음과는 다소 다르게 소개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요.
3) 무슨 말인가 하면, 마가 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그의 많은 추종자들 중에서 특별히 열 둘을 뽑아 사도로 세우셔서,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고 또 귀신을 내쫓아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건설해 나가기를 원하셨는데, 그의 제자들이 처음 귀신을 제어하는 권능을 주시고 전도 여행을 보내셨을 때에는 귀신도 쫓아 내고 많은 병자들에게 기름을 발라 고치기도 했지만, 전도 여행에서 돌아온 후에는 믿음이 약해져 귀신을 쫓아내지 못해, 예수님께 “믿음이 없는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에게 참으리요”라며 꾸중과 함께, 이런 류는 기도로 물러간다고 하시며 기도하라는 나무람을 하셨고 또 작은 떡 다섯개로 오천 명을 먹이시고 또 떡 일곱개로 칠천명을 먹이신 것을 직접 목격하고도 아직도 먹는 것으로 걱정하는 모습을 보여, 예수님께로 부터 “너희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느냐 기억하지 못하고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는 책망을 듣기도 하는 등 마가 복음의 제자들은 깨달음도 없고 심지어 믿음도 없는 제자들로 묘사하고 있는 부분이 많은데 반하여,
4) 마태 복음에 나오는 제자들은 조금 달라 보이는데, 오늘 본문에서 처럼, 예수님께서 그간의 지상사역을 마치시고 이제 십자가 대속 사역으로 전환하는 중요 기점이 되는 도시인 빌립보 가이사랴에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고 질문하시자, 마가복음에서는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라고 고백하였고 그러자 주님께서는 “자기의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하셨다고 아주 짧게 기록한 반면, 오늘의 본문인 마태 복음에서는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는 주님의 질문에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고 대답하였고, 이에 예수님께서는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하신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고 하시며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고 하시며 제자들에게 경고하사 “자기가 그리스도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고 하셨다고 기록함으로 마태는 제자들을 하나님 아버지의 은혜를 받아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깨닫고 고백하게 된 사람일 뿐 만 아니라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교회의 기초가 되는 이들이자 또한 심지어 천국 열쇠를 가진 그런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로 묘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5) 이러한 예는 오늘 본문 뿐 만 아닌데, 예를 들어, 네가지 땅에 떨어진 씨 비유가 나오는 마가복음 4장에서는 13절에서 “너희가 이 비유를 알지 못할진대 어떻게 모든 비유를 알겠느냐?”고 하시며 제자들이 예수님의 가르침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예수님의 꾸중을 들은 것을 기록한 반면 마태는 마태 복음 13장에서 예수님의 꾸중을 삭제하고 오히려 제자들이 듣고 볼 수 있게 되어 복되다고 말씀해 주신 것을 기록하고 있으며
6) 또 마가 복음 6장에서는 물 위로 걸어 오시는 예수님을 보고 제자들이 유령인가 하며 놀라 소리 지르며 심히 놀라자, 이에 예수님께서는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마가는 그들이 이렇게 심히 놀란 이유를 예수님께서 떡 떼시던 일을 깨닫지 못하고 마음이 둔하여 졌기 때문이라고 한 반면, 동일한 사건을 다루고 있는 마 14장 에서는 물 위로 걸어 오신 예수님을 보고 제자들이 놀라 무서워하였지만, 주님께서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시자 베드로가 용기를 내어 “주님이시거든 명 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하였고 이에 예수님께서 “오라”고 명하시자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갔다는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비록 그 후에 바람을 보고 무서워하여 다시 물에 빠져 들어 주님께 도와 주시기를 구했을 때 주님께서 구원해 주신 후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는 책망을 듣기는 했지만 마태는 제자들이 뭔가 작지만 믿음의 행보를 보인 것을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7) 그리고 산 위에서 주님의 모습이 영광스런 모습으로 변화된 모습을 보여 주시자 이제 베드로가 초막 셋을 짓겠다고 말하였는데, 마가는 베드로가 이런 행동을 보인 이유는 “그들이 몹시 무서워함으로 그가 무슨 말을 할지 알지 못함”이었더라고 기록한 반면 마 17장 에서는 베드로가 두려워하여 이해하지 못하였다는 구절을 생략하였는데,
8) 이와 같이 마가 복음에서는 제자들을 둔하여 깨닫지 못하는 자요 심지어 믿음이 없는 자라고 묘사한 반면 마태 복음에서는 아직 작지만 그러나 믿음이 있는 자요, 주님께서 그 믿음 위에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교회를 세우시고 그들에게 천국의 열쇠를 주실 만큼 참 믿음을 가진 제자들로 묘사되고 있는 것입니다.
9) 이렇게 두 복음서가 제자들의 모습을 다르게 묘사하고 있는 이유는 마가 복음이 먼저 쓰였고 적어도 10여년이 지난 후에야 마태 복음이 쓰여 졌기에 그동안 믿음이 많이 성장한 것을 반영하였다고도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즉 처음 예수님을 쫓아 다니기 시작한 제자들은 믿음이 없는 사람들처럼 행동을 했고 점점 예수님을 쫓아 다니면서, 그들이 믿음이 성장해 갔는데, 마가는 초창기 제자들의 모습을 묘사했는데 반하여, 마태는 믿음이 적기는 하지만 그래도 참 믿음을 가진 중반기의 제자들의 모습을 기록했다고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10) 그리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마태복음에서는 주님을 임마누엘의 하나님 즉 그의 제자들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으로 소개하고 있는 것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는데, 무슨 말인가 하면, 특히 마태 복음에서는 예수 그리스도 즉 메시아는 임마누엘 즉 제자들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시기에, 또한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제자들의 모습 또한 작지만 참 믿음을 가진 그리고 성장해 나가는 그런 모습을 보여 주고자 하였고, 그래서 앞으로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고 또 천국의 열쇠를 가진 교회를 세울 존재로 나타내고 자 하였던 것이 바로 마태가 표현하고자 했던 제자들의 정체성이었던 것입니다. 즉 우리의 속사람이 새사람으로 거듭났지만 그러나 아직 우리 몸에는 옛사람의 잔재들과 구습들과 생각들이 남아 있어 우리를 지속적으로 넘어지게 하는 존재인 것이 바로 마가가 표현하고자 했던 우리들의 모습이라면 그러나 우리에게는 임마누엘의 하나님 즉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며 또 우리가 그분의 임재 안에서 점점 그분께 순종하면서 그분의 은혜를 의지하여야 하는 존재라고 말하는 것이 또한 마태가 말하고자 했던 우리들의 정체성인 것입니다.
11)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가 함께 생각해 보며 은혜 나누기를 원하는 데, 먼저 임마누엘의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우리의 정체성에 대해서 좀 더 알아 보기를 원하는데요. 즉 성경에서 보는 우리 인간은 선악과를 따 먹은 이후, 그 본성이 타락하여 죄의 지배를 받고 있으며 또한 그의 생각과 습관과 행동이 절대 선이신 하나님의 영광에 이를 수 없는 존재로 이를 옛사람이라고 하는데, 성령으로 말미암아 중생 하게 되면, 우리의 옛사람의 본성이 십자가에 못박히고 이제 그 본성이 변하여,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인정하여, 진정한 선악의 판단이 그분께 있으며 그의 뜻과 통치를 따르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 본성을 다시 가지게 되는데, 이러한 크리스천의 새로운 정체성을 성경에서는 새사람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새사람에 대하여 알아야 할 것이 두가지가 더 있는데요. 첫번째로, 중생하여 새사람이 된 우리들에게도 아직 옛 사고 방식이나 옛 습관이나 옛 행동들이 남아 있는 상태로, 이것을 도르트 신경에서는 우리의 연약함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를 말씀으로 인도하실 때, 우리에게 아직 남아 있는 옛 사고 방식이나 옛 습관이나 옛 행동들을 거부하고, 주님의 인도하심에 의지적으로 순종하여 그의 뜻대로 행해야 하는데, 그러한 의지를 회복시켜 주신 것이 바로 새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번째로 이 새사람에 대하여 한가지 더 이해해야 할 것이 있는데, 이 중생한 새사람은 세상에서 추구하는 것처럼, 하나님으로 부터 완전히 독립되어 자기의 지혜와 힘으로 하나님 없이도 살아가는 그런 사람이 되는 것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는 사실 입니다. 즉 중생도 중요하고 그리고 중생한 새사람으로 살면서 주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며 사는 성화의 과정도 중요하며 또 하나님 나라의 사역을 감당하도록 우리 각자에게 주시는 은사도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그런 은혜들을 통하여 하나님이 없이 살아가는 그런 존재가 새사람이 아닌 것입니다. 그것은 타락 전 에덴 동산에서 그렇게 온전하게 지음 받았던 아담과 이브가 결국 순식간에 뱀의 유혹에 넘어가 선악과를 따먹어 죄를 짓고 타락하고 말았던 것을 보면 알 수 있듯, 우리는 완전한 독립된 개체로서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라, 임마누엘의 하나님과 함께 하며 동시에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는 그런 존재가 바로 새 사람 즉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어린아이와 같은 존재인 것입니다. 그래서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을 쓴 울사이너스 자카리우스는 그의 요리문답 해설서에서 죄의 기원에 대해서 설명하면서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시험 가운데 두셔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보존되고 통제되지 않으면 사람은 스스로 선한 일을 전혀 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 주고자 하신 것 뿐이다”라고 말했던 것인데, 이렇게 임마누엘의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제자의 정체성이고 또한 그 임마누엘이 바로 새사람이 된 제자의 능력인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주님께서도 마 11:29에서 그의 제자들에게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고 말씀하셨던 것이며 이 비밀을 깨달은 바울 또한 빌 4:13 에서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고 고백했던 것입니다. 기도하옵기는 우리가 오늘도 매사 매순간 그렇게 주님의 겸손과 온유를 배우되, 십자가에 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그 사랑이 이미 우리들에게 넘치도록 부어졌고 또 우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주님께서 예수의 날까지 반드시 이루실 것을 확신하며 한 걸음 한 걸음 주님을 붙 쫓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소그룹 모임 가이드 및 예제 질문
Q1 오늘 마태 복음에서 말하는 우리 제자들의 정체성은 한편으로는 예수님의 대속 사역을 바탕으로 성령의 중생하게 하심을 통해 옛사람이 죽고 새사람으로 거듭났지만, 그렇게 새사람이 된 우리는 오히려 어린아이와 같이 주님의 임재를 누리며 더욱 그의 은혜를 의지하게 된다고 하는데, 우리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서, 우리가 점점 그렇게 변해져 가고 있는지 돌아 보고, 여러분들의 경험과 생각을 서로 나누면서 은혜 나눌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Q2 그리고, 그래서 마태는 주님께서 마11:28에서 그의 겸손과 온유, 즉 하나님 앞에서 전적인 무능을 고백하고 전적인 의존으로 나아가는 겸손과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전적으로 순종하는 온유한 성품을 그에게서 배우라고 말씀하셨는데,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성화는 더욱 겸손해 지며 더욱 온유한 사람으로 변해가는 것임을 알 수 있는데, 자기의 신앙 여정을 돌아보며, 점점 겸손하고 온유한 성품을 덧입어 가고 있는지 돌아보고, 자기의 경험과 생각을 서로 나누며 은혜도 함께 나눌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축복합니다.
기도 노트
( 오늘 말씀중 깨달아진 하나님의 성품 ) 하나님 아버지!
( 지난 한주간 혹은 오늘 하루 동안 감사한 일들 ) 해 주심에
찬송과 감사와 영광을 주님께 올려 드립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 깨닫게 해주신 죄 )를 깨닫게 해주셨음에 감사하며,
회개할 때에 용서해 주옵시고 이제 ( 새 삶 )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 주옵소서
특별히 오늘 말씀을 통하여 ( 새롭게 배운 점 ) 을 가르쳐 주심에 감사하며
( 삶의 도전 ) 살 수 있도록 은혜를 더하여 주옵소서
( 주님의 성품 ) 우리 주님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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