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창세기 24:62-67,26:1-6,13-25 암송 구절 창 26:24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예배자를 찾으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의 예배를 통해 올려 드리는 모든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기쁘게 받으실 줄 믿습니다.
지난 시간 우리는 창 14-25에 이르는 아브라함의 인생 일대기를 살펴 보면서, 우상 장사꾼이었던 아브람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 집을 떠나, 가나안에 정착하는 과정에서 그가 이제껏 의지해 왔던 장사술과 임기 응변력과 함께 의지했던 롯을 내려 놓고 마침내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으로 성장하기 까지 하나님의 견인의 은혜를 살펴 보았습니다. 이번 주에 우리는 아브라함이 100세 얻은 이삭의 삶을 살펴 보기를 원하는데, 그는 아버지 아브라함처럼 대단한 믿음의 거장도 아들 야곱처럼 뚝심으로 마침내 12명의 아들을 낳아 이스라엘 12지파의 선조도 아니었으며, 그의 손자 요셉처럼 인내하는 가운데 마침내 요셉의 총리가 되어 온 세상에 큰 기근이 닥쳤을 때 그의 아버지 야곱의 온 가족 뿐 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을 구하지도 않았습니다만, 그는 버젓이 족장의 반열에 올라, 하나님의 성호가 언급될 때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 부르시는 은혜를 입었습니다. 우리 함께 그의 인생사를 한번 살펴 보면서, 은혜를 나눌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1) 이삭은 아버지 아브라함이 100세 그리고 어머니 사라가 90세에 태어났고, 어릴 때는 이복 형인 이스마엘의 놀림을 받으며 자라났는데, 그가 15세 (혹은 30세) 때에 아브라함을 따라 나섰다가 모리아 산에서, 하나님의 명령데로 아버지 아브라함이 그의 아들 이삭을 번제로 바치려 하였을 때,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고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묶여 재단에 올려져 죽을 뻔 하다, 하나님의 사자가 나타나 그를 구해 주었던 그런 경험을 하였는데,
2) 그후 그가 37세 때 어머니 사라가 죽어 헤브론 막벨라 굴에 장사되 자, 아버지의 집인 헤브론을 떠나, 네게브 지역에 거주하였는데, 40세의 어느 날 저물 때에 들에 나가 묵상하던 중에, 아버지의 종 엘리에섹이 그의 친척들이 머무는 고향 밧단아람 나홀의 성에서 데려온 그의 질녀 리브가와 결혼하였고, 그가 60세 때, 리브가가 임신하지 못하자 하나님께 간구하여 쌍둥이 에서와 야곱을 낳았으며, 75세 때 아버지 아브라함이 죽자 그를 어머니 사라가 장사된 막벨라 굴에 합장하고 브엘라해로이 근처에 거주하며 살았습니다.
3) 그런데, 그 땅에 흉년이 들자, 여호와께서 그에게 나타나셔서,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네게 지시할 땅에 거주하면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시고 복을 주어,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맹세로 약속하신 것을 이루어, 그의 자손을 번성하게 해 주고, 그의 자손으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게 해 주겠다고 하시자, 이에 이삭이 그랄로 가서 블레셋 왕 아비멜렉에게 이르렀습니다. 거기 거하였는데, 그 곳 사람들이 아내에 대하여 묻자, 그의 아버지 아브람이 그랬던 것처럼, 리브가가 그의 누이라고 속였고, 시간이 지나 이삭이 리브가를 껴 안는 것을 블레셋 봄으로 그의 거짓말이 들통이 나 버렸고, 이에 아비멜렉 왕이 엄명하여, 이삭과 리브가를 범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4) 그리고 그 땅에 농사를 지어 여호와께서 복을 주심으로 그 해에 백배나 얻었고 창대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블레셋 사람들이 그를 시기하여, 그 아버지 아브라함이 판 우물들을 흙으로 매웠고, 아비멜렉 왕마저 나타나 떠나라고 하자, 이삭이 그랄을 떠나 그랄 골짜기에 장막을 치고,거기서 거주하며, 옛날 아버지 아브라함이 팠지만, 그 후 블레셋 사람들이 메워버렸던 우물을 다시 팠지만, 그랄 목자들이 그 우물이 자기들 것이라고 하자, 그들에게 우물을 양보하고 또 움직여 다른 우물을 팠지만 또 와서 다투었기에 또 양보한 후 또 움직여 다른 우물을 팠는데 이제 그들이 와서 다투지 아니함으로, 그곳을 르호봇 즉 장소가 넓다는 뜻을 가진 르호봇이라 이름을 짓고 살다가, 마침내 가나안 땅인 브엘세바로 올라와 그곳에 머물렀는데, 밤에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나는 네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하지 말라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이 번성하게 하리라”고 하시며 언약을 다시 확인해 주시자, 이삭이 그곳에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그곳에 장막을 쳤고 이삭의 종들이 그곳에서도 우물을 팠습니다.
5) 그런데, 그때 아비멜렉 왕이 와서,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으므로 평화의 계약을 맺으러 왔다”고 하자 후히 대접하여 맹세를 한 후 떠났는데, 그 날에 이삭의 종들이 자기들이 판 곳에서도 물이 나왔다고 보고 하자 그가 그 이름을 “일곱” 혹은 “맹세”라는 뜻의 세바라 하였는데, 그것은 아버지 아브라함이 이곳 브엘세바에서 블레셋 왕 아비멜렉과 평화의 조약을 맺을 때, 암양 새끼 일곱을 아비멜렉에게 주어 증거를 삼았기에, 브엘세바 즉 “일곱의 우물” 혹은 ‘맹세의 우물”이라 이름 불렀는데, 이삭이 그 이름을 다시 붙인 것이었습니다.
6) 오늘 본문을 통해서 몇가지 은혜 나누기를 소망하는데, 첫째, 이삭의 순종의 성품에 대한 것입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이 “너의 사랑하는 아들 이삭을 바치라”하는 하나님의 시험에 순종하여, 3일을 걸어 모리아 산에 가서, 아들을 결박하여 제단 위에 올려 놓고 칼을 빼어 치려 함으로 순종의 종이 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장면에서 순종한 사람이 한 사람이 더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더불어 이삭 또한 115세 (혹은 130세)의 노쇠한 아버지에게 순종하여 순순히 결박 당하여, 제단 위에 올려 졌는데, 그것은 또한 이삭의 순종이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아브라함을 통해서 사랑하는 아들을 재물로 바치는 아버지의 마음을 느낄 수 있다면, 이삭의 순종을 통해서 자기 몸을 모든 사람들의 대속물로 십자가에 드리신 예수님의 순종을 함께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두번째로 우리가 생각해 보아야 하는 것은 이 순종은 온유한 마음으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 온유함(히브리어 עָנָו, anaw, 아나우/헬라어 πραΰς, praus, 프라우스)은 원래 비천한, 억압된 노예 상태에 있는 것을 의미하는데, 거기서 전의되어 자기를 하나님의 비천한 종으로 여기고 하나님의 길이 우리의 길보다 높음을 인정하고 우리의 삶을 위한 그분의 계획과 하나님의 능력을 신뢰하기에,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르기 위해 자신의 욕망과 야망 그리고 심지어 목숨까지도 내어 놓고 하나님의 뜻에 완전히 순종하는 것이며, 또한 그러하기에 온유함은 자신 보다 다른 사람이 필요를 우선시하며 이웃 사람에 대하여 노하든가, 교만한 생각을 품지 않는 것인 바, 그래서 그랄 사람들이 우물에 대해 억지 주장을 부릴 때도 양보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벧전 2:12&19 에서 “부당하게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아름”답다고 하면서 “너희 선한 일을 보고 오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하셨던 것인데, 이렇게 온유한 모습으로 늘 양보하는 이삭을 보고 그랄왕 아비멜렉이 와서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다”고 하며 그와 평화의 조약을 맺으려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마지막으로 우리가 한번 더 깊이 생각해 보기를 원하는 것이 있습니다. 이삭이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순종하여 결박되어 제단에 올려진 때가 15세 혹은 30세로 추정하고 있는데, 최악의 경우 15세에 그런 일이 발생했다고 한다면, 그런 일을 겪은 이삭의 마음이 어땠을까 하는 것입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15살 청소년이 그런 경험을 한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을 줄 믿습니다. 그래서, 아마도 그가 37세 때 어머니 사라가 죽자, 더 이상 아버지 아브라함과 같이 살 수 없어서, 혼자 네게브로 가서 혼자 살았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 공식적 애도 기간이었던 30일 혹은 70일 (창 50:3; 민 20:29; 신 34:8) 보다 아주 긴 3년 동안이나 어머니를 잊지 못하고 있었으며, 네게브 광야에서 묵상 하던 중 마침내 40살이 되어, 리브가를 아내로 맞아 들임으로 위로를 얻었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의 온유함이 하나님과 아버지를 넘어, 그랄 사람들에게까지 이를 수 있었던 것은 이런 뼈 아픈 고통의 경험을 통해서, 영글어진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기도하옵기는 우리 모두도 때때로 어렵고 힘든 과정이 있더라도 혹은 심지어 마음 깊은 상처가 있다 하더라도 우리 주님께 나와 말씀으로 치유 받고 회복되어 마침내 온유의 사람으로 세워져 땅을 기업으로 받는 복을 누릴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Activity questions and thought behind
Q1오늘 본문에서 보면 리브가가 잉태하지 못하자 이삭은 하나님께 기도하였고, 이에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어 주셔서 쌍둥이 에서와 야곱을 낳았다고 말씀하고 있는데, 이 부분은 아버지 아브라함과는 다른 접근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아브라함이 사라의 불임 문제로 기도하였다는 말씀은 성경에 나와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실은 내가 할 수 없기에,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는 하나님께 도우심을 구하는 것이 기도의 시작인 바, 어떻게 보면, 이삭은 이미 그 때 스스로가 해결할 수 없을 때 기도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혹 여러분들의 삶을 돌아 보면서, 사방 팔방으로 욱여쌈을 당하였는데, 세상의 모든 방법이 막혀 있다고 느꼈을 때, 열려 있는 하늘을 향해 기도함으로 문제를 해결받은 경험이 있다면, 또 이러한 것이 바로 기도임을 깨달았다면, 서로의 경험과 생각과 깨달음을 팀원들과 나누면서 은혜 받을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이 질문을 통하여, 결국 온유한 사람은 또한 기도의 사람이란 것을 우리가 깨달을 수 있기를 소망하는데, 우리의 비참함과 하나님의 전지 전능함이 만나는 자리가 바로 기도의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다양한 생각과 의견과 감정과 경험을 표현할 때 공감해 주시면서, 때때로 생각의 이유도 물어 보시면서 멤버들과 적극적 경청과 공감의 대화를 나누실 수 있으시기를 소망합니다.)
Q2 저는 이삭의 인생 여정을 보면서, 우리 믿음의 2세 혹은 후손들의 삶에 대해서 묵상해 보았습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대부분 믿음의 1세들은 아브라함처럼, 세상에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을 쫓는 과정에서 내려놓음도 경험하고, 믿음과 성결과 인내와 순종의 사람으로 세워지는 과정에 여러가지 환난과 고난을 통과하는 풍파가 많은 세월을 보내는 경우를 보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믿음의 2세들은 실은 또 다른 형태의 신앙 모습을 보이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들은 아브라함처럼, 부르심을 받아, 인생의 부침을 통과하면서 내려놓음과 성장의 삶을 살지 않았지만, 그들이 가지고 있는 이삭과 같이 온유함은 또한 그들 만의 고난(?)을 겪은 후 색다른 신앙 색깔을 형성하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 혹 여러분들 중에 믿음의 2세 혹은 3세가 있다면, 가정에 믿음의 1세의 신앙 여정이 자신들과 어떤 면에서 같고 또 다른지 한번 생각해 보시면서, 서로 은혜 받을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이 질문을 통해서, 모든 사람은 모두 다른 신앙의 경험과 모양과 색깔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각각의 다른 그런 경험들 모두 소중한 것임을 알고 서로 존중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다양한 생각과 의견과 감정과 경험을 표현할 때 공감해 주시면서, 때때로 생각의 이유도 물어 보시면서 멤버들과 적극적 경청과 공감의 대화를 나누실 수 있으시기를 소망합니다.)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축복합니다.
기도 노트
( 오늘 말씀중 깨달아진 하나님의 성품 ) 하나님 아버지!
( 지난 한주간 혹은 오늘 하루 동안 감사한 일들 ) 해 주심에
찬송과 감사와 영광을 주님께 올려 드립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 깨닫게 해주신 죄 )를 깨닫게 해주셨음에 감사하며,
회개할 때에 용서해 주옵시고 이제 ( 새 삶 )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 주옵소서
특별히 오늘 말씀을 통하여 ( 새롭게 배운 점 ) 을 가르쳐 주심에 감사하며
( 삶의 도전 ) 살 수 있도록 은혜를 더하여 주옵소서
( 주님의 성품 ) 우리 주님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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