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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17 창9-11 가이드

9:18-11:9 암송 구절 창11:9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참 예배자를 찾으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의 예배를 통해 올려 드리는 모든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기쁘게 받으실 줄 믿습니다.

그리스 신화에 이카루스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카루스는 장인 다이달로스의 아들이었습니다. 다이달로스는 고대 그리스에 살았던 숙련된 장인이자 뛰어난 조각가요 건축가로 크레타 섬의 미노스 왕의 궁전에서 일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크레타 섬의 미노스 왕의 아내 파시파에(Pasiphae)가 크레타 섬의 황소와 사랑에 빠졌고 황소의 머리와 사람의 몸을 가진 생물인 미노타우로스를 낳았는데, 다이달로스는 미로와 같은 건축물을 지어 이 생물을 가두었습니다. 그런데 테세우스가 아테네에서 크레타 섬으로 와서 아리아드네의 도움으로 미노타우로스를 죽인 후, 크레타 섬을 떠났는데, 미노스 왕은 테세우스가 미로에서 탈출하도록 도와준 다이달로스에게 분노하여 그를 코노소스에 있는 그의 궁전 위에 있는 탑에다 다이달로스와 그의 아들 이카루스를 잡아 가두어 버렸습니다. 매우 모험심이 강한 이카루스가 세상을 탐험하고 싶어 안절부절 못하던 중에, 다이달로스는 새의 깃털을 모아 왁스로 붙여 날개를 만들어 궁전의 탑에서 탈출하려고 계획을 세운 후, 아들 이카루스에게 날개를 사용하여 나는 방법을 가르치면서, 아들에게 왁스가 녹을 수 있으니 태양에 너무 가까이 날지 말라는 것과 또 깃털이 바닷물의 습기에 젖지 않도록 너무 낮게 날지 말 것을 경고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은 날개를 이용해, 함께 탑에서 날아올라 크레타 섬을 탈출했는데, 그런데 날아다니는 자유에 심취한 이카루스가 그만 아버지의 경고를 잊어버리고 점점 더 높이 날기 시작하더니, 마침내 뜨거운 태양으로 인해 밀랍이 녹아 내려 바다에 빠져 익사하고 말았습니다. 이 그리스 신화는 하늘을 날고 싶어하는 인간의 욕망에 대하여 인간의 과욕을 경계하라는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오늘 본문에도 보면, 원시 역사 시대의 인간의 극악한 죄와 죄성으로 홍수 심판을 겪은 후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남은 노아와 그의 세아들들이 다시 땅에 번성하기 시작했는데, 그들의 자손들 중에는 또 다시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하여, 하늘 같이 높은 탑을 세워 자기의 이름을 내려 하는 교만한 생각을 품고 흩어짐을 면하자며 하나님께 반역한 바벨탑 이야기가 나오는데, 우리 함께 살펴 보면서, 은혜 나눌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1) 이제 창세기 6~9장까지 원시 역사 시대에 대한 홍수 심판과 그 후 노아와 그의 자손 그리고 방주를 통해서 살아 남은 생물들과 노아 언약 즉 보존 언약을 맺어 주신 이야기를 지나, 홍수 사건 이후 노아의 아들들인 셈과 함과 야벳으로 부터 사람들이 온 땅에 퍼지는데,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의인이요 당대의 완전한 자요 하나님과 동행했던 노아가 농사를 시작하여 포도나무를 심었는데, 어이가 없게도 그 포도나무에서 난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장막 안에서 벌거 벗은 채 잠을 자는 실수를 범하였는데, 함이 이를 보고 두 형제에게 알렸고, 셈과 야벳이 옷을 가져다 뒷걸음으로 들어가서 아버지의 하체를 덮어 주었지만,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술에서 깨어난 노아가 이 사실을 알고는 셈과 야벳은 축복해 주고, 함의 아들 가나안을 저주하였습니다. 왜 잘못을 저지른 함을 저주하지 않고 그의 손자 가나안을 저주하였는지에 대해서 여러가지 해석이 있습니다만, 어쨌든 가나안이 노아의 실수가 가족 전체에게 알려지게 한 원인을 제공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며, 또한 여기서 가나안에 대한 저주는 직접적인 저주라기 보다는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예언으로 이해하면 될 줄로 믿습니다.

2) 그리고 이어서, 10장에서는 노아의 아들들, 셈과 함과 야벳의 후손들에 대해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먼저 2-5절에서는 야벳의 후손들 14명이 소개되는데, 특별한 업적에 대한 언급이 없이 그들이 분포하여 살았던 지역이 ‘바닷가의 땅’이라고 하는데, 이 지역은 ‘소아시아와 유럽’을 가르키는 것으로 생각되며, 족보에 기록된 이름들 중에는 고멜과 마곡, 메섹과 두발은 겔 38:2-6에서 미래에 이스라엘을 공격할 북방의 강한 군대로 이해하면 되고, 마대는 사 13:17과 21:2 에서 바벨론을 공격할 민족으로 소개하는 바, 페르시아 제국의 한 축을 형성하여 티그리스 강 북쪽과 카스피해 인근에 살았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시스(달시스)는 요나가 달아나려 했던 곳으로 (욘 1:3), 왕상 12:22에서 솔로몬의 상선이 왕래했던 항구 도시로도 소개되고 있으며, 일반적으로 스페인의 한 항구 도시로 알려져 있습니다.

3) 그리고 이어서 6-20절에서는 함의 후손들 30명이 소개되어 있는데, 구스는 북동 아프리카 에디오피아 북부지역을 말하며, 미스라임은 이집트입니다. 붓도 에스겔 38:5에서 붓을 구스와 나란히 언급하는 것을 감안하면 아프리카의 한 지역이었을 가능성이 높으며 리비아 지역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가나안은 후에 이스라엘 민족이 들어가 살게 될 땅으로, 오늘 본문에는 다양한 민족들이 거론되어 있습니다. 함의 후손들 중 특히 눈에 띄는 것은 니므룻인데, 니므롯은 구스의 아들로 홍수이후 시날 땅에 바벨과 에렉과 악갓과 갈레에 성을 쌓아 처음으로 국가를 세웠고 마침내 앗시리아에 이르는 제국을 형성하였으며, 그 이름은 “높은 사람에게 반역하다”란 뜻으로 외경인 하가다 (Haggadah) 에서는 니므롯을 바벨탑을 쌓고 사람들이 하나님께 반역하도록 이끌었던 인물로 묘사하고 있으며, 그의 삶은 자기의 이름을 남기고 유명해 지기 위해 성을 건축했던 가인과 하나님 앞에서 살인과 전쟁을 일삼았던 네피림의 삶을 합쳐 놓은 삶을 살았는데, 함의 후손 니므롯이 바벨론과 앗시리아에 도시 국가를 건설한 것을 보면, 니므롯 당시에는 노아의 후손들이 한 지역에 모여 살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4) 그리고 이어서 21-31절에서는 셈의 후손 26명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셈의 후손들은 메소포타미아와 아라비아 반도 남단에 주로 위치했는데, 특히 셈의 증손자 에벨은 “건너다”란 뜻을 가지고 있므며, 히브리인 (עִבְרִי)의 시조로 알려져 있습니다. 에벨은 첫 아들을 낳고 벨렉이라고 이름 지었는데, 벨렉은 “나눔”이란 뜻으로, 벨렉의 때에 바벨탑 사건으로 인하여 언어가 나뉘고 한 지역에 살던 사람들이 흩어졌음을 증언하기 위해 붙여진 이름입니다. 그런데 10장이 에벨의 둘째 아들인 욕단의 자식들을 기록하는 것으로 끝나면서, 자신의 이름을 내려고 성과 탑을 쌓은 사건으로 이어지는데 반하여, 11:10-32에서 벨렉의 자식들의 족보가 끝나는 곳에서는 하나님이 그 이름을 창대하게 해 줄 아브라함의 이야기로 이어지는 점은 벨렉과 욕단이 어떤 사람이었는지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1]

5) 그리고 이어서 11장에는 바벨탑 사건이 기록되어 있는데, 홍수 사건이 있은 후, 약 100년후 일어난 일로, 홍수후 채 3세대만에 또 다시 하나님께 반역하는 일이 벌어진 것인데, 이 반역 사건은 그 당시 메소포다미아 지역에서 패권을 잡았던 니므롯에 의해 일어난 사건으로 보여집니다. 그 당시 노아의 후손들은 북부 아라랏산에 정착한 방주로부터 나와 점점 남하하여, 시날 땅에 이르렀는데, 니므롯이 이 지역에 바벨론과 앗수르등 주요 도시를 건설하여 그곳에 거류하고 있던 중, 니므롯이 벽돌과 역청으로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a) 탑 꼭대기가 하늘에 닿게 하여, b) 자기들의 이름을 내고, c)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고 제안하여 벌어진 사건인데, a) 탑 꼭대기가 하늘에 닿게 하자는 것은 하나님의 위치에 오르려는 교만한 행위였으며, b) 자기 이름을 내려 한 것은 홍수이전 가인의 행위와 비교할 수 있는데, 자신의 이름을 하나님의 이름과 나란히 세우려는 의도였을 뿐 만 아니라 c)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여 다스리라”는 하나님께 반란을 일으킨 행위였던 것인데, 니므롯의 이름이 “님(높은 사람)” + “마랏(반역하다)“로, “높은 사람에게 반역하다”는 뜻이었던 것처럼 하나님께 반역하려 한 것이었습니다.

6) 그런데, 이러한 반역 사건에 하나님께서는 가만히 있으시지 않고, 강림하셔서 그들의 행위를 보시고 그들이 한 민족이고 한 언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일어난 사건으로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아시고, 그들의 언어를 혼잡케 하여 온 땅에 흩으셨는데, 홍수 후에도 여전히 사람의 마음의 계획이 어릴 때부터 악한 것을 반증하는 것이며, 오순절 성령 강림시 방언을 통하여 서로 언어가 다른 사람들끼리 소통하는 현상이 일어난 것은 결국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되면, 다시 혼잡해진 언어가 통일되어 다시 서로 대화할 수 있음을 예표하는 사건이었던 것인데, 이렇게 하나님께서 온세상에 흩으신 징벌은 오히려 사람들이 온 땅에 흩어져 번성하는 계기가 되었는데, 우리는 여기서도 하나님의 주권과 은혜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7) 오늘 본문을 통해서 몇가지 은혜 나누기를 원하는데요. 첫번째 홍수후 노아로 부터 새롭게 시작한 자손들 중에도, 가인의 길을 걸으며 뱀의 후손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 주는 니므롯이 있다는 사실에서, 창 8:21 “사람의 마음이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고 했던 전적 부패성이 여전히 사람들을 지배하고 있을 뿐 만 아니라, 결국 일반 은혜의 강화로는 사람들의 죄성이 변화될 수 없다는 사실을 확증하는 사건인 바, 결국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은혜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존재임을 재차 확인하고 늘 겸손해야 함을 깨달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두번째로, 우리는 바벨탑 사건을 통해서 끝없이 자기 이름을 내려는 인간의 욕망을 발견하는데, 첫 살인자 가인도 여호와를 떠나 성을 쌓고 자기 아들의 이름 에녹이라고 이름 붙임으로 자기 이름을 내려고 했고, 원시 역사 시대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자기 이름을 내려 했다가 결국 패망하고 말았는데, 이제 홍수 심판을 겪은 노아의 후손들 마저, 또 자기 이름을 내려 하는 것을 보면서, 우리는 재물과 부요와 존귀는 여호와께서 주시는 것임(대하 1:12, 잠 22:4, 전 6:2)을 기억하고 하나님께서 그 이름을 창대하게 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아브라함의 믿음의 자손임을 잊지 말고 자기 이름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는 삶을 살면,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를 높여 주실 것인 바, 늘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는 삶을 살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그리고 세번째, 언어의 소통에 대해서 생각해 보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오늘 바벨탑 사건을 보면서, 언어가 혼잡하게 됨으로 말미암아 서로 소통하지 못하는 시대를 살게 된 것이 또한 인간이 스스로 하늘에 이르려는 교만과 또한 하나님의 재 창조 명령에 반역한 죄로 말미암은 것이었음을 알게 되었는데, 우리는 여기에서 우리의 언어가 하나가 되어 서로 소통할 수 있는 것도 중요하지만 또한 그러한 소통이 무엇을 목적으로 하고 있는가가 더욱 중요한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언어가 하나가 되어 서로 소통하되 그러한 소통이 하나님을 거역하고 반역하는 일에 쓰인다면 그것은 차라리 언어가 나뉘어 소통하지 못함만 못하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우리가 한마음이 되는 것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한마음이 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마음이 되어 무슨 목적으로 어떻게 행동하는가가 더욱 중요한 것임을 깨달아야 할 줄로 믿으며, 기도 하옵기는 우리 각 사람이 하나님의 이름을 높일 것인가 자기 이름을 높일 것인가 한마음이 된 소통으로 과연 어떤 것을 추구할 것인가 깊이 생각해 보고 늘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선택을 하면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Activity questions and thought behind

Q1 “바벨”은 바벨론 사람들에게는 “신의 문”으로 이해 되었지만, 히브리인에게는 “혼잡한”이란 의미였으며, 음성학적으로 보면, 바벨은 “의미없이 지껄이는 소리”라는 뜻이 있습니다. 따라서, 바벨탑 사건은 사람들의 눈에는 “신에 이르는 문”을 만드는 것이었지만, 히브리 사람들에게는 결국 하나님의 벌을 받아 온 세상의 언어가 “혼잡”하게 된 사건이었으며, 하나님의 눈으로 보면 인간들이 자기 멋대로 지껄인 소리에 불과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들의 삶도 그렇습니다. 잠 19:21 말씀처럼 “사람의 마음에는 많은 계획이 있어도, 오직 여호와의 뜻만이 완전히 설 것”입니다. 각자의 삶의 계획들을 돌아보며, 사람들 생각이 아니라, 또 우리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 보시기에 어떨지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고 서로의 생각을 나누면서 은혜 받을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이런 질문을 통해서, 우리의 삶의 모든 영역에서 사람들의 생각이나 자기의 생각을 우선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묻고 생활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다양한 경험들과 생각들을 이야기할 때 공감해 주시면서, 때때로 그렇게 생각하게 된 이유도 물어 보시면서 팀원들의 이야기에 대하여 적극적인 경청과 공감의 대화의 시간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Q2 오늘 본문을 보면, 결국 하나님의 개입하심이 있을 때, 우리의 삶이 변화를 받아 하나님 뜻대로 살 수 있음을 재차 확인합니다. 아무리 중생의 은혜를 입었다 하더라도 성령님의 인도하심과 그 뜻에 순종함이 없으면, 우리는 또한 아무 것도 이룰 수 없는 존재 임을 기억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서로의 삶을 돌아보면서, 혹 자기 뜻을 앞세우고 있는 부분은 없는지 확인해 보고 서로 생각하고 경험한 바를 나누며 은혜 나눌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이 질문을 통해서, 우리 중생한 크리스천마저 우리의 생각과 뜻과 계획과 힘을 앞세우면 아무런 것도 이룰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늘 성령과 말씀으로 충만한 삶을 사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다양한 경험들과 생각들을 이야기할 때 공감해 주시면서, 때때로 그렇게 생각하게 된 이유도 물어 보시면서 팀원들의 이야기에 대하여 적극적인 경청과 공감의 대화의 시간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축복합니다.

기도 노트

( 오늘 말씀중 깨달아진 하나님의 성품 ) 하나님 아버지!

( 지난 한주간 혹은 오늘 하루 동안 감사한 일들 ) 해 주심에

찬송과 감사와 영광을 주님께 올려 드립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 깨닫게 해주신 죄 )를 깨닫게 해주셨음에 감사하며,

회개할 때에 용서해 주옵시고 이제 ( 새 삶 )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 주옵소서

특별히 오늘 말씀을 통하여 ( 새롭게 배운 점 ) 을 가르쳐 주심에 감사하며

( 삶의 도전 ) 살 수 있도록 은혜를 더하여 주옵소서

( 주님의 성품 ) 우리 주님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1] 기동연. (2016). 창조부터 바벨까지: 창세기1–11장 주석 (초판, pp. 319–328). 생명의 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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