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4:16-26, 5:1-8,21-32, 암송 구절 창4:26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참 예배자를 찾으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의 예배를 통해 올려 드리는 모든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기쁘게 받으실 줄 믿습니다.
옛날에 임금이 한 신하를 불러 “이 우물 물을 다 길어서 저기 밑 빠진 독에 가득히 채우시오” 라며 이상한 명령을 내렸습니다. 밑 빠진 독에 물이 채워질 리가 없겠지만, 그러나 충성스러운 신하는 오직 임금의 명령만 생각하면서 밤낮으로 물을 길어 날랐습니다. 결국 우물 바닥이 드러나고 말았는데, 그런데 우물 바닥에 무엇인가 번쩍이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것은 엄청나게 큰 금 덩어리 였습니다. 신하는 임금 앞에 무릎을 꿇고는 “임금님, 용서 하여 주십시오. 독에 물을 가득히 채우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우물 바닥에서 이 금덩이를 건졌나이다”라고 보고를 했더니 임금은 빙그레 웃으면서 “밑 빠진 독에 물을 채우겠다고 우물이 바닥나도록 수고했구려. 그대는 참으로 충성스러운 신하요. 그 금덩이는 그렇게 순종하는 신하를 위해 준비된 것이라오.”라고 말하며 그 금덩이를 충성스런 신하에게 주는 것이었습니다. 임금은 어떤 생각으로 그 명령을 내렸던 것일까요? 또 그 신하는 어떤 생각을 하며 임금의 명령을 수행했을까요? 때때로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어느 쪽에 관심을 두고 있는가에 따라 같은 일을 하면서도 다른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우물물을 다 길어 내는 쪽에 초점을 맞출 건인가? 밑 빠진 독에 초점을 맞출 것인가? 에 따라 그 결과는 달라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창 4장과 5장에 보니, 원시 역사 시대 두 계보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한쪽 계보의 사람들은 비록 선악과를 먹고 에덴 동산에서 쫓겨 났지만 그래도 함께 해 주시는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살면서, 하나님을 예배하고 찬양하며,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하나님의 구속사에 참여하는 복을 누렸는데 반하여, 다른 한편의 계보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앞을 떠나 자기 생각대로 살면서, 자기의 이름을 내기 위하여 성을 쌓지만, 그러나 결국은 도망자와 방랑자로 살면서, 악행을 일삼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우리 함께 보시면서 은혜 나눌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1) 오늘 본문 창세기 4-5장은 이제 죄를 짓고 하나님의 동산에서 쫓겨난 아담과 이브가 자녀를 낳고 살아가는 원시 역사 시대에 대해서 서술하고 있는데, 아담의 첫째 아들 가인의 후손들 6대에 대한 계보가 4장에 서술되어 있고, 둘째 아들 아벨이 죽은 후 다시 얻은 셋째 아들 셋의 후손들 8대에 대한 계보가 5장에 서술되어 있는데, 연대로 보면 BC 4000 여년경부터 홍수가 일어난 BC 2500 여년경까지 약 1500년간의 원시 역사 시대에 대해 기술하고 있으며, 이 때 인간의 수명은 약 1000년에 육박하는 것으로 나와 있습니다.
2) 그런데, 이 원시 역사 시대의 인간의 모습은 선악과를 따 먹고 선과 악을 인간 스스로 정하며 살았기에, 가인이 그랬던 것처럼 사람을 죽이는 등 폭력이 만연 했음을 알 수 있는데, 특히 가인의 5세손인 라멕은 자기에게 상처를 입히는 사람을 죽였다고 자랑스럽게 말하면서, 아벨을 죽인 가인을 해 하는 자가 하나님께 일곱 배의 벌을 받을 진 대 자기를 해하는 자는 자기가 일흔 일곱 배의 보복을 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결국 이러한 완악함과 폭력 등 죄악이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하나님께서는 6장에서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사람과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를 홍수로 심판하실 것을 결심 하시는데, 이렇게 원시 역사가 가르쳐 주는 교훈은 결국 인간 스스로의 판단과 행위로는 모든 인류가 하나님의 심판을 면하기 어렵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3) 4장에 나오는 가인의 후손들 6대, 즉 에녹, 이랏, 무후야엘, 므드사엘, 라멕, 그리고 라멕의 세 아들, 야발, 유발 두발가인을 보면, 이 계보에는 하나님께서 동생 아벨의 제사만 받아 주시고 자기 제사는 받아 주시지 않자, 이를 시기하여 동생을 죽이고, 하나님께서 서로 도우며 보호하며 살라는 명령도 거부하면서, 하나님께서 내리신 죄의 형벌 – 1) 땅으로부터의 저주를 받음과 2) 도망자와 방랑자와 될 것 - 마저 과하다고 하며 하나님께 반역한 가인을 따라, 마음에 상처를 주거나 (여기에 사용된 히브리어 פֶּ֫צַע, pesa, ‘페사’는 피부의 베임이나 갈라짐 등의 상처를 말하기도 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죄나 방해로 입는 마음의 상처를 말하기도 함) 혹은 자기에게 상처를 준 사람들 (여기에 사용된 히브리어 חַבּוּרָה, habburah, 하부라는 주먹이나 무기로 때리는 것 혹은 피부가 베이거나 갈라지는 등의 상처를 말함[1])을 죽이고도 자기를 헤아려는 사람들에게는 일흔 일곱배의 보복을 해 주겠다는 라멕으로 특징지어 지는데, 특히 오늘 본문 16절에서 가인이 여호와 앞을 떠나서 에덴 동쪽 놋 땅 (방랑자 즉 노드의 이름을 따 놋 즉 방랑자의 땅으로 불려지게 됨)에 거주하였다고 말하고 있는데, 이와 같이 가인과 그의 자손들은 하나님 없이 사는 삶을 살기 시작하였으며, 비록 그곳에 성을 쌓고 살았지만, 놋의 의미가 방랑자의 땅이라고 명명되었듯 도망하고 방랑하는 삶을 살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4) 그리고 5장에서는 셋의 후손 8대, 즉 에노스, 게난, 마할랄렐, 야렛, 에녹, 므두셀라, 라멕, 노아가 나오는데, 이 계보에는 공예배를 처음 드린 에노스와 하나님께 찬송이란 이름을 가진 마할랄렐과 하나님과 동행하다 하나님께서 데려가신 에녹과 수고롭게 일하는 우리를 이 아들이 안위할 것이라는 이름을 가진 노아로 특징지어 지는데, 이들은 하나님을 예배하고 찬양하며, 하나님과 동행함으로, 그가 죽으면 홍수(심판)이 올 것이라는 뜻을 가진 므두셀라와 첫죄로 말미암아 땅이 저주를 받아 수고하는 우리들을 홍수 심판으로 통하여 오히려 안위 즉 구속해 주실 것이라는 뜻을 가진 노아 등, 하나님의 구속사에 대한 예언의 말씀을 받아 생활하며 종교적 행위를 통하며 하나님과 함께 하는 복을 누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5) 오늘의 본문을 통하여 몇가지 은혜 나누기를 원하는데, 첫번째, 가인의 6세손인 야발은 가축을 치는 자의 조상으로, 유발은 수금과 퉁소 잡는 모든 자의 조상으로, 그리고 두발가인은 (비록 BC 2300 년대의 청동기 시대와 BC 1600년대의 철기 시대보다 앞서 홍수전 BC 3000 년경의 원시 역사 시대에도 이미 구리와 쇠가 있었음 반증함)은 구리와 쇠로 여러가지 기구를 만드는 자로 묘사되고 있는데, 이것을 보면 가인의 후손들은, 문화와 예술과 문명의 발달에 종사하면서 여전히 하나님의 문화 명령을 이행하고 있음을 알 수 있으며, 또 대장장이라는 뜻이 있는 게난 즉 셋의 후손을 통해서도 문화 명령이 수행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가인의 후손이 문화의 발달에 만 종사하였던 반면, 셋의 후손은 문명의 발달과 더불어 종교적 행위를 함께 하였음을 보여 주고 있는데, 이를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께서는 다양한 민족을 통해 문화와 문명을 발전시켜 가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안토니 후크마도 “정치, 문화, 문명, 종교의 모든 영역에서의 우리 (비신자도 포함) 의 노력들은 새 하늘 새 땅을 만드는 재료로 사용되어진다”고 말했던 것인데, ‘나는 과연 하나님 나라에서 어떤 일에 부름을 받고 있는지?’, ‘나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소명은 무엇인지?’ 각자가 한번 돌아보는 시간이 되면 좋겠습니다. 두번째로는 두 계보 간의 삶의 대조가 두드러지게 나타나는데, 아담과 이브의 아들인 가인이 자기의 생각으로 제사를 드린 반면 이벨은 믿음으로 제사를 드렸고, 3대인 가인의 아들 에녹은 자기의 이름을 내려 했지만 셋의 아들 에노스는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하나님을 높이려 했으며, 7대인 가인의 자손 라멕은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살인을 자행하며 오히려 교만했던 반면 셋의 자손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등 그 행보에 있어서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모습들을 살펴 보면서 과연 나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지 않나 생각해 보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세번째로는 여기 등장하는 이름들의 의미를 한번 살펴 보면 좋겠는데요. 무슨 말인가 하면 “에녹”이란 히브리 단어는 dedication 즉 헌신, 전명의 뜻이 있는데, 가인의 아들 에녹은 자기의 이름을 내는데 뜻을 두었다면, 셋의 5세손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일에 뜻을 두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과연 나는 무엇에 전념/헌신하고 있는가 고민해 볼 필요가 있는 대목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히브리어로 “라멕”은 낮추다라는 뜻이 있는데, 가인의 6세손 라멕이 폭력과 살인으로 남을 낮추는데 온 힘을 쏟은 반면 셋의 8세손 라멕은 아들 노아를 낳고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시므로 수고로이 일하는 우리를 이 아들이 안위하리라”고 하며 인간의 비참한 실존을 깨닫고 자기를 낮춘 것을 볼 수 있는데, 과연 나는 나를 낮추는 삶을 사는지 아니면 남을 낮추고 자기가 올라가려 하는 삶을 사는지 고민이 되는 대목입니다. 기도 하옵기는 오늘 우리 모두가 원시 역사를 교훈 삼아, ‘나는 하나님과 동행하고 있는가?’, ‘나는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가?’, ‘나는 믿음으로 살고 있는가?’, ‘나는 무엇에 나를 드리고 있는가?’ 그리고 ‘나는 점점 겸손해 지고 있는가?’ 등 이런 질문들을 하면서 하루 하루 하나님을 높여 경배 찬양하되 자기를 낮추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소그룹 모임 가이드 및 예제 질문
Q1 우리들은 모두 이름이 있으며, 각자의 이름에는 그렇게 이름 지어진 배경이 있고 또 뜻이 있을 줄 믿습니다. 자기의 이름이 어떤 배경과 뜻이 있는지 한번 알아 보시고 또 자기의 이름이 자기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한번 생각해 보시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이 질문을 통하여, 자신과 상대방에 대해 서로 더 알아가는 시간이 되면 좋겠습니다.)
Q2 오늘 우리는 원시 역사 시대를 살아갔던 사람들의 삶과 그들의 이름들을 살펴 보면서, ‘나는 하나님과 동행하고 있는가?’, ‘나는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가?’, ‘나는 믿음으로 살고 있는가?’, ‘나는 무엇에 나를 드리고 있는가?’ 그리고 ‘나는 점점 겸손해 지고 있는가?’ 등등 여러가지 도전적인 질문들을 스스로 에게 던져 보았습니다. 혹 이들 질문들 중 자기 마음에 와 닿는 한 두가지 질문에 대해서 생각해 보시고, 각자가 가진 생각을 서로 나누면서 은혜 나누기를 소망합니다.
(이 질문을 통해서, 각자의 삶을 돌아보고 또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한번 고민해 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축복합니다.
기도 노트
( 오늘 말씀중 깨달아진 하나님의 성품 ) 하나님 아버지!
( 지난 한주간 혹은 오늘 하루 동안 감사한 일들 ) 해 주심에
찬송과 감사와 영광을 주님께 올려 드립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 깨닫게 해주신 죄 )를 깨닫게 해주셨음에 감사하며,
회개할 때에 용서해 주옵시고 이제 ( 새 삶 )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 주옵소서
특별히 오늘 말씀을 통하여 ( 새롭게 배운 점 ) 을 가르쳐 주심에 감사하며
( 삶의 도전 ) 살 수 있도록 은혜를 더하여 주옵소서
( 주님의 성품 ) 우리 주님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1] (2017). In The Lexham Analytical Lexicon of the Hebrew Bible. Lexham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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