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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1 계3 소그룹 가이드

본문 계3:7-13, 암송 구절 계3:8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예배자를 찾으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의 예배를 통해 올려 드리는 모든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기쁘게 받으실 줄 믿습니다.

포스트 모던 후기 사회로 넘어 오면서, 우리 크리스천들은 안팎으로 다양한 도전들을 받고 있습니다. 밖으로는 이제 기독교가 전도하는 것조차도 제한 받고 동성애등 여러가지 성경적 죄들을 죄라고 하는 것 마저도 도전받는 그런 상황에 처해 있을 뿐 만 아니라, 풍요하고 편리한 세상에 살고 있다보니 그저 세상과 타협하고 싶은 그런 유혹이 내면에서 우리를 유혹하고 있는, 바햐흐로 마지막 종말의 시대를 살고 있다는 것이 점점 실감되어 집니다. 이러한 때에 오늘 계 3:7-13 빌리델비아 교회가 어떻게 당시에 유대인들과 로마 제국으로 말미암는 핍박과 환난을 이기고 주님의 칭찬을 들을 수 있었는지 살펴보고 우리도 은혜 받을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1) 오늘 본문은 계시록에 나오는 말씀으로, 계시록은 사도 요한이 밧모 섬에 유배되어 있을 때에, 성령의 계시를 받아 터키 중서부 지역에 있는 일곱 교회들에게 보낸 서신서인데, 그 주제는 동시대 예루살렘과 시리아와 터키와 그리스와 로마 등등 각지에 흩어져 있던 주님의 교회들이 사단의 회라 지칭한 유대인들의 핍박과 로마 제국의 황제와 우상숭배 강요와 압제를 받고 있었을 때에, 주님의 교회를 대표하여 터키 중서부 지방에 위치한 일곱교회에 이러한 도전들을 역사의 주권자되신 하나님과 이미 사단과 세상을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를 힘입어, 끝까지 인내하고 잘 견뎌냄으로써 마침내 마지막 날에 도래할 새하늘 새 땅에서 하나님의 상급을 받고 생명의 면류관을 받을 수 있기를 소망하며 격려하는 내용의 편지입니다.

2) 일곱 교회에게 각각 주신 주님의 말씀을 살펴보면, 에베소 교회는 사역도 많이 하고, 수고로 인내하며 진리를 붙듦으로 한편으로는 칭찬을 받았지만, 반면 첫사랑을 버렸기에 주님의 책망을 받았습니다. 그렇지만 주님께서는 첫사랑을 회복하라고 권면하시면서 이기는 자에게는 하늘 나라의 생명을 주시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그저 소리나는 꾕과리일 뿐이고, 우리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요, 또 우리가 우리에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우리의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도 없는 것입니다. (고전 13:1-3) 그리고 버가모 교회와 두아디라 교회는 그들의 믿음과 사랑과 인내는 칭찬 받았지만, 진리의 말씀을 타협하여, 발람과 니골라당 그리고 이세벨의 교훈을 용납함으로 책망 받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진리의 검,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거짓 교훈과 싸우리고 권면하시면서, 이기는 자에게는 세상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시겠다는 약속을 하셨습니다. 이 세 교회들을 보건데, 주님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것도 참 중요한 일이지만, 사랑과 진리를 지키는 것이 더욱 중요한 일임을 알 수 있습니다.

3) 그리고 사데 교회는 살아 있는 것 같지만 실은 죽어있는 교회라고 하시면서 크게 책망을 하셨는데, 심지어 주님께서는 그들에게도 사데 교회 안에 있는 주님과 동행하는 몇몇 사람들을 처럼, 회개하고 돌아오라고 권면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라오디게아 교회는 한마디로 스스로 부유하고 진리를 안다고 자처했던 교만을 책망하시면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회개하고 주님을 마음의 주인으로 모셔들여 따르라고 권면해 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교만은 인간의 마음 가장 깊은 곳에 위치한 근원적인 죄악으로 결국 죽음으로 인도하는 바, 우리가 반드시 피해야 함을 알 수 있었습니다.

4) 그렇지만, 주님께서는 서머나 교회는 칭찬 하셨는데, 그들이 가난한 가운데에서도, 유대인의 핍박을 이기고 로마 제국의 황제와 우상들에 절하지 않음으로 그들의 믿음을 지켰기 때문이었는데, 실은 이 서머나 교회는 폴리캅주교로 유명하며, 폴리캅은 그가 주님의 이름을 부정하면, 살려 주겠다고 유혹을 받았을 때, 지난 86년 동안 주님은 한번도 나에게 잘못하시지 않으셨는데, 어찌 내가 나의 왕이시요 구원자되신 분을 배반하겠습니까?” 라고 말하면서, 화형을 당함으로 순교하였습니다.

5) 그리고 오늘 본문에 나오는 빌라델비아 교회도 주님께 칭찬을 받았는데, 오늘 성경 본문 말씀을 보면,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진이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도 믿음을 지켰음을 칭찬”하시면서 “그들 앞에 열린 문을 두고, 사탄의 회당이 그들의 발 앞에 절하게 함으로 주님께서 그들을 사랑하는 줄 알게 하실 뿐 만 아니라 마지막 시험의 때에 그들을 견인하셔서 마침에 하나님의 성전의 기둥이 되게 하시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기도하옵기는 우리들 모두도 주님께 대한 믿음을 지킴으로 주님으로부터 칭찬도 받고 약속하신 축복을 받아 누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6) 오늘 본문을 통하여, 몇가지 은혜를 나누기를 원하는데, 첫째, 8절에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다”는 말씀에 나오는 열린 문은 무슨 의미일까요? 예 어떤 분들은 골 4:3 “하나님이 전도할 문을 우리에게 열어 주사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하게 하시기를 구하라”는 말씀을 근거로 하여, 이 열린 문을 빌라델비아 주변 도시를 향한 복음 증거의 문이라고 해석하기도 하는 것 같은데, 물론 이 해석도 가능한 해석이기도 하지만, 그 당시 빌라델비아 교회는 AD90 년에 열린 유대 랍비들의 얌니아 공의회에서 최종적으로 결정한 바와 같이 유대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하는 모든 사람들은 회당에서 파문당하고 유대 공동체로부터 추방당하는 핍박을 받았는데, 이러한 상황에서 주님께서는 빌라델비아 교회에게 주님의 말씀을 지키고 주님의 이름을 배반하지 않은 이들에게 비록 그들이 유대인의 회당으로부터는 추방을 당하여, 유대인 공동체로 들어가는 문은 닫히게 되었지만,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하나님의 아들의 나라로 들어가는 문은 여전히 열려져 있음을 주지시킴으로 그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말씀인 것입니다. 물론 이 말씀이 빌라델비아 교인들에게도 큰 위로와 소망이 되었지만, 힘겨운 도전들로 넘쳐나는 마지막 시대를 살며 믿음을 지키는 모든 이들에게도 큰 격려와 소망이 되는 말씀인 줄로 믿습니다.

7) 그리고 두번째 10절에 보면 “내가 환난의 때를 면하게 해주리라”는 말씀이 나오는데, 혹자는 여기 헬라어 본문에 나오는 ἐκ (에크)라는 전치사를 from 즉 ~~으로부터라고 이해하여, 본문을 휴거에 대한 말씀으로 해석함으로, 본문을 대환난이 오기 전에 주님께서 신실한 성도들을 하늘도 불러 올려, 그들이 환난을 겪지 않도록 해 주시겠다는 말씀으로 해석하는데, 한편으로는 참 멋지고 귀에 솔깃한 해석입니다만, 이 해석은 본문의 의미와 사뭇 다른 해석입니다. 즉 오늘 본문 11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도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는 말씀이나, 요 17장15절에서 주님께서 제자들을 위해 기도하시기를 “내가 비옵는 것은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다만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라고 하셨던 말씀으로 볼 때, 오늘 본문에 나오는 헬라어 ἐκ (에크)라는 전치사를 from 대신 through 즉 ~~중에 로 해석함으로, 오늘 본문을 주님께서 그의 신실한 성도들을 대환난 가운데에도 견인해 주실 것이라는 약속의 말씀으로 해석하는 것이 바른 해석인 바, 빌라델비아 교회 성도들을 견인하셨던 주님께서 오늘의 어려운 시대를 사는 우리들도 견인해 주심을 믿고 끝까지 이기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8)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가지 더 살펴 보기를 원하는 것은 8절에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도다”는 말씀인데, 빌라델비아 교회가 어떻게 작은 능력을 가지고도 주님의 말씀을 지키고 주님의 이름을 배반하지 않을 수 있었는지 살펴 보기를 원합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그들이 작은 능력을 가지고 믿음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오히려 그들의 “작은 능력”에 있었습니다. 그들은 능력이 작았기에 숨어서 능력을 키운 것도 아니었고, 무슨 대단한 전략과 전술을 개발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능력이 작았기에 믿음의 타협을 한 것도 아니었으며, 혹은 코너에 몰린 쥐가 고양이에게 죽기살기로 대드는 것처럼 믿음의 도박을 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구약 이사야서에 나오는 히스기아 왕과 앗수르왕 산헤립의 이야기처럼, 군사적으로 열세였던 유다 히스기아 왕이 강력한 군사력을 가진 앗수르왕 산헤립이 예루살렘을 치러 올 것이라는 말을 듣고 여호와의 전에 올라가 기도함으로, 여호와의 긍휼하심을 입어 여호와께서 여호와의 사자들을 보내 앗수르의 대군을 쳐 죽였던 것처럼 (사 37:8-38) 빌라델비아 교회는 능력이 작았기에 오히려 겸손히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기도하였고, 이에 주님의 긍휼하심을 입어, 주님께서 보내 주신 능력으로 핍박과 환난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고전 10:13에서는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 말씀하셨던 것이며 또한 고후 12장 9-10절에서 바울은 “나의 여러 약한 것들을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며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그들이 작은 능력을 가졌기에 그들은 겸손할 수 있었고 그들의 겸손함이 결국 사단의 공격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9) 그래서 성경에서 겸손이라고 번역된 ταπεινός 타페이노스를 TDNT 에서는 “하나님 앞에서 자기의 무능을 깨닫고, 하나님의 은혜를 전적으로 의지하는 것”이라고 했던 것이며, 주님께서도 마 18:4 에서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라고 말씀하셨던 것인데, 왜냐하면 어린 아이와 같이 겸손한 사람은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여 자기로부터 무엇을 찾지 않고 온전히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기 때문입니다.

10) 그리고 이런 겸손에 대해 칼빈은 그의 책 “기독교 강요”에서, “만약 기독교의 미덕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그리고 항상 겸손이라고 대답할 것이다“라며, “우리가 아무것도 아니며 우리 속으로부터는 어떤 도움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을 때 우리 속에 모든 무기가 부러지고 전쟁이 끝나게 된다“ 고 말했던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성경에서 말하는 겸손은 강한 자의 겸양, 즉 자기 속에 뭔가 미덕과 힘이 있다고 생각하면서, 그저 사람들 앞에서 교만하게 자기를 드러내지 않는 것도 아니며, 또한 약한 사람들의 자기 비하도 아닌 것입니다.

11) 그러면 여러분 우리가 어떻게 이런 겸손을 배울 수 있을까요? 예. 주님께서는 마 11:29절에서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라고 하시며, 우리가 주님의 멍에를 메는 과정에서 주님의 겸손과 온유를 배울 수 있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즉 우리가 주님의 멍에를 질때면, 물론 주님의 멍에가 쉽고 가볍지만, 때때로, 힘들고 무겁게 느껴질 때가 간혹 있는데, 그때가 바로 겸손을 배우는 때로, 우리가 힘들고 지쳐 우리의 무능과 연약함을 깨닫고, 주님께 찾아와 모든 도움이 주님께로 부터 온다는 것을 깨닫고 자기를 낮추며 도움을 요청하며 주님을 의지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겸손을 배울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12) 기도하옵기는 주님의 교회 우리 모두가 주님의 멍에를 짐으로 주님의 겸손과 온유를 배우고, 도전의 시대인 말세를 살면서 주님의 능력을 힘입어 환난과 유혹으로부터 믿음을 지켜냄으로 주님께 칭찬받고 마침내 영원한 나라에서 생명의 면류관을 받아 누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소그룹 모임 가이드 및 예제 질문

Q1 풍요한 약속의 땅 가나안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핍박이나 환난을 받는다는 말이 생소하게 들릴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외적으로 보면, 점점 기독교의 진리를 세상에 드러내기가 힘든 시대가 되었고, 내적으로는 오히려 가나안의 풍요함과 편안함에 대한 유혹과 다원주의와 타협하라는 유혹은 더 거세지고 있습니다. 각자 자기의 주변 환경과 내면의 생각을 들여다 보며, 혹 받으시는 유혹과 핍박과 고난들이 있는지 한번 살펴보고 서로 나누는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Q2 그리고 오늘 본문의 말씀처럼, 이러한 도전과 환난을 이겨낼 수 있는 길은 우리 안에 있는 것도 아니요, 우리가 더 강해져서 이겨낼 수 있는 것도 아닌, 결국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 뿐 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은 그렇게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려면 우리가 겸손함을 배워야 하는데, 그것은 주님의 멍에를 지는 과정을 통해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금 각자의 삶을 돌아보며, 혹 각자가 어떤 주님의 멍에를 메고 있는지?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어떻게 주님의 겸손을 배워가고 있는지 서로 나누면 좋겠습니다.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축복합니다.


기도 노트

( 오늘 말씀중 깨달아진 하나님의 성품 ) 하나님 아버지!

( 지난 한주간 혹은 오늘 하루 동안 감사한 일들 ) 해 주심에

찬송과 감사와 영광을 주님께 올려 드립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 깨닫게 해주신 죄 )를 깨닫게 해주셨음에 감사하며,

회개할 때에 용서해 주옵시고 이제 ( 새 삶 )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 주옵소서

특별히 오늘 말씀을 통하여 ( 새롭게 배운 점 ) 을 가르쳐 주심에 감사하며

( 삶의 도전 ) 살 수 있도록 은혜를 더하여 주옵소서

( 주님의 성품 ) 우리 주님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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